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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죠쌤 Jan 10. 2023

통장님들과 친한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죠쌤이 경험한 통장님들에 근거한 이야기

지방행정직이라면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면서 통장 담당 업무를 맡게 될 수 있다. 물론, 동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내가 근무했던 동은 위촉되신 통장님들이 약 30명 정도였다. 통장 담당이라면 통장님들과 협조가 잘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코로나 이후로는 통장님들에게 부탁할 일들이 더 많아졌다. 평소 통장님들에게 점수를 잘 따려면, 정부나 시/구청에서 내려오는 각종 유익한 최신 정보들을 잘 전달해야 하고, 주민들 대상으로 내려오는 홍보물품들도 통장님들부터 잘 챙겨드린다. 얼마 안 되는 적은 금액이지만 통장 수당도 제때에 잘 입금되도록 신경 쓴다.  


그러다보면 통장님들도 담당자에게 마음을 열고 점차 살갑게 대하게 된다. 통장님들과 친해지면 어떤 일들이 생길까? 내가 겪은 것들만 소개해 본다. 우선, 행정복지센터에 들를 때 먹을 걸 가져오는 분들이 생긴다. 물론, 부담스럽기도 하고, 배가 부를 때도 있고 해서 처음에는 완곡히 거절했지만, 한국의 아줌마들은 절대 물러섬이 없었다. 뭔가를 먹이는 것에 대해서는. 요구르트, 유산균, 박카스, (본인이 직접 수확한) 과일, 떡, 빵, 커피, 과자 등등 정말 다양한 간식을 가져오신다. 간식보다도 이런 저런 수다가 떨고 싶어서 간식을 들고 오시는 통장님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재밌는 점은, 인심 후한 통장님들도 쌀쌀맞게 대하는 싸가지 없는(?) 직원에게는 간식을 안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통장님이 간식을 건넨 다는 건, ‘내 평판이 나쁜 편은 아니구나’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통장님들은 담당자와 친해졌다고 느낄 때 종교를 권유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어느 때 부턴가 한 통장님께 특이한 신문을 건네받았다. 원불교 같이 독특한 종교였는데, 좋은 말씀이라고 하시며 매달 나에게 제출해야 하는 전입확인서 사이에 그 신문을 슬쩍 껴 넣어주셨다. 나는 그 종교에 별 관심이 없어 매달 그 신문은 결국 재활용함으로 가버렸지만, 그 통장님의 한결같이 예의바른 모습 때문에 좋은 마음만 받기로 했다.


통장님들과 친해지다 보면, 안 좋은 걸 듣기도 한다. 대한민국 중장년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하면 스멀스멀 피어나는 뒷담화. 겉으로는 단합 잘되고 평화로워 보이는 통장 모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부에 끼리끼리의 분파가 존재한다. 분파 간 권력 싸움(?)도 불가피하다. 그러니 담당자를 자신의 쪽으로 조금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반대 측 통장님들에 대한 험담을 한다. 그러니 담당자는 뒷담화에 휘둘리지 말고 중립을 지키며 객관적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부 통장님들만 편애하면 큰 화(?)를 맞을 수 있으리. 처음엔 잘 못 느끼지만, 통장 담당 업무를 몇 달 해 보면 ‘밖에서 볼 때 별 것 아닌 것 같은 동네 통장들의 세계에도 다 권력이 있고 정치가 있구나...’라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제 통장님들과 가장 친해졌다고 느꼈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나는 어느 때처럼 키보드를 두드리며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통장님 한 분이 미소를 지으며 서 계신다. 


“아~ 안녕하세요? 00통 통장님, 어쩐 일이세요?”

“저기... 주사님, 안녕하세요, 잠깐 저쪽에서 대화 좀 가능할까요?”

“아 그럴까요?”


탕비실로 들어간 통장님은 조심스럽게 운을 뗀다. 

“요즘은 개인 사생활 이런 게 워낙 물어보기가 조심스러워서요... 저기 주사님 혹시...”

“네, 말씀하세요, 통장님.”

“주사님 저기 혹시... 결혼을....”

“네? 결혼이요? 저 결혼 했냐고요?”


난 웃참에 실패하고 만다. 비록 난 아이는 없지만 그래도 내 얼굴은 누가 봐도 노안인데... 결혼한 지 10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40대가 된 나에게 이런 질문은 과도한 칭찬 아닌가? 아주머니가 소녀 대우를 받은 느낌이랄까?


“하하하 통장님 혹시 저에게 누구 소개시켜주려고 했건 거예요?”

“반지를 안 끼고 다니시고, 또 항상 마스크를 쓰니까 잘 몰랐어요. 총각인줄 알았죠.” 

“올해 들은 칭찬 중에 최고인데요? 어떡하죠, 너무 감사한데 결혼을 무를 수도 없고요. 하하하”


이렇게 함께 한바탕 웃고 탕비실을 나왔다. 이 때 확신했다. 통장님들과 내가 정말 가까워졌구나. 물론, 통장님들과 친해져서 장점만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를 소개해주고 싶을 만큼 아끼는 관계가 되었다는 건 감사할 일 아닐까? 동에서 근무하는 지방행정직이 겪을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임에는 분명하다. 실제로 옛날에는 이런 에피소드로 탄생하는 커플들도 있었다고 하니까.


정리해 보자. 만약 당신이 동에서 근무하는 직원인데 통장님들과 친해졌는지 궁금하다면 생각해보라. 통장님들이 먹을 걸 준 적이 있는지, 종교나 뒷담화 같은 이야기도 주저 없이 말씀하시는지, 더 나아가 소개팅까지 권유하시는지.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행정 업무를 일선 현장에서 돕고 계신 전국의 모든 통장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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