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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자 Mar 12. 2023

"이번 주말엔 원전을 보러 갈 거야"

무라카미 다카시와 원전을 마주하는 삶

무라카미 다카시, <원전을 보러 갈 거야>


이번 일요일에 여자친구와 둘이서 원전을 보러 갈 거야. 야마노테선과 신칸센과 렌터카로 가서 제2 원자력 발전소를 보는 거야


지난달 참가한 시위행진에서 우리들만 원전에 대해 잘 몰랐거든


음식에 관한 것이나 종자 회사나 수입의 문제 등 원전뿐만이 아닌 다른 여러 가지 알고 있었는데 우리들만은 아무것도 몰랐었어


아마, 이것저것 알아봐도 우리는 모를 것 같으니까 그럼 실체를 봐 볼까 하고 가기로 했어


그리고, 도착.


출입 금지 구역에도 들어갈 수 있었어, 간단히 들어갈 수 있어서 우리는 기분이 좋아졌어


제2 원자력 발전소가 보였어. 매우 숭고한 것을 보는 기분이 들었어...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차가웠어 하지만 꽃이 피고 작은 새들도 울어 아주 멋진 장소였어 SF영화처럼 "사람이 멸종하면 이렇게 되네"라며, 두근두근거리면서 걸었어


그리고 나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고 재채기가 멈춰지지 않아서 콧물을 꿀꺽 삼켰어


그리고 다음 목적지


저 무인상점가의 게이트, TV에서 본 멧돼지가 있을까 해서 와보았는데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


돌아오는 길. 가게도 간간이 열려 있어서 맛있는 해물요리를 먹었어


"아, 오길 잘했네~"라며 우리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어


인류는 이대로의 모습인 것인가? 아니, 분명, 유전자 조작 같은 걸로 방사능을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버리거나 애초에 사람의 모습도 변형해버리거나 할지도 "아니아니...역시 인류는 멸망할 거니까"라며 여자친구와 이야기가 고조되어 편의점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피웠어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차가웠어 하지만 꽃이 피고 작은 새들도 울어 아주 멋진 장소였어 SF영화처럼 "사람이 멸종하면 이렇게 되네"라며, 두근두근거리면서 걸었어


그리고 우리는 생각했지, 미래의 행복을. 행복이란 무엇일까?


집에 도아와서 친구에게 계수기를 빌려서 신발의 밑창을 쟀더니 무서운 소리가 나와서 그 신발은 비닐에 싸서 버렸어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차가웠어 하지만 꽃이 피고 작은 새들도 울어 아주 멋진 장소였어 SF영화처럼 "사람이 멸종하면 이렇게 되네"라며, 두근두근거리면서 걸었어


결국, 다음 시위 행진에는 우리는 참가하지 않고 "다음에는 군함도나 러시아의 큰 분화구에 가보자"라고. 그렇게 하기로 했어


2016년 3월 15일

이른...또는 그렇게 이르지 않은 오전에

사이타마 미요시 작업실에서




며칠 전 부산시립미술관에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 전시에 다녀왔다. 출구에 배치된, 맨 마지막 작품이 머리를 때리듯 가장 인상에 남았다. 일본 특유의 '애니메이션' 감성으로 원전 문제를 건드린 <원전을 보러 갈 거야>라는 작품. 사진 속 남녀는 테마파크나 동물원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커플처럼 원전을 배경으로 우스꽝스러운 탈을 쓰고 있다.


남녀는 마치 경리단길 데이트를 하는 것처럼 상점가를 둘러보고 맛있는 해물요리도 먹으며 시간을 즐긴다. 음식을 먹고난 뒤엔 담배를 나눠피며 "아, 오길 잘했네~"하며 뿌듯함을 만끽하기도 한다. 20대 남녀의 데이트코스마냥 지방 소도시에 익숙한 풍경이 된 원전의 모습을 '실소' 넘치게 표현해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도 원전을 마치 무슨 지방의 대형 인프라 중 하나처럼 여기고 있지 않는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어제(11일)로 12주년을 맞았다. 한수원이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때려 부으며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에너지 공급원'이라며 홍보하는 원전의 안전에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으면, 우리 사회에서는 최소 '불순분자' 취급을 받는다. 한전의 논리에 조금이라도 문제를 제기하면 '무논리'라며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수도권과 달리 지방, 특히 동남권역에 사는 이들은 원전 문제를 출퇴근길에 일과처럼 마주한다. 동남권은 세계 최대 원전 밀집도를 자랑한다. 무려 10기에 가까운 원전시설이 밀집해있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생산한 전력의 대부분은 수도권으로 향한다. 원전 안전을 지방에 하청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원전은 안전하다"고 무지한(?) 지방민들을 계몽하려 든다.


그렇다면 한강물을 끌어다가 원전을 가동하는 형태로 한강변에 원전을 지을 수는 없나. 여러 기사들을 참고할 때 대체로 다수의 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땅값이 비싸고 안전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탓에 짓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2021년 10월 보도된 경향신문의 '절반의 한국' 시리즈 보도에서는 이례적으로 톱 사진에 '합성된' 사진이 들어갔다. 강남 한복판에 원전이 들어선 모습인데, 당시에도 지금도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들고 왔다.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10190600015?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흔히들 원전을 '화장실 없는 맨션'에 비유한다. 원전은 우라늄 핵분열 때 나오는 열로 물을 끓여서 만든 증기로 터빈을 돌려 발전하는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는 중·저준위 폐기물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열과 강한 방사선을 배출하기 때문에 반핵단체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이라고 단언한다.


사용후핵연료는 열을 많이 내는 '세슘' '스트론튬'과 같은 핵종을 포함하고 있어 높은 열을 식히기 위해 원전 부지 내 저장조 물속에서 최소한 10년 이상 보관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방사성 독성을 지닌 '플루토늄'과 '마이너액티나이드' 등도 지니고 있다. 이들 핵종은 반감기가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수백 년까지 이르며 이론상 무려 10만 년 동안 생명체로부터 완전히 격리시켜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하 500m까지 파내려간 장소에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이 방식으로 지하처분장을 건설 중인 국가는 핀란드가 유일하다. 우리는 지하 500m 아래로 땅을 파내려갈 수도 없다. 지금까지도 제각기 원전 한켠에 쌓아두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미 십수년 전부터 발등의 불이 떨어졌는데도, 어떤 정부도 정색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순히 특정 정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가 원전에 관해 어떤 방향과 속도로 나아갈 것인지 확실히 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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