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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C Aug 05. 2020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을 관두기로 했다.

야행성과 불면증 그 사이 어드메에서 짜증이 나다.

 오전 대여섯 시 무렵, 내 볼을 간지럽히는 짓궂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알람 삼아 잠에서 깬다. 아직은 굼뜬 몸을 있는 힘껏 쭈욱 뻗으며 스트레칭을 하고는 가차 없이 침대를 떠난다. 전기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가끔가다 삐걱대는 핸드밀을 돌리며 커피 원두를 갈아 모닝커피를 내릴 준비를 한다. 그리고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한 손에는 책과 다른 한 손에는 갓 내린 커피가 가득한 머그잔을 들고 창가에 내리 앉은 햇빛을 조명삼아 책을 읽기 시작한다. 내 사랑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으리라. 그렇게 한 삼사십 분쯤 책을 읽다가 슬슬 아침 먹을 준비를 한다. 잡곡빵 위에 딸기잼을 살살 펴 바르고 그 위에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아무거나 적당히 올린 다음에, 그 위에 아보카도 슬라이스와 스크램블 에그를 올리면 끝(이상한 조합 같겠지만 아주 매력적이다). 거기에 아몬드 밀크나 캐슈 밀크면 완벽한 한 상이다. 식사 한 시간 후에 가볍게 조깅이나 타바타와 같은 짧고 굵은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유의 운동 한바탕 뛰고 나서 샤워를 하고 본격적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니 목표로 하는 하루의 시작이다. 다들 자기 코가 석 자인 시대에 이런 호사스러운 아침의 여유를 누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일찍 일어나서 할 것을 다 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으리라. 이른 시간에 일어나면 좋은 점이 꽤나 많다. 우선 하루가 길어진 만큼 시간도 많아지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 반면에 저녁형 혹은 야행성인 사람들은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늦게 일어나는 턱에 은행 업무를 봐야 하거나 동사무소를 가거나 하려면 시간에 쫓기던가 아예 때를 놓치기 일쑤다. 길가다 본 예쁜 카페가 혹여나 6시 무렵에 문 닫는 곳이라면 웬만큼 마음먹고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꿈도 못 꾼다. 그 밖에도 난감하거나 불편한 일이 적잖이 있다.


 다소 비약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올빼미족의 난감함이다. 아니, 나의 난감함이라고 해야 할지도. 어찌 됐든 최근 몇 달 동안 아침형 인간 되기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새벽 5시 43분이니 결과는? 참담하다. 실패! 예술가 집안인 우리 가족은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전체적으로 늦다. 아무리 내가 이 집안의 돌연변이라고는 해도(다 같은 예술 분야에 있는데 나만 다른 쪽, 참고로 글과 상관없는 예술분야 전공이다) 유전자는 어쩔 수 없는 건가 하고 대자연의 섭리를 탓해본들 어차피 다 변명일 것이다. 왜냐하면 다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아침에 생활이 가능하니까. 나도 아침에 일어나려면 일어난다. 단지 좀비가 될 뿐이다. 특히 나와 내 동생이 그렇다. 또 다른 문제는 아침에 일이 있어야지만 일찍 일어난다는 것. 그렇다고 나를 속된 말로 건어물녀 취급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단지 많이 피곤해할 뿐 해야 할 건 다 하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데에 또 다른 치명적인 문제점은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면증이라면 불면증이랄까. 어떻게든 해보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해봤다. 따뜻한 우유도 마셔보고 잠이 잘 온다는 차도 마셔보고 상추 꽁다리도 먹어보고. 수면제 빼고는 다 해본 것 같다. 혹시 카페인 탓인가 해서 커피도 끊어봤지만 소용없었다. 하긴 아메리카노 더블샷을 마셔도 끄떡없으니 카페인을 끊든지 말든지 뭔 소용이 있었겠는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정이 있는 날이면 피곤함과 동시에 '오늘은 잘 수 있겠다'는 기대로 집에 들어오지만 잘 준비를 마치고 나서 침대에 몸을 뉘이면 그렇게 눈이 말똥거릴 수가 없다. 아놔,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건가? 다소 비위생적이지만 이를 닦아서 잠이 깨나 싶은 마음에 이 닦기를 포기하고 잠을 청한적도 있다. 그러나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버리니 얄밉고 야속하고 뭐 그렇다.


 오만 난리를 치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내리는 극약처방이 있다. 바로 '리셋'이다. 친동생이랑 쓰는 말인데 말하자면 강제로 패턴을 리셋시키자는 뜻에서 하는 행위로, 밤을 꼬박 새우고 나서 다음날 저녁까지 어떻게든 버티다가 이른 밤에 잠을 청하는 것이다. 이 녀석의 치명적인 문제는 그야말로 좀비가 된다는 것. 더불어 살도 찐다. 버티기 위해 뭔가를 자꾸 먹어대니까. 그것도 고칼로리 음식을. 예전에는 이 방법이 꽤나 먹혔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버티다가 오후에 잠이 들어 한밤중에 깨어버리니 말짱 도루묵이다. 억울함은 보너스렸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어쩌다 밤 열두 시 이전에 잠에 들면 기가 막히게 새벽 두 시에 눈이 떠진다는 것. 번쩍! 하고 눈이 떠지는데 개운해도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아홉 시든 열시든 열한 시든 열두 시 이전에만 곯아떨어졌다 하면 새벽 두 시에 벌떡! 그러고 눈을 감고 다시 자려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는 대로 짜증만 난다. 희대의 미스터리랄까. 최악의 짝꿍은 리셋 후 일찍 잠들었는데 새벽 두 시에 눈이 떠지는 경우.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니 다이어트도 잘 안되고 삶의 질은 더 낮아진다. 그 좋아하는 운동을 하기는커녕 받을 필요도 없는 스트레스가 야밤 폭식으로 이어져 살만 더 찌고 말이지. 단지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규칙적으로 알차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짜증이 극에 달한 어느 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사실 밤 시간도 알차게 쓰려면 쓸 수 있다. 공부든 글쓰기든 밤에 한다고 나쁠 것 없지 않은가. 빨래는 초저녁에 하면 되고 일찍 문을 닫는 카페는 늦은 오후에 가면 되고 은행 업무는 오후에 슬렁슬렁 가도 된다. 오전에 일이 있는 날에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중간에 3, 40분 정도 낮잠을 자도 되고 그럴 시간이 없으면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면 된다.


 가만 보면 나는 원래 이렇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나쁜 바람은 아니었지만)는 모르겠으나 아침형 인간 코스프레를 하겠다고 되지도 않는 주접을 떤 꼴이 되어버렸다. 사실 생각은 좋았지만 굳이 할 필요 없는 무리를 해서 되려 몸만 안 좋아졌다. 그래서 우선은 다 내려놓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한결 마음도 편해졌고 무엇보다 들끓던 자괴감이 없어졌다. 폭식과 야식으로 가득했던 생활도 없어지고 일주일 만에 살도 2킬로가 빠졌다. 물론 이별해야 할 살들이 아직도 많긴 해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생긴 대로 살기로 한 것이다. 용솟음하던 자괴감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고 오히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쓰게 됐다. 내 깜냥을 잘 알게 되었달까. 참 재미있는 것은 아침형 인간 되기 프로젝트를 관두고 나니까 조금 더 차분하게 나를 바라보게 되었고 개선할 점과 보완할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번 보이기 시작하니 마음의 한 구석탱이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오만가지 떼를 쓰던 꼬맹이가 슬금슬금 일어나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 남 따라 하지 않고 나는 나대로 내 할 일을 하면서 가야 할 길을 가면 되는 거였다.






 오늘도 역시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여전히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다면 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있는 이 곳,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들을 잘해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 개의치 않기로 했다. 손에 잡히지 않던 글도 이렇게 쓰고 있으니까 좋다. 운동도 다시 시작이다! 아, 이제나 저제나 베개에 머리 닿자마자 곯아떨어지는 사람들은 정말 부럽다. 아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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