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습자 Jul 20. 2024

공무원과 보고(스피커 성능)

해해사이

나는 땡땡도(광역 지자체) 공무원이다.


공무원이 하는 보고는 보고 받는 대상에 따라 내부보고와 외부보고로 나뉜다. 내부보고는 조직 내 상급자에게 하는 거고, 외부보고는 대개의 경우 의원에게 하는 거다. 둘 다 정기적으로 하는 보고가 있는데, 특히 의원에게 하는 보고는 크게 세 개의 보고가 있다.


연초에 주요 업무 보고, 7월에 상반기 실적 보고, 연말에 내년도 예산안 보고(심의)다. 틀을 잘 만들어서 간략히 말만 하고 끝나는 간단한 보고가 아니다. 보고 뒤에는 의원들 질문이 쏟아지고, 공무원은 답변을 해야 한다. 가끔은 전투적인 상황도 펼쳐진다.


이때 보고하고 답하는 공무원(스피커)은 부서장이다. 스피커의 성능이 매우 중요하다.


보통 부서당 현원은 20~30명 사이다. 부서장은 이 인원이 하는 일을 사전에 공부해 저 상황에 대응한다. 사람마다 공부법이 다르고, 전투의 결과도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부서에서 경험한 K과장과 H과장 이야기다.


먼저 겪은 사람이 K과장이다. 부연 설명을 하면 전투에서 의원들이 보는 자료는 얇고, 공무원들이 보는 자료는 두껍다. 이름하여 '보조자료 및 질의응답 자료'. 이 자료는 보고 한 달 전부터 만들기 시작해 적어도 2주 전까지는 완성하고, 담당 업무별로 한두 차례 수정을 한다.


K과장은 D-15 쯤부터 야금야금 두꺼운 자료집을 본다. 그리고 D-3 정도 되면 팀별 회의나 각 팀장들에게 보고를 듣는 방식이 아닌  담당자를 한 명씩 불러서 그간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 두꺼운 자료집에 요점을 직접 메모한다. 전투 당일, K과장은 의원들의 예리한 질문에도 너끈히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을 이어 나갔다. 땡땡군에서 땡땡도로 전입 와 처음 만난 과장이라 나는 광역지자체 과장은 다 이런 줄 알았다.


K과장 다음에 H과장은 독특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이런 보고를 공부하는 스타일이 대단했다.

H과장은 D-15 쯤부터 두꺼운 자료집을 보면서 궁금한 게 있으면 곧바로 담당자를 찾고, 답을 종이문서로 만들어서 보고하게 했다. 그리고 이 종이를 이쁘게 잘라서 두꺼운 자료집에 붙였다. 이걸 수십 차례 반복했다. 전투 당일, H과장은 의원들의 쉬운 질문에도 어물쩍 부자연스럽게 대답을 툭 툭 뱉어냈다.



작가의 이전글 슬기롭다는 건?(슬기로운 좌파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