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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Jul 17. 2024

잔인한 현실을 마주할용기, 선택할 힘이 생기다.

좋은 것들 중 더 좋은 것을 엄선할 결단력, 그런 사람들과의 모임

예전의 나는 나의 이 브런치 사이트에 캐나다 이민에 관해서 내가 직접 경험한 여러가지 정보를 공유하는 목적의 포스팅을 했었다.한국에 계시는 독자들이 대부분이며, 그 분들중 상당수는 이민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데 내가 캐나다에 살고 있기 때문에, 10여년이상 쌓인 캐나다 생활의 풍경과 개인적 노하우를 남기면 독자에게 재미와 정보를 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금전적 수익은 원래도 생각하지 않았고, 버젓히 있는 응원하기 기능또한 활성화 할 계획이 없었다. 나의 글쓰기는 나와 독자에게 돈 이상의 가치를 경우에 따라 실현시킬 수도 있는일이기 때문에, 개인적 의견이 들어간 편협한 정보이나마 부디 각자 상황맞게 잘 이용하길 바랬다.


그러는 동안 해외이민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많은 분들은 내 페이지를 즐겨 찾아 보셨다.

경험해 본 바, 사람이 모두 다르기때문에, 각각의 성격과 성향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인생의 열정을 투기하는 분야도 모두가 달랐다. 모두를 응원한다. 



시간을 정해서 따로 카톡에서 서로의 고민을 쉐어하고 사는 이야기를 솔솔히 하고, 두번 이상 직접 만나 뵈었던 분들을 제외하고는, 사실 내게 생산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제공해준다고 보는 관계는 드물었다. 하지만, 정말 대부분의 분들이 매너를 지켜주셨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 나를 찾으셨던 입장이셨던 것 만큼, 과분한 친절을 내게 배풀어주셔서, 나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최대한 솔직하고 좋은 말씀을 성의를 보태 전달해드렸다. 아직도 나에 대한 그 분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전해주셨던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며 내 삶에 용기로 쓸수있음에 감사하다.



90을 뺀, 10은 항상 우리를 괴롭힌다. 10에 속하는 분들은 일반적으로 도움을 받고, 도움을 드리는 것과 관련해 그렸던 우리들의 그림의 결, 그것 달랐다. 그래서, 상대가 떠난 다음에도 산발하는 나의 에너지 방향을 정리해야했던 것, 후폭풍을 감당해내야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가장 황당했던 것은, 상대가 해 달라던 대로, 내가 느낀 캐나다를 기초로 그 차원에서 정성들여 답변을 해 드렸으나, 답변이 자신의 기대와 방향이 다르기에 나의 의견이 곧 나의 벌전이 되어 되돌아 올 것 이라 저주하는 사람이었다.


엥? 나는 당신을 저주할 생각이 없고, 오히려 축복하고 싶을뿐인데...나의 의도가 무엇이 되었든 들을 생각 없고, 무조건 싫으니  나를 차단하거나, 당사자인 내 의도보다는 자신의 오해가 더 맞다며, 끝까지 주장하는, 일방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 상대를 보았다. 괜한곳에 마음을 썼던거다.



진위여부를 막론하고, 자신과 생각의 방향이 다르면, 그냥 다름을 생각하시면 되시지 굳이 자신이 듣기 싫은 말을 들었다고해서, 남을 저주하는 말로 되려 자신이 벌전을 벌어가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절대자도 아닌 인간인 내가 남의 인생에 대해 도움을 준다, 그런 부담은, 아무리 무료였을지언정 그만두자! 가볍게 내려놓게 되었다.


 궁금하면 안 물으시면 된다. 그럼 나도 편하다. 궁금해 질문하는 사람에게 자세히 대답해주니 받아들이기 힘든 어떤 지점부터는 오해가 발생한다.


정작 자기중심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통합적 사고를 획득하기 어렵고, 그로인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주변사람에 대한 혐오의 말로, 인생으로 이어질 수 있음에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차이점을 적으려니까 다 잊어버려 기억조차 가물, 지난 가을 그리고 겨울의 일이라 평소에는 생각도 않고 사는...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다. 



변수가 어찌했든, 사람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쨋든 90점이니까 내게는 나쁘지만은 않았던 시간이었다. good.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감사와 격려를 받는건 역시나 판타지였으며 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는일임에 분명해진 시간이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민 정보제공글들을 쓰던 것에서 방향을 바꿔, 나의 내면 이야기를 써 내려간 후, 그러니까 지난 봄 부터는 나의 온,오프라인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을 극복해나가고자 하는 분들이 내 사이트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 내 독자님들은 자신의 마음속 아픔을 PTSD가 아닌 성장으로 바꾸어 사는 소중하고 용감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제 진짜 내 사람들이 모이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치동보다는 캐나다'라는 매거진을 쓸 때에는,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사는 사람인지 정작 나자신 스스로도 구체적으로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일까?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이 저마다 제각각 이었지만, 내가 내 스스로 내 마음과 기억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된 그 후, '캐나다 하트 시그널', 그리고 '괴롭다 이민'을 쓴 후에는, 진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자소서를 입사서류에 제출하라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자신을 한번이라도 마주해본 사람은,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고, 나와 남의 핏을 맞춰갈 수 있기에... 브런치 글들은 기업에 입사하려 쓰는 자소서가 아니니까, 진짜 솔직해도 되는거다.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쓰며, 내 색깔을 발견해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려 작가자격시험까지 통과했건만, 굳이 남이 읽으면 도움이 될까 글을 쓰며, 굳이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이 시간과 공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놀랍게도, 글 말고 진짜 삶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무조건 여러 방향에서 열심히 살 때에는 이사람 저사람 다 만나게 되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제각각의 방향대로 뻗어나가는 힘에 의해 내 스스로가 힘에 부쳤다. 그동안의 나는 37년간, 러닝머신에서 최대한 오래 버티거나, 높은 산에 오를 수록 성공하는 삶이라는 자세로 살았던 것같다. 뭐, 공기 좋으니까, 몸에 좋을 테니까... '너는 참 에너제틱하다' 라는 말을 들어도 무슨말인지 모르고, 그저 칭찬이라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어느 지역이 아이 키우기 좋다면, 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좋은 지역으로 간다면, 당연히 좋은 분위기를 아이에게 선물해 줄 수 있고, 자연히 내 아이들도 잘 클거라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의 에너지에 뭍어 가겠거나 믿으며 살았던 것 같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얻으려 애썼고, 사회의 하이어라키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를 발견했다. 오히려 한국에서 살 때는 덜 했지만, 새로운 사회에 와 믿을 것은 사회적 규칙이겠거니 생각하며, 인종차별이나 성갈등. 캐나다에도 존재하는 ageism, 어떠한 형식이든 다수 안 소수로서의 위축, 그리고 민족갈등에 더욱 신경을 쓰고, 그 안에서 규칙을 발견해 맞춰사는 것이 안정적일 거라 생각하며, 최대한 촉수를 곤두세우고 그 규칙을 읽으려했던 것 같다. 세상규칙이 내게 별로 유리하게 짜여져 있지 않음에 화가 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그나마 유리한가를 생각하는 트랩에 걸려 헛 손질, 헛 발질만 하며 공허함에 허우적 되었었다.





나의 내면의 갈등을 글을 쓰고 카운셀링을 받으며, 용기와 성실로 최대한 자세하게 적극적으로 내게 있던 생각과 느낌을 마주하고, 흘러내리고, 과거의 사건과 감정을 분리해내는 작업을 통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난 후 부터, 나는 나의 37년간의 그 모든 행적들이, 정작' 내'가 빠져버린 행동임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마음에 스턱 된 채 프로세싱되지 않아 난삽하는 마음,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 현상과 실존이,  생각과 사실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의 내 내면의 교란이 현실을 눈멀게 하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내 사람들이 눈에 보이고, 내가 가는 길이 보이고, 내 선택이 보인다. 남들이 좋다고 생각해서 오는 이민이 아니라, 남들이 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광고해서 오는 이민이 아니라, 북미가 남미보다 막연히 더 나아서, 미국보다 캐나다가 나아서, 또는 지역사회가 1등이라서 나도 당연히 맘 놓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님을 배운다.


모든 선택과 판단에 '현재의 나'를 믿게 되었다.

나로서 살아 숨쉬고, 생존하고, 주변과 관계 맺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이 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에 살고 있는대로 계속 살아간다. 자신의 삶의 방식안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삶인지  타자 안에 뭍혀 살고 있는지 그런거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도를 적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남과 비교하는 자기자신에서 자유로와지고자 눈을 막고 귀를 막고 도망다닌다. 도망다니는 것인데, 그것이 자기로 살고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버린다. 은둔을 명상이자 요가라 믿는다. 그리고 저마다의 마음의 아픔을 채 처리하지 못하고 간직하며 사는것이 기본값이니 서로가 그런것을 드러내거나 묻지 않고, 묵인해주는 것이 예의라 믿으며 그렇게 나와 남에 대해 피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게 다수의 흐름이다.



꼭 특별히 과거의 아픔이 있거나 없는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 일 수 있는가, 나의 가장 비참한 약점을, 찌질함을, 못생김을, 치욕의 기억을, 감정을 도망가지않고, 숨기지 않고, 스스로 직면하고 처리할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다.



조금만 용기내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것은,  실로 우리가 살아 숨쉬는 한, 세상에 존재하는 한 생물도 빠짐없이 순간순간 헤쳐나가야만 하는 잔인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모든 것이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존재하며, 그를 이루기 위한 근면함과 동시에 노력으로 안되는 것을 수용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꿀 수 있다고 기적을 믿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노력하고, 정작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 내 손안에 들어온 것이라 생각해 노력하기를 게을리 한다.  의식적으로 잘못된 선택과 노력을 집약하는 것, 그런 패턴의 반복은, 사실 그 둘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 같다.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바꿀 수 있는것과 시간이 지나도 없는 것을 구분해 내기 위해서는, 먼저 그 둘을 판가름할 수 있어야하는데, 판가름의 능력은 내 스스로 '잔인한 현실'을 맞닥들이고 바라보고 판별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하는 데서 온다. 잔인한 현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자신의 과거, 상처를 마주하는데서 근력이 맨처음 생긴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정복하는 것과 같기에, 그것을 해 내면, 이 세상 아쉽거나 무서울 것이 별로 없다.


30년동안 내 삶의 방향을 지령하던 과거 감정과의 분리는 내 삶에서도 강력한 결단력과 선택의 권리를 선물로 주었다.


What is not working is not going to magically begin working. Admit hopeless.

Necessary Endings: The Employees, Businesses, and Relationships That All of Us Have to Give Up in Order to Move Forward

Book by Henry Cloud



결단력.


나쁘니까 버리고, 썩었으니까 취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성인에게 있어서는 능력이라 할 수 없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엄마따라 마트가서 눈에 빤히 보이는 성한 과일 고르는 수준 차원의 변별력을 넘어서며, 좋은것을 포기하고, 더 좋은 것들만을 선별할 수 있는 힘이 생겨버린다.


선택의 권한이라는게 나라는 사람에게도 원래부터 존재했던 거다. 손발이 꽁꽁 언 채로 포기하고 살아야했었지만 말이다.


그동안의 나를 한심스러워함이 아니다. 그렇게라도 생존해준 나를 고마워하며, 나는 생존자이며 승리자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나를 격려하고 있는거다.


The old way must end.

떨어지지 않는 꽃을 감당하지 않는 자는 그 자리에 맺는 열매를 맛볼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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