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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Jul 10. 2024

25년지기,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다.

Vulnerability, fragility, but awakening

내 절친이 죽었다.


내 방어벽이자, 내가 매일 입고 다니던 방탄조끼, 어떤 면에서는 나를 감싸고, 나와 오랜기간동안 함께 했던 내 아픔의 감정, 내 삶의 추진력이자 원동력, 선택의 순간에 여지없이 내 의사를 지령해주었고, 누구보다도 나 자신과 가까웠던 내 생존의 힘, 20년 묵어 구린내도 좀 나는, 그러나 부정할 수 없이 나와 가장 친했던 내 친구, 내 아픔 말이다.


내 삶은 이 친구를 컴프로마이징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봐도 과언이 아닌데( 내 친구에 대한 소개는 캐나다 하트 시그널과 괴롭다 이민 매거진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상담치료와 글쓰기라는 수단을 통해, 아픔을 직면하고 흘려보내고나니, 어떤 면에서는 내 20년지기 절친, 내 갑옷, 내 삶의 지령자가 이제 없는 '천둥벌거숭이가 된 느낌' 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흘러들어와 나 요 몇일 사실 좀 당혹스러운 중이다.



그렇다, 나는 그동안 내 가족이 내게 준 상처와, 생존했기위해 온전히 그것들을 묵묵히 감당해야했던 나의 현실, 그  비극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그것을 컴프로 마이징하기 위해 열심히, 잘, 살아온 사람이었다. 빨리한 결혼도, 배우자 선택도, 직업 선택도, 학교와 전공선택도, 캐나다 이민도, 출산도 그리고 육아도... 사실 지금까지의 내 삶의 한 단계, 한 단계가 그 아이의 영향권을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이다. 


아픔이 삶의 동력이었기에 엔진을 새차게 굴리며 살아왔음을 발견했다. 지난 10개월간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흘려보내는 기간을 보내었더니, 진짜로 그는 내 마음에서 내 허락도 없이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그저 직면하기만 했을 뿐인데, 내가 그동안 예상했던 슬픔의 직면과 헤어짐이 이토록 허무한 것이었나. 거대한 괴물같은, 내가 무너져 더이상 스스로를 회복시키지 못할 만큼 암담하기 짝이 없을 것 같아 누가볼까, 아니 내 자신에게도 들키기 무서워 꽁꽁 숨겨놓고, 들키지 않으려 완벽주의, 우월감을 위한 노력, 참혹하리만치 엄격한 기준을 갖고 내 자신을 단련하던 (compromising)나 였는데, 막상 아픔을 직면해보니, 슬픔의 기간은 내 예상보다 훨씬 짧았고, 터널속은 어둡고 습했지만, 나를 덥칠 듯 거대한 무시무시한 괴물같은 것이 없었다. 물론 나도 모르는 새, 하루종일 눈물이 줄줄 흘러나와 남들이 보는 자리에서 통제 불가능한 날들도 있었고, 온 몸에 기운이 빠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슬픔에 젖어 있는 날도 있었지만, 그 슬픔은 채 10개월을 가지 못했다.



생각보다는 만만한 놈이었다.



문제는, 이제 내 힘은 내 삶의 방향은, 내 노력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 것일까...이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같이 데리고 살던 슬픔을 처분하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일만 알아서 찾아올 줄 알았는데, 황당무계한 이 감정은 무엇일까, 슬픔도 아픔도 내가 데리고 산 기간만큼, 내 마음의 포션이 나름 거대했는지, 든자리는 표 안나도 난자리는 표 난다며, 마치 내 곁에 있었던 가까운 친구 하나가 멀리 다른지역으로 이사가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는 그런 느낌이 이런걸까. 슬픔과 어린시절 아픔, 상처는 부정할 수 없는 내 오랜 친구였던 것이다.

 


한편,  공허감이라는 반증에 비친 회복을 경험한다.



말로만 듣던 마음의 치유라는 것이 이루어진 것인가, 말로만 듣던 아픔의 극복이 진짜로 이루어 진 것 같다. 나 진짜 믿어도 되나?


아픔의 감정과 이별하고 난 후의 공허감이 진짜 찾아오다니... 하하. 믿어지지가 않는다. 아쉽지만 기분 째진다.




내 담담한 감정 이야기를 들으신 상담선생님께서는 내게 말씀하셨다.

장례식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탄생축하식이 필요하다고.


재탄생 축하식은 말로만 듣기에도 달콤했다. 달콤한 케익위에 활활타오르는 촛불, 그 따스한 온기처럼 나 스스로를 이제 그만좀 혼내키고 앞으로의 삶에서 따뜻하게 감싸주어야지...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내게 진지하게 다가왔던 건, 장례식이다. 슬픔 장례식, 마음속 깊숙한 곳에 내가 알게 모르게 20년을 살았던 고통을 위한 장례식. 생각해보면 나는 38년의 일생에서 누군가를 한번도 떠나보내본 적이 없다. 어릴때 외할머니를 위한 장례식에 참석해본적도 있고,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엄마의 동생, 즉 외삼촌의 사고로 인한 죽음을 맞이해본 적은 있지만, 사실 그 두분 다 나와 감정적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와 20년간 가장 친하게 지냈던 슬픈감정이란 아이를 어떻게 보내주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주변사람의 소중한 어느누가 작고하셨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길이 서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주변사람이 아니라, 나다. 오랫동안 내 자신과 동일시하던 그런 친한 친구가 이제 없다.


 아니, 이미 붙잡아봐야 소용없는 이미 떠난 아이를 어떻게 애도해야하는지... 사실 모든 죽음은 예고가 없고, 감정처리는 오롯이 보내주는 사람 몫이라는 것에서 이 또한 장례식이 맞구나 생각든다.


이별, 이미 이별한 거다.

어이없게도 황망하다.




장례식, funeral


슬픔이 사라짐에 대한 조의를 귀여운 애들 장난으로 생각할까 뻔한데 내 남편에게는 이 사실을 이야기할까? 이야기하지말까?

이야기하지 않는것으로 당연시했으나, 이야기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남편도 알아야할 테니까, 이제 내 오랜 친구는 내 곁에 없고, 나는 이제 그 친구 없이도 잘 살아갈테니까.

내가 너무 변할지도 모르니까, 이 사람에게도 각오 단단히 하라고 말로 설명하기보다 장례식을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이제 더 이상 나 아닌 타인을 위한 컴프로마이징의 인생은 없다.


Great is thr art of the beginning, but greater is the art of ending by Henry Wadsworth Longfe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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