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랑삼 Feb 24. 2021

머리 위 나뭇가지에 행운이 앉아있을지도 모른다

행운을 담으러 숲에 갑니다




보께떼에서 맞은 첫 번째 아침은 무진 추웠다. 파나마시티완 전혀 다른 계절이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두꺼운 집업 후드를 결국 빼버렸던 게 아쉽다. 토레스델파이네 트래킹 할 때 입고 다닌 옷이었다. 설마 파타고니아만큼 춥겠어?  라고 생각했던 게 떠오른다. 음. 아침은 그곳 만큼이나 기온이 떨어진다는 게 놀랍다. 겹쳐지는 대로 반팔과 긴팔 위에 또 긴팔을 껴입었다. 산속 트레킹을 하려면 체온 관리가 중요하다. 요즘 같은 시기에 감기라도 걸리면 여러모로 피곤해질 것이다.








파이프라인을 따라 걷는 산책로




트래킹이 시작되는 입구까지 차로 이동하는 길. 창문으로 고산지대의 차고 신선한 바람이 들어왔다. 폐에 가득 머금어 보려는데 애로사항이 있었다. 으악! 코로 칠성사이다 마시는 기분이야, 코 따가워.  낯익은 풍경들이 지나치니 2년 전 그곳에 서서 구경하던 우리의 실루엣이 그려졌다.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떠올랐지만 굳이 말로 꺼내놓진 않았다. 눈이 시린 아침 공기를 뚫고 지났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의 갓길에 차를 잘 주차를 했다. BIENVENIDO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표지가 있는 입구에서 엠베라 민족의 아이들이 오밀조밀 앉아있었던 게 금방 떠올랐다. 두두는 표지를 짚고서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우리는 비포장도로를 걸어 올라갔다.







꽃밭을 누비는 강아지




사유지로 들어가는 골목에 철문이 달려있었다. 그것 외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방문객을 보자 철문 근처의 작은 집에서 느릿느릿 명부를 들고 나오는 젊은 엠베라 여인도 그대로였다. 나는 여전히 파나마의 민간 공원 규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의외로 입장료를 수금하는 주체가 산길의 주인은 아니었다. 우리는 산길에 이르기 전까지 그들의 사유지를 지나는 것에 대한 통행료를 내는 것이었다. 그 사이 1인 3불이었던 요금은 5불로 올랐다. 명부를 이름을 쓰기 전에 손 소독을 하는 프로토콜도 생겨났다.





나만 모르게

어느 나뭇가지 위




좋은 기억을 남기고 간 장소에 다시 갈 수 있다는 것은 복 받은 일이다. 삶의 반경이 넓어질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달라진 풍경을 하나하나 살피며 2년 전 이 길에서 우리에게 일어난 작은 이벤트가 떠올렸다.


두두와 나는 처음 만난 파나마의 고산 속 세상을 즐기고 있었다. 길 위엔 우리와 앞서니 뒤서니 걷던 한 '그링고'(중남미 사람들이 보통 북미의 백인을 칭하는 말) 사내가 매우 신중한 걸음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의 눈은 시종일관 나무 사이를 향했다. 나무에 감싸여 어둡던 길은 개울이 흐르는 계곡을 만나 빛이 밝게 들어왔다. 물가 너머에는 그 친구가 역시 나무를 보고 서있었다. 겨우 인사 한 번 한 사이인 그는 우리를 보더니 입을 벙긋거리며 여기로 오라는 급한 손짓을 보였다.



쟤가 뭔가 발견했는가 보다. 파이프를 묶어 만든 다리를 건넜다. 저기 새가 있어, 께짤이야. 그의 손길의 끝을 따라가니 오묘한 빛깔의 새가 앉아 있었다. 한 마리를 찾고 기뻐하는데, 옆에서 저기 봐 한 마리 더 있어, 그리고 또 누군가가 아니야, 모두 세 마리야! 께짤 수컷 두 마리와 암컷 한 마리가 키 큰 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세 사람 사이에 조용한 감탄이 정신없이 오고 갔다.




빨간 배로 찾아보는 께짤 세 마리, 2019년 보께떼




고마워, 오늘 께짤을 볼 수 있었던 건 다 니 덕분이야.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린 그 친구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했다. 멀리 있던 우릴 불러줘서, 손짓으로 바루 산의 보물들을 가리켜줘서, 쾌히 우리를 새로운 즐거움 속에 초대해 줘서 고마웠다. 당연한 호의는 없다.

만약에 그날 그 트레일에서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으면, 우리는 이 새들을 발견했을까? 아메리카의 전설이 내려앉은 나무 아래를 재잘거리며 지나가버렸을지도 모른다. 새를 만난 것만큼이나 그 친구를 만난 것도 내겐 행운이었다.







다시 만난 파이프라인 숲의 세계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몇 달 전 카테고리 3등급 허리케인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었다. 세 마리의 께짤을 지켜봤던 계곡 주변으로 넘어진 나무들이 쌓여있고, 파헤쳐진 흙은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를 보는 것 같았다. 큰 바위돌이 굴러 내리는 소리는 얼마나 무시무시했을까. 며칠 내도록 몰아치던 폭풍 속에서 새들은 잘 버텨냈을까? 


하지만 오늘은 그저 맑은 하루의 아침. 꺾어진 숲의 공간으로 볕이 더 많이 스몄다. 우린 처음 께짤을 만났던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새들이 앉아 있었던 나무가 어디쯤인지 눈으로 찾아봤다. 눈길을 잡던 빨간 배털도 긴 꼬리깃도 없었다. 혹시나 같은 자리에 다시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접어두고, 길을 이어갔다.









이번 보께떼 방문 목표의 첫번째로 오른 것이  괜찮은 께짤 사진 하나 건지기였다. 벼르고 벼러서 150-600m 초망원 렌즈도 하나 장만했다. 렌즈의 경통을 최대한 줄여도 팔꿈치에서 손목까지의 길이가 될 정도로 큰 렌즈다. 가방에 렌즈와 카메라를 넣고 어깨에 걸머지니 꽤 묵지근하다. 이제 장비도 갖췄겠다, 욕심도 한가득이 됐다. 우린 바루 화산을 여행하는 기간 동안 께짤을 만날 때까지 매일같이 산으로 들어 가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뭐 바람처럼 새가 딱딱 나타나주겠나.

기대와 욕심에 대립해 비판와 비관도 때때로 머리에 일었다. 노력해도 새를 볼 수 없다면 별 수 없다. 기대에 비례해 어느 정도의 실망이 따르는 건 익숙한 이치다. 낙담에 빠지면 우리가 지난 한 해동안 배웠던 삶의 가치를 떠올려본다. 작년에 우리가 빼앗겼던 것들. 건강과 자유. 이렇게 다시 생각하고 보면 자연 속을 내 몸과 의지대로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송할 지경이었다. 새가 없음 원숭이라도 찍어가면 되지. 아님 야생화라도. 




우리는 회귀점을 돌아서 다시 걸었다. 완만한 경사라도 걷다보니 1800미터 고도까지 올랐다. 나는 새도 원숭이도 무거운 카메라도 다 잊고 돌부리를 살피며 앞서걸었다. 내리막을 내려왔을 때 뒤에서 두두가 조용히 힘줘서 날 찾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오르막 위에서 숲을 향해 있는 두두가 두 글자의 단어를 연거푸 불렀다. 눈치가 온 나는 움직이면 손으로는 소리 없이 가방 지퍼를 열었다.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영차 끄집어냈다.

컷 두 마리가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가지에 앉아 있었다.




깃털색이 조금씩 다른 께짤들, 2021 보께떼




삼각대가 없어도 좋아




삼각대 없이 선 채로 망원렌즈를 찍으니 초점이 맞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께짤을 보낼 수 없어! 젖은 흙, 벌레 따위로 부터의 생길 뒷일은 무시하고, '앉아서 쏴' 자세로 카메라를 잡았다. 온몸으로 감싸 쥐니 카메라의 움직임이 훨씬 줄었다. 뷰파인더로 새의 움직임이 더 가깝게 보인다. 그리고 안개비가 폴폴 날리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따금 몰아친 바람에 가지가 휘청이고 깨짤의 꼬리깃도 우아하게 펄럭였다. 보께떼 사람들은 이 비를 바하레께Bajareque라고 불렀다. 비와 바람에 붙여준 이름을 알고 나니 파란 하늘을 가리던 야속한 비도 멋스럽게 보인다.



풀숲에 웅크리고 앉아서 사십분 동안 우리에게 강림한 께짤들을 지켜봤다. 이 땅의 선주민들이 신으로 모시던 새였다. 아무도 없는 숲, 흩뿌리는 안개비를 조용히 맞고 있는 새를 지켜보는 그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초록빛깔, 다른 한마리는 더 터키색에 가까운 빛깔을 띄었다. 두 마리의 새는 지나는 바하레께를 피해 잠시 쉬어가려던 것인지 꽤 오랫동안 그들이 선택한 한 가지에 머물렀다.




숨겨진 께짤 이야기 : https://brunch.co.kr/@23hees/46





메소 아메리카의 창조의 신이 깃든 께쩰. 우리에겐 굳럭! 의 상징이다




내가 이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었어?



새를 만난 놀라움에 스스로 물었다.

분명 난 운이 좋다, 지금처럼 건강하게 여행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도 확실하다. 그렇지만 소위 '뽑기 운'이라거나 머피의 법칙 같은 '마이크로'한 운수 테스트에서는 나 홀로 씁쓸해 하던 때가 있다. 내가 서 있는 줄이 제일 느리게 줄거나, 마트 입구에 가까운 좋은 주차 자리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든가, 가위 바위 보로 얼마나 많이 심부름을 해야 했던가 (가위바위보는 운보다 실력이 따른다는 것도 이해는 한다.)

그런 내가 그 만나기 어렵다는 께짤을 한 번만에 봤다?! 내 운빨에 대해 기존의 판단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딱딱 찍혔다.



께짤의 등장에 경이, 환희와 긍정과 낙관, 낭만에 휘감겨 있던 나는 곁으로 다른 등반객이 다가오는 걸 아주 모르고 있었다. 영어식 굴리는 발음으로 '부에노스 디아스(좋은 아침)'하는 인사에 번뜩 그녀를 처다봤다. 내가 길을 막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특별한 새들의 위치를 가르켰다. 2년 전, 그 친구가 우리에게 보내던 표정과 몸짓으로.



그녀의 반응은 예상보다 더 시큰둥했다. 혹시나 다른 언어를 쓰나 싶어 영어로도 말을 전했다. 대답이 없자 아메리카의 전설적 새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녀는 몇 번 고개를 쭉 뻗어 보더니 금방 길을 따라 가버렸다. 그 모습이 의아해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녀는 나무를 흔들며 우리는 이해 못 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새보다 이국의 식물에 더 관심이 많았는 지도 몰랐다.

우리의 행운의 아이콘이 그녀에겐 그 만한 가치는 아니었다. 그녀의 행운은 다른 것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지나쳐 버릴 존재나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행운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께짤 만나면서 나는 내 몫의 행운에 대해 고민했고, 새로운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운이 좋은가?

나는 운이 좋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운이 좋은 사람이기 위해 노력했다. 

가능한 자주 새의 서식지로 갔다. 또한 이른 아침에 움직이는 새들의 생태를 따라 되도록 일찍 움직였다. 그리고 조용히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그것은 께짤, 나의 행운의 상징을 마주하는 가능성을 높히는 분명한 요소들로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운수를 판단하는 척도가 얼마나 새를 자주 찾아보는지 따위에 따라 가늠이 될리가 없다. '께짤을 목격한 사람은 운이 좋다.'라는 유치한 대명제로 '나는 운이 좋다'고 결론을 내려고 했다. 나는 시작부터 오류인 그 질문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오류와 조작으로 평가되는 나만의 운수테스트에서 스스로에게 합격점을 주고 싶었다. 판단가능한 노력과 의지보다 추상적이고 불확실해도 '나는 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결과를 더 유연하고 자신감있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께짤이 불현듯 사라졌다. 카메라 사진을 확인하고 나무를 올려다 보니 새가 있던 자리마저 잃어버렸다. 새는 아무런 낌새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날아갔다. 한참을 지키던 자리를 털고 우리도 우리 갈 길을 갔다. 발걸음도 가벼워라. 내게 이런 행운이 있다니. 비록 내가 발견하지는 않았지만, 새를 잘 찾는 동행이 있는 것도나의 운이니까.

그나저나 두두마저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렇게 찾아다니던 새도 못 알아보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한번 더 새겨본다.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면 내 머리 위 나무가지 위에 행운이 내려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메리카의 아이콘이 사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