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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Apr 02. 2024

가출의 추억

페북을 떠난 기념으로 브런치에 글을 하나 올려 본다.


때는 1986년 가을이었다. 충주에 사는 고 3이었던 김재광은 부친과 싸우고 가출을 결심했다. 부친과는 성격적으로도 안맞았는데 아마 그때는 고3이니 서로 더 민감해진 면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다시는 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고 비상금을 탈탈 털어서 고속버스 터미널 쪽으로 걸어갔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려고 결심한 것이다. 집에서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한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타박타박 걸어서 갔다.


사실 어떤 대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서울에 아는 곳도 없고 내가 모아둔 돈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랬는데, 그래도 너무 화가 나서 가출을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터미널로 가는 도중에 같은 학년 동기를 우연히 만났다. 나보고 어디가냐고 묻길래 가출한다고 이야기했더니 눈이 휘둥그레 지면서 자기랑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서 분식집으로 끌고 갔다. 아마 그 친구가 소주도 한병 시켰던거 같다.


그 친구는 나보고 전교 1등짜리가 가출하면 어떻하냐고 하면서 나보고 가지 말라고 설득을 했다. 나도 사실 가출한다고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겁도 나기도 했으니 그 친구랑 술 마시면서 풀고 늦게 집에 돌아와서 잤다. 그날 나는 디스코텍도 처음 가보았다. 고등학생이 디스코텍을 가면 안되는 거지만 가출하는거 보다는 나은거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바탕 놀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은 이미 주무시고 계셨고 내가 가출했었다는 것도 모르시는듯 했다. 오후 4시 정도에 집을 나가서 밤 12시에 돌아온 8시간짜리 가출이었으니 그냥 외출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자세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가끔씩 그때 생각이 난다. 만약 내가 그 친구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나는 버스를 타고 서울을 갔을까? 아니면 그 앞에서 망설이다가 그냥 패잔병처럼 집으로 돌아왔을까? 잘 모르겠다. 아마 돌아왔을 것 같지만 1/3 정도의 확률로 서울행 버스를 탔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아마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지 않았을까 싶다.


페북을 떠나서 그런지 갑자기 가출의 추억이 생각나서 올려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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