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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Dec 09. 2020

바둑이


이 녀석은 바둑이. 꼬박 1년을 교감한 길 친구다.

2017년 여름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원 옆 골목길에서 만난 바둑이는 그야말로 동네의 대스타였다. 오는 사람을 반기진 않았지만 손길을 거부하진 않았다.


다소 까칠했던 그와 처음 친구가 된 것은 지금의 남편이다. 고양이에 별 관심이 없던 남편은 순전히 내 환심을 사기 위해 바둑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흰돌과 흑돌이 섞여 있는 것 같다며 '바둑이'라는 이름도 직접 붙였다. 다소 불손한(?) 취지였지만 바둑이는 곧 남편뿐만 아니라 내게도 잊지 못할 존재가 된다.


처음 만났을 때 6개월 령 정도 되어 보였던 바둑이는 여러 마리의 동생들과 함께였다. (동생들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다.) 우리가 자주 가던 북카페 앞이나 편의점 근처를 떠돌았던 그들은 주민들이 사랑을 먹고살았다. 산책에 나선 주민들은 바둑이들에게 무엇이라도 하나 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 덕분에 바둑이들이 머물던 인근 편의점에는 고양이 간식 코너가 새로 생길 정도였다.


바둑이와 동생 이노센트


우리는 바둑이들을 ‘못난이 3형제’로 불렀다. 품종묘를 차지하고 우리 집 터줏대감인 코숏 ‘토리’나 동생네 반려묘인 ‘단이’와만 비교해도 못생긴 매력이 철철 넘쳤다. 예쁘지 않아도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3형제를 통해 알았다. 동네 사람들은 바둑이들을 제각각의 이름으로 부르며 애정을 쏟았다. 감사하게도 한 주민께서는 겨울을 날 수 있게끔 집과 급식소를 마련해 주셨다.


당시 나와 지금의 남편은 인천과 서울을 오가면서 연애 중이었기 때문에 내가 바둑이들을 볼 수 있는 날은 일주일에 한두 번이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둑이들부터 찾는 것이 습관이 됐지만, 그마저 업무가 바쁜 시기에는 놓치는 일도 많았다. 그럴 때는 남편이 기꺼이 소식통이 돼줬다. 사진을 찍어 보내 주거나 영상통화를 걸어 실시간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바둑이는 갓 연애를 시작한 우리들을 더 가깝게 만들어준 기쁨이었으며, 지친 퇴근길을 웃게 만드는 힐링이었다.


긴 외출이 잦은 길고양이들과 달리 바둑이는 좀처럼 영역을 떠나지 않았다. 그 덕분이라 해야 할까. 우리는 바둑이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을 매주, 매월 확인할 수 있었다. 바둑이는 우리와 만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시름시름 앓았다. 바둑이에게 집과 먹이를 내어주던 주민분이 병원을 데려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지만 바둑이의 상태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바둑이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둑이가 아팠을 때


바둑이가 아프고 나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처를 들여다보곤 했다. 바둑이는 집을 두고도 근처 화단에서 몸을 웅크렸고 움직임이 없었다. 녀석이 떠났음을 안 것은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마지막으로 본 힘없는 눈빛이 마음에 걸려 괜히 인터넷 커뮤니티를 살펴보다 그의 마지막을 기록한 글을 만났다. 생전 주민들의 사랑 속에 살던 바둑이는 마지막까지 따뜻한 보살핌 속에 갔다. 슬펐지만 다행이었다.


남편과 나도 결혼을 하며 바둑이의 동네를 떠났다. 아마 다시는 그곳에 갈 일이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도 우리는 바둑이와 영등포 고양이들의 이야기로 그때를 추억한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사회초년생의 귀갓길을 맞아줬던 바둑이. 초보커플의 설레는 산책길을 맞아줬던 바둑이. 그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골목에 쪼그려 앉았던 우리 둘의 모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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