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광 Apr 04. 2024

연구의 달인

한국 시간으로 오늘에는 나의 마지막 박사제자가 육군 사관학교 교관 임용을 위해 훈련소에 입대를 한다. 그런데 그 친구는 어제 밤 12시까지 연구 관련 코딩을 하고 오늘 입대를 했다. 어제 미팅에서는 머리를 빡빡깍은 모습을 보았는데 하루의 빈틈도 없이 치열하게 연구하다가 군대에 가는 그 제자를 보면서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옛날에 안철수 인터뷰에서도 밤새 코딩하고 바로 샤워하고 옷갈아 입고 군의관 임관을 위해 훈련소에 갔었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바로 이 친구의 이야기가 그런 상황이다.


한편 오늘 낮에는 다른 학생이랑 미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제법 받았다. 연구 아이디어는 다 내가 주었는데 본인이 그걸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 내게 지나치게 의존을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친구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내가 그냥 논문을 다 써주고 졸업시키는게 제일 편하긴 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 학생은 제대로 연구 관련 경험을 하지 않고 졸업하는 것이라 나도 그러지 않으려고 자제를 하는데 쉽지 않다. 학생을 진정으로 아끼고 생각하면 힘들더라도 본인이 스스로 물고기를 잡는 법을 터득할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기에 그냥 물고기를 던져 주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발전이 더딘 학생을 보면 교수 생활이 너무 괴로와서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또 어쩌다 똘똘한 친구를 만나면 그런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지곤 한다


내 경험상 정말 창의적인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의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해서 그걸 흉내내는 것이다. 나는 연구 아이디어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어떻게 해야 연구 아이디어가 생기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대답이 궁색해진다. 나의 경우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모방을 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나중에는 저절로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다움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그 나다움을 극한까지 추구하면 거기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것 같다.  


그런 면에서 초반에는 누가 연구를 잘할수 있는지 판단하기 힘들다. 초반에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스타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결과를 온전히 콘트롤 할수는 없다. 결과는 우연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기에 과정 자체를 즐길수 있으면 연구를 오래할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연구를 잘하는 비결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지구력을 들고 싶다. 지구력이 있으면 오래 즐기면서 할수 있고 그러다보면 요령을 터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구력이 있기 위해서는 체력이 있어야 하고 건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아무리 외부 환경이 비관적일지라도 긍정의 씨앗을 찾아내는 그것이 능력이다.    


그리고 생각이라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다. 사회적 통념 또는 권위나 전통에 기대어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습관이고, 스스로 질문하고 의심하면서 생각하며 답을 찾아내는 것도 하나의 습관으로 이해할수 있다. 매일 운동하는 것이 습관이 들면 처음에는 힘들지만 나중에는 운동을 하지 않는게 더 불편해 지는 것처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처음에는 엄청 까칠하게 느껴지고 주위 사람들과 불화할수 있지만 그게 습관으로 정착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게 참을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느껴질수 있다. 그런 습관이 몸에 베이게 되면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연구하는게 그냥 숨쉬는 것처럼 되어서 힘들지 않게 느껴질수 있다. 그런 경지가 되면 주위에서 연구의 달인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게 좋은 의미이든 아니면 비꼬는 의미이든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