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창 취업준비에 몰두하던 친구가 갑자기 창업을 하겠다고 딴 길로 샌 적이 있다. 원래 그 친구의 취업목표와 삶의 목표를 자주 들었던 터라 갑작스러운 목표의 변경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뭘 해도 성실한 친구라서 잘 될 거라 응원했다. 친구가 갑작스럽게 목표를 바꾼 배경에는 "부의 추월차선"이 있었다.
내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에 대한 답을 고민할 때 그 친구는 부의 추월차선에서 나온 의사결정 기법을 나에게 권했었다. 덕분에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었고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번에 연휴가 길어서 책이라도 한 권 읽을까 싶어 집에 있는 책을 살펴보다 마침 부의 추월차선이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독서를 시작하게 됐다.
프롤로그를 읽으면 저자가 굉장히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엔 정말 많은 부자가 있으며, 네임드 부자도 아닌 사람이 부자가 되는 방법을 소개해준다고 하니 '네가 빌 게이츠 정도 되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완독을 방해하는 첫 번째 장애물이 프롤로그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한 사실은 누군지도 모를 엠제이 드마코라는 저자의 자산은 분명 내가 꿈에 그리는 정도의 부라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독자들의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이 첫 번째 시험을 분명 넘어서게 만들 것이다.
저자는 재무 지도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진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인도, 하나는 서행차선, 마지막 하나는 추월차선이다. 각 지도의 목적지는 가난, 평범한 삶, 부 이 세 가지를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각 챕터에서 지도의 공식을 수립하고 개념과 특징을 설명한다.
엠제이 드마코는 부의 3요소를 가족(Family, 관계), 신체(Fitness, 건강), 자유(Freedom, 선택)로 정의한다. 설명 필요 없이 누가 봐도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알 것이다.
인도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에 굉장히 충실하게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격에 빗대어 쉽게 비유하자면 '저축 따위 개나 줘' 또는 '난 오늘만 산다'타입이다. 이들은 하루하루는 행복할 수도 있다. 그들의 하루의 행복을 보고 있으면 나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가끔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만 일어나도 당장 대응할 비축자산이 없고, 미국같이 보증금 없이 매주 주거 렌트가 발생하는 나라에서는 집 밖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엠제이 드마코의 말에 따르면 인도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로또 1등이 당첨되거나 당장 거금이 생긴다 해도 금방 소비해버리고 만다고 한다. 이들은 언뜻 자유로워 보일 수 있으나, 사실 그들의 부의 방정식(부 = 소득 + 빚) 안에서만 자유롭다는 한계가 있다.
서행차선의 부의 공식은 부 = 주요 수입원(직업) + 부의 증식 방법(투자)으로 정의한다. 이는 원금가치 + 복리 이자로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원금가치는 근로소득이나 영세사업소득에 해당하는데 원금가치는 시간 x 시간당소득 이고, 시간 변수가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이므로 값의 증가에 한계가 있다. 엠제이 드미코는 이 부의 공식으로 부자가 되어 3F를 누리려면 빨라야 60대라고 얘기한다. 그가 제시한 몇 가지 통계자료를 보면 그건 단순 주장이 아닌 사실이다.
부의 추월차선 공식과 설명은 책의 반 권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본론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간단하게 요약하기 어려운 내용이기도 하다. 그는 부의 공식을 부 = 순이익 x 자산 가치 라고 한다. 여기서 순이익의 중요 요인들이 각 한 챕터씩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인 내용을 가볍게 설명하자면, 영향력(규모)을 키우고 시간에 종속되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라 등이 있다. 추월차선 5계명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설명은 책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존에 쓰던 글 하나가 완전히 날아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비패턴을 가진 주변 사람들을 보며 나의 소비 가치관에 찾아온 혼란과 결론을 쓰고 있었는데, 엠제이 드마코는 이 혼란스러움을 한 방에 시원하게 정리해준다.
아주 극단적이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 주변 사람은 인도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고, 나는 서행차선을 타고 있었다. 당연히 두 길의 가치관과 목적지가 다르므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인도를 재무지도로 가진 사람들은 현재에 충실하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저자는 추월차선이 답이다는 주장을 하지만, 가치관에 따라서는 인도를 탄 삶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 코로나 사태처럼 비상시 plan B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엠제이 드미코는 서행차선을 타고 젊은 시절 다 보내고 늘그막에 부자가 되어 3F를 누리는 것에 대해 아주 신랄한 팩트로 부정적인 해석을 한다. 재밌는 사실은, 한국에서는 60세까지도 청년층으로 보고 있다. 60세에도 사람들은 정정하고, 몇 년 전부터는 50~70대가 문화와 소비의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다. 제2의 삶을 맞아 활발하게 인생의 꽃을 피우는 그들의 노년을 볼 때, 가치관과 건강상태에 따라 서행차선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서행차선을 타고 있는 기간에 3F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하면서 가정에 충실하고, 친구관계도 지속하고, 동시에 건강도 챙기는 것. 세계적으로 굉장히 부지런한 민족인 한국인만이 가질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한다.
한편, 단군이래 최초로 돌입한 마이너스 성장 시대의 젊은이들 중에는 서행차선으론 답이 없다고 생각해서 추월차선으로의 차선 변경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저자는 추월차선을 타고 싶으면 당장 근로소득을 그만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하루 10시간여 회사에 저당 잡혀 사는 건 안타까워도 당장 쥐꼬리만 한 소득이 끊기는 거에는 부정적이라서 나만의 추월차선을 꾸준히 발굴하고 조금씩 준비해볼까 생각한다. 책 뒤편의 Q&A에도 당장 그만두지 못해도 꾸준히 노력하는 거에 대한 긍정은 저자도 하고 있다.
전적으로 이 책과 저자를 믿을 필요는 없다. 나는 어떤 책도, 어떤 사람도 정답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의 사고방식을 기준으로 긍정, 부정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의사결정, 재무설계 측면에서 유익한 정보도 있어서 내 연휴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목표를 구체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 책이 유익했다.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를 산다'같은 목표가 아닌, 3F를 누리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리는 방법을 책에서 제시하고 있어서 막연히 '부자가 되고 싶다'에서 발전하지 않는 목표를 좀 더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나는 인도를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혼란스러웠고, 이 마음을 정리하고 결론내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이 책을 읽기 전에 쓰고 있던 글에서의 결론은 '나는 물질과 재화로부터 자유로운 자연인이 되는 대신 물질과 재화로부터 자유로운 빌 게이츠가 되겠다'였다. 쾌락 위주의 소비는 허무하다. 한 순간 쾌락을 즐기고 난 후에 자산이 없다면 나한테는 그 행복이 지속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추월차선을 타고 부를 달성한 다음의 쾌락 위주의 소비는 허무하지 않다. 소비는 인도와 서행 차선을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허무할 뿐이다.
결국 읽기 전이나 후나 결론은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모순적이게도. 물질과 재화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부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