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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이인숙 Mar 10. 2022

낯설게보기

    더벅머리 가발이 눈에 띈다. 화려한 의상은 사내의 몸에 착 달라붙어 몸의 곡선이 적나라하다. 짙은 화장에 높은 하이힐까지 신고 있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듯한 그의 차림새에 나의 동공은 더욱 커진다. 여자가 아닌 남자라고 뾰족구두를 신고 치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영상 속 모습은 파격을 넘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뜻밖에 민요 메들리가 흐른다. 한껏 꾸민 두 남자와 한 명의 여성 멤버로 구성된 그들의 공연은 반응이 뜨겁다.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좌우로 흔들며 앙탈을 부린다. 남자는 클러치 백을 들고 무심한 듯 ‘왜에 에에’응수한다. 이어 귀에 익숙한 가락이 흐른다. 한복 위에 두루마기를 입고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부르던 노랫가락이다. 빨간 하이힐을 신고 산발한 가발을 쓴 그가 부를 줄이야 예상치 못한 풍경이다. 모두의 고정관념을 깨치고 있는 이들은 이희문이 이끄는 국악 밴드이다.

  이희문을 처음 보았던 곳은 작은 산사 음악회에서다. 고운 빛깔의 두루마기에 꽃신을 신은 사내들이 엉덩이를 실룩이며 방정맞게 춤을 춘다. 이어 젊은 선비들은 거침없는 절창으로 무대를 휘어잡는다. 기존의 무겁고 부담스러운 분위기가 아니다. 전통의 이미지를 벗은 그들의 신명 난 모습에 객석에선 환호성이 터진다. 산사음악회 마지막 무대에 오른 그들로 객석 열기가 다시 들썩인다.

  국악 트리오 ‘놈놈놈’이다. ‘놈’이란 호칭은 흔히 상대를 낮잡아 하대하는 호칭이다. 하지만, 친구나 자식을 정겹고 허물없이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팀 이름에 ‘놈’ 자를 붙인 건 점잖게 체면을 차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치고자 한 의미인가. 그는 우리의 가락이 접근하기 수월하나 품격을 잃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 끊임없이 고민했으리라. 일반 산사음악회와는 다른 모습에서 그가 잠들지 못하고 고뇌했을 수많은 밤을 짐작한다. 미국의 NPR 뮤직 ‘작은 책상 콘서트’ 영상으로 그들을 다시 만난다.

  고정관념을 깨치기란 쉽지 않다. 전통 가락에 대한 애정 없이 퓨전 음악을 한다고 열고났으면, 관객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을 수 없었으리라.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 새로운 모습에만 연연했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머물 뿐이다. 아니, 국악의 격을 떨어트렸다며 혹독한 질타가 쏟아졌으리라. 그는 국악을 알리고자 무대의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우리의 가락을 원하는 곳이라면, 소박하고 작은 무대라도 기꺼이 오른다. 그가 창과 민요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지 알 것만 같다. 경기민요 명창인 어머니의 재능이 그의 몸속에 흐르는 것일까. 그는 서울국악제에서 당당히 대통령상을 받은 ‘경기민요’ 전수자이다.

  그가 처음부터 우리 가락에 관심을 두었던 것은 아니란다. 국악과는 거리가 먼 영상 미디어 전공자이다. 대중음악의 꽃, 뮤직비디오를 열정적으로 제작하던 재원이니 하마터면 국악계에서 그를 못 볼 뻔하지 않았던가. 민요는 민초들이 노동의 고단함을 잊고자 부른 노래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휴식도 취하고 때론, 고단한 일상도 위로받는다. 그가 공연을 준비하며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사람이란다. 그래선지 관객을 대하는 그의 순정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B급 감성의 소리꾼이라 말한다. 요상한 모습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그를 보고 전통 국악계에서 왜 부정적인 시선이 없었으랴. 명창인 어머니는 아들의 낯선 모습에 더 깊은 고뇌에 빠졌으리라. 보통 사람이었다면 주저앉고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웠다. 또한, 변화만을 고집하지 않고 전통음악 연구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의 특별한 행보에 누가 감히 그를 B급 감성의 소리꾼이라 부르랴.

  발상의 전환은 끊임없는 도전에서 탄생한다. 정형화된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시도는 음악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감지된다. 최근 수필 문단에서는 신변잡기를 벗어나 소재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글을 쓰고자 부단히 노력 중이다. 물상의 겉모습만 기록한다면 문학성은 없다. 이면에 깊숙이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 사유하여 자신만의 정서로 글을 써야 한다. 더불어 글 속에 화자의 철학을 녹여낸다면, 그만의 독특한 향기를 품은 글을 낳을 수 있으리라. 작가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낯선 문을 끝없이 두드려야 하리라.

  다른 문학과 달리 수필은 일인칭 체험문학이다. 자신이 보고 경험한 이야기를 원고지 15매 전후해 함축적으로 풀어낸다. 수필은 소설보단 짧고 시 보다는 긴 분량이니 소설과 시를 아우른다고 볼 수 있다. 점점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독자는 책을 볼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 예전과 달리 문학의 취향도 호기심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책을 멀리하는 독자에게 호기심을 일으킬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소설은 점점 짧아지고 시는 운율을 벗어나 길어지는 현상이 이와 무관한 일이 아니리라. 

  책장에서 빨간색 표지의 책을 꺼내 든다. 까만 글씨로 빼곡히 채운 기존의 책을 벗어난 수필집이다. 책의 표지도 빨간색이라니 누구도 쉬이 선택하지 않았던 색이다. 작가는 책을 볼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현대인에게 책을 가까이하고 지루해하지 않도록 글 중간에 글의 소재가 된 사진을 곁들인다. 표지 또한, 서점을 찾은 이들의 시선에 확 띄도록 빨간색을 선택했다. 이 또한 책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 작가의 남다른 도전이다. 과연 저 붉은빛 속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독자는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리라. 그들은 분명 책 속 작가와 떠나는 독서 여행에 신명이 났으리라.

  보는 이의 호기심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해야 한다. 글을 쓰는 작가와 공연을 하는 예술가는 자신만 보고자 글을 쓰고 공연하지 않는다. 글과 공연을 통해 많은 이들과 소통하기를 소원한다. 관심을 넘어 호기심을 일으켜야 한다. 기와지붕에 떨어진 소복한 매화 꽃잎을 보는 순간 결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으리라. 또한, 더벅머리 가발 소리꾼이 신명나게 부르는 민요 가락에 엉덩이가 들썩이지 않을 관객이 누구랴. 

  낯설게 보기는 사물이나 관념에 대한 깊은 애정이 필요하다. 이면에 감춰진 진정한 모습을 보려면, 새로운 시선과 마음으로 소재와 마주해야 한다. 국악에 대한 깊은 사랑, 글에 대한 특별한 순정 없이는 새로운 해석과 풀이도 말 그대로의 낯설 뿐이리라. 무대 위의 화려한 모습도 빨간색 책 표지의 다채로운 내용도 그만의 각별한 애정에서 탄생한다. 늘 보아오던 어떤 물상과 사태를 새롭게 또한, 다르게 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낯익은 세상을 낯설게 보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리라. 나 또한, 소재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보고자 버석거리는 마음을 정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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