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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승리'라 말하면 편해지나요

비혼주의자 못된 아들

by 캉생각

미혼으로 살고 있노라면, 혹은 결혼은 안 한다고 말하면 가끔은 이런 의견들을 만난다. (물론 현실의 지인이 아니라 인터넷상 실존 인물들의 의견이다.)

“결국 비혼은 정신승리 아니야?”

이 질문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웃었다. 아니, 정확히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호라, 정신승리?'

그럼 정신승리의 정의부터 잡아보자.

정신승리란 뭔가.

실제로는 졌는데, 마음속으로 이겼다고 우기는 것. 현실은 패배인데,

'나는 안 진 거야.'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


그럼 또 묻겠다.

비혼은 뭘 진 건가? 결혼 경쟁에서? 아이 낳기 게임에서? 정상 가족 만들기 대회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누군가 거기에 덧붙여 말한다.

“결혼을 못 하니깐 안 한다고 합리화하는 거지.”


잠깐.

내가 언제 결혼 게임에 참여했나?

내가 언제 그 경기장에 들어갔나?

이건 마치 길 가는 최홍만을 손가락질하며,

"저 사람은 명백히 실패한 축구선수야."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그는 축구선수가 되려고 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불편하겠지만, 이 일화는 이야기해야겠다.

이건 회사에서 만난 한 선배의 이야기다.(어쩌면 당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는 무심코 그리고 틈틈히 내 결혼 계획을 묻는다.


그런 그는 결혼 10년 차. 바쁘게 산다. 아이 둘, 아파트 대출, 학원 셔틀. 그러나 와이프와는 하루에 서너 마디만 한다고 했다. 주말이 되면 오히려 어색하단다.

“결혼 후회 안 해?”

매번 결혼공격을 당하던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

그는 턱을 괴고 우물우물 고민했다.

“후회까진 안 하지. 나 행복해.”

그런데 그의 눈은 피곤해 보였다.

내가 조금 더 솔직히 물었다.

“진짜?”


그는 갑자기 퍼뜩 정신이 든 듯 답했다.

“애들 때문에 힘들긴 한데, 그래도 보람 있어.”

“아내랑 안 맞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돈은 빠듯하지만, 그래도 살만해.”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이게 정신승리 아닌가?

공정하게 말하자. 나도 합리화한다.


주말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며,

“이러려고 혼자 사는 거지.”

나를 위해 비싼 선물을 사며,

“이게 인생이지.”

조카 보고 집에 돌아오며,

“애는 가끔 보는 게 딱 좋아.”


이게 다 합리화다.

인정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래도’가 없다.


결혼이 정말 하고 싶다면?

하면 된다. 그건 아주 정상적이고 축하할 일이며, 부러움을 살 일이기도 하다.


난 그냥...

그저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받지 않는 것.

남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는 것.

내 선택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원한거다.

이게 정신승리인가, 정신건강인가?


그럼에도 비혼을 정신승리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 인생에는 ‘그래도’가 몇 개나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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