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차갓산직과 청년들의 지방 탈출
'킹차갓산직'이라는 현대자동차 생산직 채용의 문이 열리자 젊은 구직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채용 시장에 뛰어들었다. '18만 명이 넘게 최종 지원했다' '서류 검토 인원만 32명이 투입된다'는 카더라가 정설처럼 파다하게 퍼졌다. 카더라가 사실이면 경쟁률은 450대 1.
'킹대차' 평균 연봉이 1억 원을 넘는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높은 연봉, 정년 보장, 파격적 복지 등을 앞세운 킹대차 갓산직 업무는 더 이상 '공돌이, 공순이' 이미지 따위가 아니다. 애국페이를 강요당하며 민원 업무와 야근에 끙끙대는 공무원(과거 '갓무원')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는 이미 예전부터 나왔다.
현대차 생산직의 영광을 오롯이 끌어안을 최종 합격자들은 울산, 충남 아산, 전북 전주 공장 가운데 한 곳에서 근무해야 한다. '지방 근무' 역시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결격 사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지방이 싫어서" 청년들이 지방을 등진다는 이야기는 킹차갓산직 사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
흔히들 "서울에는 쉼터가 없고, 지방에는 일터가 없다"고 한다. 청년들이 지방에 남기 위해 현대차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적절한 대우를 받으면서 적당히 일하고 삶을 꾸려나갈 말 그대로 '적당한' 일자리만 있어도 굉장히 많은 청년들이 고향에 남으려고 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일자리가 없다는 거다. 지방의 인구와 함께 일자리도 소멸되고 있다.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그는 디자인 업계에서 종사한다. 서울에서 8년간 일을 하다가 지난해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저 적당한 일자리만 있으면, 지긋지긋한 서울 살이를 끝내고 부산에서 안착해 삶을 꾸려 나가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그가 최근 서울행 티켓을 다시 끊었다. 이유는 당연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였다.
그는 "서울과 비교하면 부산의 업계 사정과 규모는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 정도밖에 되질 않는다. 직급이 깎이는 것까진 괜찮은데, 연봉도 절반 넘게 깎으려고 한다. 도저히 남아 있을 수가 없겠더라"고 작별 인사를 전했다.
그럼에도 지역의 중견, 중소기업 관리자급 관계자나 지자체 고위 공무원 등을 만나면 이런 청년들의 고민 방향과는 결이 다르다는 인상을 받는다. 지방에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인정하겠으나, 청년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고 또 서울, 수도권을 향한 맹목적인 '추종'이 지방 탈출 러시에 한몫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들의 기저에 깔려 있다.
특히 많은 중견, 중소기업 오너들은 청년 구직자나 신입 사원 등을 말할 때 별다른 거리낌 없이 "요즘 애들"이라고 부른다. "요즘 애들은 이렇더라, 요즘 애들은 이래서 이게 문제다" 같은 말들을 입버릇처럼 손쉽게 쏟아낸다. 청년 구직자들과 신입 사원들이 '애들'로 격하되는 순간, 이들은 본인의 몫은 하지 못하고 투정을 부리는 존재로 비친다. 마땅한 처우나 복지는 마치 본인의 자녀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는 식의 시혜적 성격의 베풀기로 바뀌고 만다.
한때 중소기업을 낮춰서 '좋소기업'이라 부르며 '반드시 피해야 할 좋소기업의 특징 5가지'와 같은 글들이 유행했다. 마당에 누렁이를 키우는데, 누렁이가 스스로 밥을 차려먹지 않는다면 그건 니 몫이다. 회사 복지를 소개하는 칸에 '전자레인지 및 냉장고 있음, 커피믹스 무료' 따위 글이 있다면 피하라 등등. 구구절절 경험에서 나온 드립이기에 웃을 수만은 없다.
청년들의 지방 탈출 문제는 수도권 과밀화, 지방소멸, 저출산 등 대한민국이 직면하는 거대한 악순환 고리와 직결돼 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방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이들에게 연말정산 혜택 조금 주고, 주택담보대출 이자 조금 낮춰주는 정책 따위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다. 지자체가 중견기업 공장 한 두 개 이전시켰다고 손뼉 치며 자화자찬하는 동안 청년들은 오늘도 지방을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