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를 Feb 14. 2021

클럽하우스, 다들 예상하셨잖아요?

열흘 간의 클럽하우스 사용 후기

어제 서울시장 예비후보 중 한 명이 5년 전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했던 자신의 의견을 놓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인식 변화가 있었고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답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이해타산이 작용한 발언이었겠지만 동시에 소수자 인권 의제에 대한 정치권의 자세가 한 발짝 전진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다. 기성 언론에서도 다뤄지며 무게감이 실린 이 입장 표명이 생겨난 공간은 바로, 다름 아닌 ‘클럽하우스’다.


클럽하우스를 사용한 지 열흘째. 이 ‘말 많은’ 음성 소셜 미디어 서비스에 대해서 나도 말을 보태 본다.


처음 가입한 건 2월 3일. 얼리어답터인 친구 덕분에 꽤 일찌감치 시류에 편승한 편이다. 계정을 만들고 나니 내 연락처를 기반으로 팔로우 가능한 지인들이 리스트업됐는데, 두 세 명 정도밖에 없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첫 눈에 발을 내디딘 듯한 짜릿한 기분은, 이 곳엔 아직 유명인조차 드물다는 사실에서 배가 되었다. 초대된 몇 안 되는 셀럽들도 나처럼 우선 생소한 UI에 적응하느라 바빠 보였고, 방을 열고도 ‘여기 뭐하는 데예요?’라며 경황 없는 말을 내뱉기 일쑤였다. 애초에 iOS만 지원되고 가입자당 두 명씩만 초대할 수 있는 이 플랫폼의 기원이 철저한 배타성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였다. 일찍이 이베이 등지에서 초대장이 거래되고, 마케터들은 이 매체를 어떻게 광고에 활용할 것인지 혈안이 돼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미지의 세계에 남들보다 빨리 익숙해지고 싶다는 덧없는 조바심이 들었다.


그래서 초반 며칠은 상당히 깊게 몰두했다. 앱은 친절하게도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픈한 방을 놓치지 않도록 실시간으로 푸시 알람을 보내줬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어떤 얘기가 오고 가는지 끊임없이 기웃거리며 확인하도록 만들었다. 초보자를 위한 클럽하우스 사용 방법 101부터 앞으로 이 앱이 어떻게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서로 공유하는 방, 음악과 영화, 반려동물 얘기하는 방에서 사투리나 외국어 방까지, 새로움을 받아들인 자들의 클럽하우스 활용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나도 평소 좋아하던 작가들이나 크리에이터가 만든 방에 종종 스피커로 손 들고 그들을 향해 ‘샤라웃’을 하거나,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빙자하며 내 팟캐스트를 홍보하는 방을 열기도 했다. 젊은 국회의원의 국정보고서 리뷰 방이나 인기 구독 서비스의 구독자 피드백 방은 실제로 생산적이고 또 즐거웠다. 나와 비슷한 관심사와 감수성을 가진 이들이 어딘가에 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야말로 사실 모든 소셜 미디어가 갖는 근본적인 순기능이리라. 특히 요즘 같은 비대면 시절에, 누군가와 생생한 숨소리를 나누고 잠시나마 라포를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의 등장이 반가움을 낳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탐색 기간이 끝나자 클럽하우스 자체보다 더 흥미로워진 것은 이 신문물을 놓고 펼쳐지는 각양각색의 담론들이었다. 우선 회의론이 빠르게 등장했다. 애초에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이 앱은 꽤 큰 도전정신을 요한다. 오디오에 기반한 쌍방향 플랫폼 안에서는 입을 열어야만 나를 노출시킬 수 있다. 평소에도 여럿이서 나누는 대화 속 발언권을 얻는 것에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유저라면 클럽하우스에서 가장 먼저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듣는 길을 택하자니, 팟캐스트나 오디오북처럼 정제된 콘텐츠에 비해 소위 ‘버릴 말’이 많은 이 곳에 시간을 쏟을 이유는 많지 않아 보인다. 영양가 없이 떠드는 잡담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의 이탈은 개연적이다. 각본이나 연출이 없는 곳이니, 결국 성대모사 방처럼 킬링타임 또는 단순 친목을 위한 방들은 필연적으로 재미와 소재가 고갈되어 롱런하기 어려울 수 있다. 주제와 시간이 미리 세밀하게 계획된 강연 내지 지식 공유 포럼으로서의 기능이 주요해지고, 의견 수렴이나 커뮤니티 구축 등 모더레이터(방 운영자)와 스피커들의 뚜렷한 목적성에 의해 생성되는 방들 위주로 남게 될 것 같다.


또 다른 클럽하우스의 특성은, 어떤 유저 또는 계정의 그 간의 활동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데이터가 전혀 축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다른 소셜미디어의 ‘피드(feed)’라는 개념이 없다. 녹음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이 곳에서 사실 상 모든 콘텐츠는 휘발된다. 때문에 클럽하우스에서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사람은 오롯이 바이오와 팔로워 수에 기댈 수밖에 없다. 다른 SNS에 비해 유독 유저들의 바이오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이유다. 'N잡러 시대'인 것을 감안하고서도, 클럽하우스에는 마케터이자 크리에이터고 개발자이자 작가인 이들이 특히 많다. 한편 팔로워는 여러 방에 상주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내 목소리를 노출시킬 때 는다. 기존 다른 매체를 통해 이미 인지도를 얻은 셀렙이 아닌 이상, 클럽하우스에서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시간을 투자해 여기 저기서 발언해야 한다. 유저가 더 늘기 전 초기 단계에서 시간적 자산과 언변 등의 개인적 역량, 그리고 타인과의 대화에서 기쁨을 찾는 스스로의 성향을 십분 활용하며 입지를 선점한 이들이 있다. 이 영리한 노력과 권위의 지속 가능성도 흥미롭게 관망해 볼 지점 중 하나다.


그 외에 청각 장애인에게는 원천적으로 기회가 차단된 서비스라는 지적도 유의미하다. 또 허위 사실이나 기만에 대한 필터링, 혐오•차별 발언 등의 제재 등 더 나은 소통을 위한 자정 작용도 이 플랫폼의 계속되는 과제로 남을 것이다.


몇 해 전 트위터가 한국에 처음 상륙했을 때 국내외 유명 인사들을 팔로우하며 마치 그들과 내가 소통하고 있다는 감각을 즐겼던 유저들에게, 클럽하우스는 곧 기시감이자 예견된 현재다. 시각적인 부담이 없는 인스타 라이브나 줌으로도 볼 수 있다. 더 원초적으로는 컨퍼런스 참석자들이 명함을 나누며 스스로를 어필하고 네트워킹을 도모하던 모습과 닮았다. 클럽하우스는 어느 날 갑자기 지상에 떨어진 미확인 비행물체가 아니다. 지난 여타 소셜 미디어들의 진화된 버전에 불과하므로 그들처럼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문물을 둘러싼 모든 논의와 감상과 전망들이, 지금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시대의 변화와 인간의 욕망이 집약적으로 담긴 이 총체 앞에 우리는 그 전과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적응을 해나가고 있다. 클럽하우스에 대한 단상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이 글이 불러올 내 블로그의 노출과 유입을 예측해보게 되고, 이 글 자체도 ‘남들이 이미 다 아는 얘기를 구태여 공 들여 적은‘ 말로 읽힐까봐 두렵다. 그러니 역시나,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리뷰] 어떤 노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