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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혜 Feb 21. 2024

별의 춤을 따라서

소설 습작 2

   

  [새벽 세 시. 세븐 일레븐 앞.]     


  우찬은 뭉툭한 운동화 앞코를 괜스레 툭툭 차며 약속 장소 앞에 서 있었다. 10월 중순의 새벽은, 풋살을 끝내고 돌아올 때 느끼던 시원한 밤공기와는 사뭇 달랐다. ‘핫팩을 챙겨 오라던 선생님 말을 들었어야 했나?’ 목 틈을 파고드는 가을의 차디찬 숨결을 느끼며 잠시 후회란 것을 해보았다. 그러다 이내 ‘까짓것, 뭐 어때.’라며 생각을 털어내고 두 손을 점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아, 그래도 역시 춥긴 춥다….’ 


  우찬이 좀 더 어깨를 움츠리며 드문드문 차들이 쌩 지나가는 도로를 응시하고 있을 때쯤, 


  “야, 이우찬.”


  건너편에서 키 큰 장대 같은 혁주가 우찬의 이름을 부르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보다도 더 한 놈이네.’ 


  우찬은 점퍼라도 입었건만, 혁주는 얇은 후리스 집업 하나에 학교 체육복 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워낙 마른 체형이다 보니 다리뼈를 둘러싼 바지 자락이 마치 깃발처럼 펄럭이는 듯 보였다.


  “왔네. 근데 너 안 춥냐?”

  “그닥?”


  혁주도 그닥이라고 말하면서 슬그머니 손을 후리스 주머니 안에 넣었다. 10월 중순의 새벽 세 시는 명백히 싸늘한 것이 맞다. 


  “오명규는?”


  혁주가 무심히 묻자 우찬은 턱 끝으로 뒤편 편의점을 가리켰다. 유리창으로 새하얀 북극곰처럼 흰 뽀글이 외투에 목도리까지 친친 감은 소년이 해맑게 딸기에몽을 쪽쪽 빨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일 먼저 와 있던데?” 

  “아, 그래?”


  말이 많지 않은 혁주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뿐이었다. 우찬과 혁주는 말없이 텅 빈 도로에 차들이 드문드문 지나가는 모습을 응시했다. 멀리서 쌩, 하고 다가왔다 사라지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어쩐지 사람의 인생처럼 덧없어 보여 우찬은 말을 잃었다. 먹먹하게 감성 충만의 세계에 빠져 있을 때, 검은 SUV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도로변에 정차했다. 


  “다들 일찍 왔네.”

  “안녕하세요!”

  “쌤! 저 오늘 북극곰 컨셉, 어때요?”  


  카키색 캡 모자를 푹 눌러쓴 박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하여 눙치며 인사하자, 우찬과 혁주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밝게 답했다. 편의점 안에서 밖을 관망하던 명규도 호들갑스럽게 문을 열어젖히고 달려 나와 박을 맞이했다.


  “오명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근데, 혁주랑 우찬이는 춥지 않겠어?”


  우찬은 혁주와 함께 어깨를 으쓱해 보였으나, 어쩌면 박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별 수 없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다들 일단 타.”


  박의 말에 우찬, 혁주, 명규 순으로 뒷좌석에 차례차례 탔다. 박은 내비게이션에 ‘황매산 오토 캠핑장’을 입력했다. 1시간 15분 소요. 지금부터 어둠을 가르며 용케 달려가다 보면 이들과 보려고 했던 것을 분명 볼 수 있을 거라고 박은 생각했다. 


  “노래 틀어줄까?”

  “네!”


  우찬은 지나치게 우렁찬 명규의 목소리에 차가 순간 흔들린 것 같다고 느꼈다. 이에 대해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박은 고등학교 1학년인 소년들을 배려해 한창 유행하는 걸그룹 노래들을 블루투스로 연결했다. 


  “아엠 온 더 넥스트 레벨! 절대적 룰을 지켜. 내 손을 놓지 말아. 결속은 나의 무기. 광야로 걸어가. 제.껴.라 제.껴.라 제.껴.라!”


  명규는 어떻게 그 모든 가사를 외웠는지 놀라울 만큼 정확하고도 분명한 발음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우찬은 급격히 피곤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학교에서 들었던 명규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목소리가 정말 큰 친구라는 이야기. 어딘가 특이한 구석이 있다는 이야기…. 침을 튀기며 노래를 부르는 명규가 불편해져 우찬은 말없이 차창 밖을 보는 혁주 곁으로 몸을 좀 더 붙였다. 별다른 접점이 없는 명규와 달리, 혁주와는 친밀감이 있었다. 둘은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고 지난 주말에도 풋살을 같이 하고 국밥을 사먹었던 사이였다. 그런 혁주가 동행한다는 점이 박의 제안에 응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우찬. 박준희 쌤이 별 보여주신다던데. 갈래?”

  “별? 넌 가?”

  “응, 어차피 딱히 할 것도 없고.”


  우찬은 비록 공부는 자기보다 못하지만 매사 단순하고 시원스러운 혁주를 사실 은근히 동경하고 있었다. 혁주는 운동 신경도 무척 뛰어나 학교 안 아니, 인근 지역에서 축구를 제일 잘했다. 초록 잔디밭을 날렵하게 달리며 그림 같은 슛을 성공시키는 혁주는 때로는 날개만 없을 뿐, 우아한 흑조 같기도 했다. 집도 잘 살아서 안 그런 것처럼 보여도 옷이며 가방이며 다 메이커에 엄마 카드를 제한 없이 썼다. 


  그에 비해 나, 이우찬은…. 이것도 저것도 어중간하다고 느꼈다. 아직 더 기다려봐야 한다곤 하지만 키도 딱 170에다 팔다리도 혁주만큼 길지 않고 짧둥맞았다. 중학교 때는 잘할 땐 전교 10등도 했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영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해 이제는 반에서 10등도 겨우 한다. 월등한 재능도 없고, 인물이 좋지도 않고, 집이 유복하지도 않은 우찬은 그만큼 어중간하고 애매하게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떨어져도 돼. 아임 안티프레졀. 난 지금 온 마이 웨이. 갖다버려 줘, 너의 페어리 테일.”


  씁쓸한 상념에 잠겨 들던 우찬,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지긋이 감은 혁주와 달리 명규는 이제 손동작까지 곁들이며 노래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박은 미러로 이들을 넘겨다 보며 ‘아직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피곤하면 눈 좀 붙여.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겠다.’라고 친절함이 묻어나는 말을 했다. 우찬은 깊이 생각하면 머리만 아파진다는 생각에 혁주처럼 두 눈을 슬몃 감았다.


  짙은 어둠을 향해 달리던 차량은 어느덧 목적지 가까이 다다른 듯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힘껏 오르기 시작했다. 부아앙- 엑셀을 바ᇕ으며 나아가려고 애쓰는 안간힘이 차체의 흔들림을 통해 우찬에게 전해졌다. 혁주와 명규도 긴장감을 느끼고 운전대를 잡은 박의 손과 근육이 움찔거리는 다리를 번갈아 응시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거칠게 길을 오르던 차는 마침내 너른 오토 캠핑장 공터에 멈춰섰다.


  “다 왔어요?”

  “그래. 내리자.”


  따뜻한 차의 열기에 뺨이 붉던 우찬, 혁주, 명규가 부스스 몸을 일으켜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찌뿌둥한 몸을 펼 여유도 주지 않고, 해발 1000m 고지대의 차가운 바람이 훅 불어와 온 몸을 훑었다. 우찬, 혁주는 ‘춥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옴을 느끼며 몸을 움츠렸다.


  “이거라도 덮어써라.”


  박은 트렁크에서 주섬주섬 물품을 꺼내와 우찬에게는 목 베개를, 혁주에게는 무릎 담요를 둘러주었다. 우찬은 그나마 목이라도 보호해 다행스러웠지만 ‘다음에 산에 올 때는 무조건 따듯하게 해서 오자, 어른 말은 무시하지 말자’라는 다짐을 거듭거듭 했다. 얇게 옷을 입고 온 혁주도 무릎 담요를 손으로 당겨 등과 상체에 밀착시키며 이를 달달 떨었다.     


  “쌤. 별 어디서 볼 수 있어요?”


  두툼하게 챙겨 입고 온 탓에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명규는 혼자서 발랄하게 공터를 이리저리 누비다 박에게 다가와 물었다. 


  “여기선 잘 안 보여. 한 10분 걸어 들어가야 해.”


  맙소사! 우찬은 더 걸어야 한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랐지만, 앞장서는 박의 뒤를 혁주, 명규와 함께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박의 손에 들린 플래시에서 동그란 빛이 퍼져 나오자, 네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어른거렸다. 


  사박사박. 발이 흙길에 닿을 때 나는 소리와 발의 감각이 신선했다. 나뭇잎에서 푸스슥 하며 작은 동물이 움직일 때 나는 듯한 소리도 선명하게 들렸다. 아무에게도 들이마셔지지 않은 듯한 미지의 숨이 코에 들어오자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새로운 감각에 귀를 기울이느라 말을 잃었던 넷의 침묵을 깬 것은 명규였다.


  “쌤, 놀라지 마세요. 저 밤 10시 이후에 밖에 나온 거 사실 처음이에요.”


  ‘그럴 수가 있어?’ 우찬은 명규의 말이 낯설게 다가왔다. 친구들과 아무 생각 없이 풋살하고, 편의점에서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우찬의 하루 일과였다.    


  “아빠, 엄마가 진짜 엄청나게 보수적이어서 전 학원 마치면 무조건 집에 바로 들어가야 되거든요. 게다가 코로나 기간에는 위험하다고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어요. 쌤도 알다시피 저희 누나는 서울대 나와서 박사하잖아요. 저도 무조건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로 가야 돼요. 그런데 저 이번에 모의고사 6등급!”


  우찬은 ‘쟤도 참 스트레스 받겠다’라고 생각하며 안 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처지를 밝고 명랑하게 말하는 명규가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나라면 짜증나서 다 엎어버리고 싶었을 텐데.’ 

  그때 줄곧 말없이 있던 혁주가 민규의 말을 듣고 한 마디 거들었다.


  “6등급이면 잘 하는 거 아닌가?”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박도 짐짓 어른스럽게 거들어본다. 우찬은 박의 말 속에서 ‘기준’이라는 단어 하나가 둥둥 떠올라 자신의 마음 속에 사뿐히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사박사박. 넷의 발걸음 소리와 ‘흡-’, ‘후-’ 하며 자연스레 내쉬어지는 숨소리가 고요한 새벽 숲을 울렸다. 혁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쌤.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 있는데, 잠 잘 때 천장으로 하늘이 안 보이는 집에서 살면 지구 상위 20프로래요.”


  평소 말수가 많지 않은 혁주가 이렇게 진지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우찬은 처음 보았다. 혁주한테 이런 면도 있구나- 내심 놀라웠다. 


  “근데 행복도는 천장으로 별이 보이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더 높대요.”

  “그러게. 그 까닭이 뭘까….”


  주거니 받거니 말을 나누며 검은 숲을 향해 들어가던 그들의 오른편으로 어느덧 긴 가지를 늘어뜨린 둥치 큰 나무가 나타났다. 박은 플래시를 비춰보며 ‘거의 다 왔다.’라고 말했다. 나무 근처에는 네 사람이 충분히 눕기 좋은 평평하고 너른 바위가 자리잡고 있었다.


  “자, 다들 여기 눕자.”


  박은 가방을 나무 근처에 풀고 바위 위에 돗자리를 깐 뒤, 우찬, 혁주, 명규를 이끌어 바위에 나란히 눕혔다. 

  그 순간,


  “와- 아름답다.”


  명규의 탄성과 동시에, 그들이 여태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이 얼굴 위로 가득 펼쳐졌다. 무한한 칠흑의 

우주에 무수히 흩뿌려진 뭇별들이 하나의 물결을 이루며 넘실거리고 있었다. 우찬은 어느 하나 반짝거리지 않는 별이 없음을 보았다. 크고 작은 크기와 관계 없는 공평한 아름다움을 이루며, 하나가 반짝이면 다른 것도 연이어 반짝거리며 사이좋게 춤을 췄다. 우찬은 숨이 막힐 듯한 황홀경 속에서 꿈결처럼 이런 말을 했다.


  “별들은 다 아름답네요….”

  “어쩌면 우리 모두 저런 별들의 하나일지 모르겠어…. 우찬이도, 혁주도, 명규도, 나도.” 


  바위에 누운 네 사람 위로 별들은 여전히 소리 없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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