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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죠쌤 Jan 10. 2023

2023년을 마라맛으로 시작해볼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마라맛

3년간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근육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축구에 미쳐 있는 아재이기에 체력만큼은 자신 있었다. 직장에서도, 가족 모임에서도 양성 판정이 몰아칠 때도 내 테스터기는 여전이 한 줄이었다.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다녀도, 심지어 확진자들과 여러 번 식사를 같이 했음에도 난 여전히 생존자였다. 수퍼 면역자 아니냐는 말을 듣고 싶어서 더 방심한 채로 돌아다녔다. 공포 영화를 보면 그렇게 거들먹거리는 인물들에겐 자비가 없다. 크게 당하게 마련이다.


2023년 첫 날, 와이프가 걸렸을 때에도 며칠 간 난 아무런 증상조차 없었다. 난 괜찮다고, 멀쩡하다고, 와이프를 안심시키며 집에서는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2023년 첫 주가 끝나기도 전에.


밤에 몸이 으슬으슬했다. 어제 밤에 영하 5도의 날씨에 밤9시까지 축구를 해서 그런 거겠지. 쉽게 생각했다. 그런 적이 꽤 있었으니까. 일찍 침대에 누웠다. 어 이상하다, 왜 잠이 안 오지? 시간이 지날수록 오한과 발열이 심해지고 온 몸에 근육통까지 심해졌다. 이건, 축구로 인한 근육통이 아니다. 축구라면, 하반신 위주로 근육이 땡겨야 하는데... 온 몸이 쑤신다. 국지전이 아니다. 전면전이다. 마치 누가 나를 생선처럼 뒤집듯, 나는 새벽까지 끊임없이 골골거리며 바르게 누웠다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불길하게도 고통은 심해지기만 했다. 


“양성입니다. 증상 설명 드릴게요...”


이튿날 아침 의사 선생님이 나열하는 증상들은 내게 며칠 동안 순서대로 닥칠 미래 그 자체였다. 나는 수퍼 면역자가 아니었다. ‘난 특별해, 난 절대 사고를 당하지 않을 거야’라고 믿는 멍청한 초보운전자가 바로 나였다. 


처음 이틀 정도는 끔찍한 오한, 발열, 근육통이 내 몸을 정복했다. 난 코로나에 점령당한, 나약한 환자일 뿐이었다. 병가를 얻은 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TV와 넷플릭스를 보는 거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왜 코로나가 고위험군에게는 사망까지 일으킬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인지 깨닫고 있었다. 감기가 순한 맛이라면, 코로나는 마라 맛이다. 감기가 스낵면이면, 코로나는 불닭볶음면이었다.


3일 째가 되자 감사하게도 오한과 발열은 사라졌다. 그런데 다른 무서운 녀석이 찾아왔다. 인후통. 목구멍에 침만 넘겨도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통증이 느껴졌다. 게다가 발작적인 기침까지 몇 분마다 한 번씩 계속되었다. 기침을 하고 나면 목구멍이 따끔거려서 괴로웠다. 살기 위해 매실차, 둥글레차 등을 계속 홀짝거리며 마셨다. 병원 약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3일 내내 먹었다. 내가 이렇게 의사 선생님 말을 잘 듣는 어른이었던가, 나 자신도 놀랐다. 


4일 째가 되자 인후통도 많이 잦아들었다. 고통 없이 침을 삼킬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할 일이라니. 가끔 튀어나오는 기침만 빼면 몸 컨디션도 80%이상 회복되었다. 코로나를 겪어보면 일상이 너무나 소중해진다. 이건 수 없이 들은 클리셰 아니었던가? 아니다, 진리다. 체험된 진리.


코로나를 겪으며 특별히 더 힘들었던 건 두뇌를 쓸 수 없다는 점이었다. 두뇌가 드넓은 갯벌에 처박혀 있는 느낌이었다. 머리를 굴리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활자에 집중할 수가 없어 독서광인 내가 3일간 책 한 줄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하루 종일 소파와 혼연일체로 누워만 있는 게 너무나 아까워 일기만 몇 줄 끄적거린 것이 전부다.


나에겐 삶의 뿌리와 같은 습관인 읽고 쓰는 행위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니. 인간의 두뇌는 연료가 많이 필요한 기관이라서 몸 전체가 코로나라는 점령군과 전쟁을 펼치는 동안에는 두뇌활동에 쓸 에너지가 거의 없다. 생존 자체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니까 책을 읽기 위해 두뇌를 굴릴 힘이 없나보다. 인문이니 교양이니 이런 것도 일단 배가 불러야 가능하구나. 독서든 글쓰기든 일단 건강해야 가능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건강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런데 건강을 거의 회복한 지금, 나는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과자를 왜 몇 봉지나 까먹고 있는 걸까? 건강해지니 건강을 바로 해치고 싶어지는 아이러니. 


코로나로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게 빠른 쾌유가 있기를 빈다. 아프지 말자. 아프면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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