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94 두 소녀의 뒷모습
바람이 불어오는 곳
두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소녀들의 뒤를 따라
느리게 걷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어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두 소녀가 화음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는
바로 그 뒤를
어쩌다 따르게 되었거든요
한 소녀는 키가 크고
한 소녀는 키가 작아요
키다리 소녀의 높은 소리와
키 작은 소녀의 낮은 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두 소녀는
서로에게 귀 기울이며
서로의 소리에 젖어들고
서로의 소리에 마음을 얹듯이
다정히 노래를 부르며 걸어갑니다
그러다 소녀들이 까르르 깔깔
웃음을 터뜨리며 걸음을 멈춥니다
뒤 따라 걷던 나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게 되었죠
소녀들이 중얼거려요
있잖아 우리 파트가 엉겼어
서로 상대방 파트를 부르고 있어~
그러면서 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립니다
나도 덩달아 소리 없는 미소를 지어봅니다
참 예쁜 소녀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웃어봅니다
그렇군요 서로 엉기는 것도
때로는 필요합니다
엉기기도 하면서 내 파트가 아닌
상대방 파트를 부르는 것도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입장을 바꿔보는 기회니까요
두 소녀의 뒤를 따르다가
갈림길에서 헤어집니다
안녕 소녀들아~
두 소녀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며 중얼거립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는
소녀들의 걸음걸음마다 즐겁고
신나고 유쾌하고 행복하기를~
소녀들을 안고 가는 바람이
사철 훈훈한 바람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