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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만화경

치유되지 않더라도 괜찮아. 나루토

by soulblue

<나루토>를 좋아한다. 많은 외톨이들이 등장하는 데다 무엇보다 치유되지 않더라도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나루토>는 주인공 나루토가 고립된 상황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하는 모든 노력의 결과물이다. 고아인 채 태어나 돌봐주는 사람 한 명 없이 (히루젠.. 히루젠을 죽여야 한다) 외로운 나루토는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나뭇잎 마을도 멸망시켜야 한다) 끌기 위해 이런저런 소란을 피워대는 말썽쟁이다. 더군다나 과거 마을에 대참사를 불러일으킨 구미호를 몸속에 봉인한 인주력이기에 사람들은 나루토의 존재만으로도 위협을 느낀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루토는 위험을 억제하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인간은 대개 비이성적이라 감사함보다는 위험한 게 한 마을 안에 있다는 불안함을 더 크게 느끼는 듯하다. 나루토에게 냉담한 사람들 중 일부는 구미호 습격 때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를 이렇게 철저히 고립시킬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언제나 있었다. 일본의 이지메란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것인가. 아버지 미나토에게 특별한 부탁을 받으며 부부의 희생을 대가로 마을을 구해낸 히루젠은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원작자 마사시가 후에 이런저런 설정을 추가하면서 발생한 오류라고는 하지만 어찌 됐던 아이가 유통기한이 훌쩍 넘은 우유를 식사 대용으로 먹는 걸 보면서도 멍청한 놈이라고 내뱉던 히루젠을 나는 용서할 수가 없다. 이후에 나뭇잎 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의 배후를 알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히루젠이 가장 나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서 리더가 암막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혀 모를 리가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히루젠은 마을의 안위를 위해 다소 더러운 역사를 눈감아줬던 리더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히루젠이 좋은 대부가 되어 줄 거라고 믿었던 미나토의 예상과 달리 사랑해 주는 사람이, 그것도 애착이 필요한 유아기에 없었다는 사실은 나루토를 극도로 불안한 아이로 만든다. 부정적인 관심도 관심이라고 그는 남아도는 시간에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다 되려 상처받고 돌아서길 반복한다. 그런 나루토에게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닌자 학교에 입학해서 7반 배정을 받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루토가 사스케에게 몰입하는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말들을 한다. 훌륭한 작화와 개성이 넘치는 다양한 캐릭터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마사시는 인물의 감정적 서사를 잘 만드는 작가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사시가 만들어내는 로맨스는 정말 빈약하기 그지없다. 사쿠라와 사스케, 히나타와 나루토 간 애정은 다소 뜬금없고 깊이도 없다. 나루토와 사스케 관계 역시 비슷한다. 그저 주어진 설정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 간의 관계에 깊이 천착하는 팬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가 성립하는 이유에 대해 납득하지 못한 채로 이야기를 따라간다. 물론 나루토를 움직이는 동기 부분의 빈약함과는 별개로 이후 두 사람이 각자의 서사대로 쌓아 올려가며 뒤섞이는 이야기의 전개는 매우 근사하다. 거의 겹치는 캐릭터 없이 각각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지니고 자신의 신념대로 활약하며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협력하는 닌자들의 세계는 정말 매력적이다. 폭력과 평화, 공동체와 희생, 현실 정치의 어두운 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쪽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주요 인물들의 분투는 단순한 소년 만화의 범주를 넘어 올 타임 넘버 원으로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마스터 피스를 탄생하게 했다.


다시 나루토로 돌아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루토가 사스케에게 몰입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나루토에게 7반은 강제로 주어진 최초의 관계였다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선택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배정받은, 가족같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져서 강제로 묶인 첫 번째 범주였다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한 관계를 강제로 엮인 관계보다 더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직장 동료보다는 소꿉친구가, 학교 친구보다는 동네 친구가. 왜냐하면 이들은 내가 의지로 고른 사람들이고 내 의지로 유지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학교 친구나 직장 동료를 시절인연이라고 명명하는 게 트렌딩 되던 때가 있었다. 요지는 강제로 주어진 인연은 그 시절이 지나가면 덧없이 사라지니 그렇게 애절하지도, 절절하지도, 아쉽지도 않은 관계라는 거. 실제로도 가족을 제외하면 우리 생활은 그렇게 흘러간다. 주어진 관계보다 내가 선택한 관계가 더 가치 있다고 믿으면서 지나갈 인연들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은 채로.


그러나 나루토는 이걸 반대로 한다. 나루토에게는 주어진 인연이 전무했다. 애초에 가족이 모두 희생되었으니 그에게 남은 것은 선택해야 하는 관계들 뿐이었다. 하지만 서투른 아이가 선택해야 하는 관계를 능숙하게 찾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타인에게 나누어줄 애정을 예비한 채로 나루토는 떠돌아다닌다. 그러던 그에게 드디어 처음 주어진 관계가 등장한다. 남들은 한 때를 같이 한 뒤 해산하고 말 학교 동기일 뿐이지만 나루토는 아카데미에서 맺은 인연들을, 심지어 싸웠던 적(가아라)들과의 관계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나루토의 가장 큰 인법은 외교력이라는 농담은 그래서 개연성 있다. 실제로 만나는 사람마다 친구로 만드는 나루토의 매력은 이런 깊은 고독으로부터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이능력에 가까울 것이다.


나루토에게는 특히 7반이라는, 분명하고 명확하게 한데 엮인 관계가 그래서 매우 중요해진다. 아카데미를 가면 만날 수 있는 친구들도 좋았겠지만 그중에서도 특정한 단위로 꼼짝없이 묶인 관계는 거의 유사 가족에 가깝다. 가족은 마음에 들어서 모이는 단체가 아니며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강제성이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어린 나루토에게 이 '싫어도 어쩔 수 없다'는 감각이 주었을 위로는 상당히 컸을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내 집단이라는 생애 처음 느껴보는 소속감. 완전히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이 관계에 나루토는 깊이 천착한다. 탈주한 존재가 사스케가 아닌 사쿠라였어도 나는 <나루토>의 기본 줄기가 크게 변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됐든, 마치 알에서 처음 깨어난 오리들이 눈앞에 처음 마주한 존재를 엄마로 여기고 필사적으로 따라다니는 것처럼 나루토는 자신에게 처음 주어진, 가장 가족에 가까운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곁에 두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일방적인 애정은 결코 완전히 보답받지 못한다는데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해받지 못할 감정은, 특히나 그 폭이 깊을수록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것으로 여겨진다. 나루토가 사스케에게 깊이 천착하는 이유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뭇잎 마을 닌자들이 마을의 위협이 된 사스케를 제거하기로 결정했을 때, 나루토 혼자만이 이 결정을 버거워한다. 사실 냉정히 사건들을 바라보자면 마을의 결정이 합리적이었을 테지만. 더군다나 이 애정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 사스케 역시 나루토의 집요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사스케에게는 안정적인 애정을 주던 부모님이 계셨고 전설적인 동생바보인, 완벽에 가까운 형 이타치가 이미 존재했으므로. 충분한 사랑을 받다 일시에 이들을 모두 빼앗겨버린 사스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나루토의 애정을 감지하면서도 그에게 우정의 문제는 매우 부차적인 것이었으며 가족과 일족의 복수라는 절박한 목표는 사스케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강력한 동력이었다.


이 관계의 비대칭성은 나루토를 매우 고독한 존재로 만든다. 그의 애정도,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기도 모두 외로움에서 기인했으나 나루토가 끝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조차도 그로부터 전혀 벗어나지 못할 결말을 예비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그는 사스케에게 이해받을 수 없다. 사쿠라에게도, 심지어 비슷한 외로움을 공유하고 있는 가아라에게도 완벽히 자신의 고통을 공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나루토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존재는 사실 가아라보다는 카카시 쪽이라고 생각한다. 가아라에게는 적어도 괜찮은 성정의 형과 누나라도 존재했다. 근원부터 혼자였던 나루토와는 미묘하게 다른 상황이고 애착관계가 매우 중요한 유아기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그 사람을 형성하는데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가아라는 나루토와는 매우 다르게 성장한다. 반면 좋은 아버지를 이른 나이에 마을에 빼앗겨버린 카카시의 경우는 오히려 나루토와 상황이 비슷한다. 더군다나 카카시는 나루토와 달리 자신의 반 친구들을 구해내지 못한 채 고립된 외톨이다. 그가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그다지 맺지 않고 희한한 연애 소설을 읽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는 애초에 카카시 역시 제대로 자극받고 발달해야 할 정상적인 애착관계가 삶에서 상당 부분 단절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의도와 의지와는 다르게 돌이킬 수 없는 관계에서의 실패를 가슴에 품고 사는 자다. 폭력적인 세상과 수많은 오해들, 안 좋은 타이밍이 겹치고 겹치면서 운명처럼 빼앗긴 소중한 인연들의 상실은 카카시에게 매우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이타치와의 전투에서 일반인은 견딜 수 없는 무한 츠쿠요미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표면적으로는 카카시의 정신이 그만큼 강력했던 덕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면적으로는 그의 일부가 어쩌면 이미 죽어있었기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카카시에게는 자신의 죽음 자체가 그다지 큰 두려움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루토의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공감력만큼이나 카카시의 정신력 역시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면이 있다. 그리고 그 비정상성의 중심에는 모두 깊은 고독이 존재한다. 만일 나루토가 사스케 탈환에 실패했다면 그 역시 카카시와 비슷한 길을 걸었을 것 같다. 비록 성격은 천차만별이지만 둘은 의외로 많이 닮아있다.


결과적으로 나루토는 카카시와 달리 소중한 인연을 자신의 의지로 구원해냈지만 이해받지 못함의 결말은 어찌할 바 없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그 많은 인연들에도 불구하고(모두 나루토가 적극적으로 쌓아 올린 관계들) 그중 나루토를 진실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인물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사스케도, 사쿠라도 심지어 히나타도. 히나타의 나루토에 대한 애정은 매우 일방적이었으니까. 물론 이후 부부로 살며 점차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루토의 인간관계는 철저히 나루토가 자신의 의지로 확장해 간 노력의 결과다. 성인이 된 나루토의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의 몫을 다하는 훌륭한 어른으로서의 나루토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아카츠키의 고독한 3 멤버들이(코난, 야히코, 나가토) 상대의 심각한(사람을 죽이거나 나라를 멸망시키는 수준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곁을 지키는 것과는 다른 성숙함이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이것으로 괜찮은 지 되묻고 싶어지는 관계다. 정의롭고 따뜻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싫어할 수가 있나. 그러나 어떤 관계는 부족한 점을 마음 껏 드러내도 안전하다고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나는 사람에게는 어느정도 이런 관계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러니까 나루토에게도 정말 필요한 것은 사실 괜찮지 않아도 곁에 머물러주는 그런 종류의 애정이지 않았을까하는 거다.


나루토의 가장 좋은 점은 이런 다소 쓸쓸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무리하게 애정이나 희망으로 봉합하질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나루토가 사스케의 회수와 마을의 신망을 얻는 데 성공하는 방식으로 내면의 상처를 치유했다고 판단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나루토는, 그리고 카카시는 치유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떤 상처들은 치유되지 않는다. 치유되기가 어렵다. 수많은 좋은 경험과 좋은 관계들로 둘러싸도 상실은 상실이다. 빼앗긴 것은 돌려받지 못하고 잃어버린 경험은 추후에 충족되지 않는다. 그렇게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결국 흔적으로 남는다. 어떻게 해도 원상복구되지 않는. 그리고 나루토와 카카시는 그 흔적을 품은 채로 성장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치유가 되든 되지 않든 시간은 부단히 흘러가고 인간은 그 상처 위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성장한다.


나루토의 근원적인 트라우마는 해소된 적이 없다. 비교적 가아라가 정서적으로 매우 가깝고 이에 비등한 애정으로 나루토를 대해주기는 하지만 세상에 나와 완벽히 같은 고통을 공유하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어린 시절 마을 전체로부터 박해받던 기억,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자신을 돌봐야 했던 외로움, 우연히 주어지던 드문 온기에 감사해하던 마음까지도 나루토의 내면은 상처로 일면이 차곡히 쌓여있고 지나간 과거를 마치 없던 일처럼 만들어 주는 마법이나 인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좋든 나쁘든 그 모든 경험들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성격과 취향, 성정과 인격을 마치 이제 태어난 것처럼 어느 순간 재조립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이미 만들어진 존재로서 나루토는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회복불가능한 상처를 부정하지 않으며 성장한다. 대신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의미 있는 관계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손으로 꼭 붙잡아 함께하는 미래로 연결시킨다. 남들은 시절인연이라고 부르는 가벼운 관계에 마음을 불어넣고 소중히 간직한 다음, 그것을 사수하기위해 전력을 다해 투쟁한다. 이런 방식으로 나루토는 시절인연을 자신의 진짜 인연으로 만들어나간다. 좋든 싫든 어찌할 수 없는 가족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나루토로서는 가질 수 있는 가장 끈끈한 관계를 자신의 손으로 쟁취해 낸다. 그렇게 나루토는 마을 전체와 유사 가족 관계로 맺어지는 데 성공한다.


성인이 되어 더 이상 억지로 관심을 요청하지 않아도 되는 나루토는 매우 차분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외로워 보인다. 좋은 동료들과 가족들, 그리고 내면의 쿠라마까지 북적이는 관계로 둘러싸여 있어도 비어있는 공간은 여전히 비어있을 것이다. 그 공간은 쿠라마의 것도 히나타의 것도 아닌 나루토만의 장소다. 하지만 나루토는 그게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완전히 치유하지 않아도, 어딘가 망가져있어도 생은 계속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그러니 당신의 삶을 의미 있는 것들로 포기하지 말고 채워 넣으며 허무와 고독과 싸워나가라고 응원한다. 그리고 그게 나는 정말 좋다. 깊은 상처가 있더라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치유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있어도 거기로부터 더 나아가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나루토와 카카시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 나는 <나루토>가 보여주는 가장 큰 미덕은 치유가 아니라 치유되지 않는 깊은 상처가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노력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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