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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준서 May 15. 2020

유은혜 교육부장관님께 드리는 공개편지

고교평준화 전, 교육부장관이 답해야 할 다섯 가지 질문

존경하는 교육부장관님께,

안녕하세요, 장관님. 저는 한영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일본어과에 재학 중인 황준서라고 합니다.


어제 보도자료를 봤습니다.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국제고등학교를 2025년 전면 폐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 폐지안에 대해 반대합니다. 제가 왜 반대하는지 말씀드리는 대신, 장관님께서 반드시 답하셔야 할 다섯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그동안 자사고·외고·국제고로 유형화되었던 고교체제가 설립목적을 벗어났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아시다시피, 외고 및 국제고의 재지정평가는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재지정평가란, 자사고·외고·국제고가 본래의 설립 목적대로 잘 운영되고 있는지, 교육과정은 잘 지키고 있는지, 선행학습금지법을 위반하지는 않았는지, 교육부에서 면밀히 조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설립목적 이탈 여부는 이 평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부는 오늘,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설립목적을 벗어났다’고 발표하셨습니다. 재지정평가도 채 하지 않은 채, 어떻게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설립목적 이탈 여부를 판단하셨는지, 장관님께서는 그 근거를 밝히셔야 합니다.

 

둘째,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사라지면 교육이 평등해지나요?

장관님께서는 오늘 고교 간 서열을 없애기 위해 자사고·외고·국제고를 폐지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없애면 고교 간 서열이 없어진다는 말씀이겠지요. 하지만, 고교평준화 정책을 실시했던 1980년대 교육 양상을 살펴보면, 이른바 ‘강남 8학군’으로 대표되는 학교들에 진학하기 위해 많은 학부모들이 빚을 지면서 이사를 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사라지면, ‘강남 8학군’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집값은 다시 오를 것이며, 학생들의 실력이 아닌 부모의 재력이 교육의 수준을 결정하는 일들은 더 빈번해질 것입니다. 결국, ‘자사고·외고·국제고을 없애 고교 간 서열을 없애겠다’는 것은 ‘서울대를 없애 교육열을 줄이겠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장관님께서는 과연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없애면 교육이 평등해지는지 고민해보셔야 할 것입니다.  


셋째, 자사고·외고·국제고와 일반고 간 역량 차이가 있다면, 일반고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게 더 적절한 정책 아닐까요?

자사고·외고·국제고와 일반고 사이의 역량 차이가 대입 실적의 차이를 불러오고, 이는 결국 고교 간 서열을 만든다는 이유로 장관님께서는 오늘 폐지안을 발표하셨습니다. 일반고와 자사고·외고·국제고 사이에 역량 차이가 있는 것, 인정합니다. 제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관님, 자사고·외고·국제고의 교육과정은 그야말로 ‘21세기형 교육과정’입니다. 관심 분야에 대해 친구들끼리 스터디그룹을 만들고, 탐구를 하고, 보고서를 쓰고, 토론을 하고. 4차산업혁명 시대에 알맞는 교육은 이러한 교육이 아닐까요? 이러한 교육을 하도록 일반고에 대한 지원을 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 아닐까요? 물론, 일반고에 대해 2조 2000억원 규모의 재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하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정적 지원을 통해 일반고와 자사고·외고·국제고 간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면, 폐지의 당위성은 무엇인가요? 장관님께서는 이 질문들에 답하셔야 합니다.  


넷째, 사교육 확대에 교육부는 책임이 없을까요?

오늘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사교육을 심화시킨다는 이유로 자사고·외고·국제고를 폐지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사교육 심화의 주된 원인일까요? 교육부의 책임은 없을까요? 이번 정부 초기, 김상곤 당시 교육부장관님께서는 문·이과를 통합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합형 수능’을 치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사교육 시장은 들끓었고, 온갖 설명회가 열렸습니다. ‘문·이과 통합형 시대, 우리 아이 어떻게 키워야될까?’, ‘문·이과 통합, 우리 아이에게 미칠 영향은?’ 제가 지어낸 게 아닙니다. 대치동에서 했던 실제 설명회 제목들입니다. 그 이후, 교육부는 ‘고교학점제’를 발표했습니다. 뜨거웠던 사교육 시장은, ‘폭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고교학점제, 고등학교 선택 어떻게 할까?’, ‘고교학점제, 우리 아이 대학 입시는 어떻게?’ 당시 대치동 설명회 제목들이었습니다.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사교육 시장 확대에 책임 있는 것,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없애는 게 맞을까요? 교육부는 사교육 시장 확대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장관님께서는 이에 대해 꼭 고민해보셔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정시 확대를 주장하면서 ‘꿈이 있는 교육’와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를 외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건가요?

얼마 전 교육부는 서울 13개 대학의 정시 비중을 높이겠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불거진 공정성에 관한 논란이 그 시발점이었습니다. ‘정시가 차라리 공정하다’는 대통령님의 말씀, 존중하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정시 확대’를 주장하셨으면,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와 ‘꿈이 있는 교육’은 말씀하지 마셨어야 합니다. 정시를 확대하면, 모든 고등학교의 수업들은 ‘수능을 위한 문제풀이 수업’으로 바뀔 것입니다. 학교에서 아무리 상을 주고 발표시켜봤자 대학교는 수능으로 들어가는데, 당연히 문제풀이식 수업으로 회귀하지 않을까요? 고교학점제 도입해봤자 어차피 수능 치고 대학 갈텐데, 굳이 고교학점제를  운영해야 할까요? 고교학점제 도입을 골자로 오늘 폐지안이 발표된 것인데, 그 타당성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교육부는 하루 속히 이 질문들에 답변하셔야 할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로 로고스(논리), 파토스(상대에 대한 공감), 에토스(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를 꼽았습니다. 이번 교육부의 결정은, 논리적이고 타당한가요? 이번 폐지안을 발표하기 전, 교육부는 당사자(자사고·외고·국제고 재학생들, 학부모들, 입시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셨나요? 교육부는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기관인가요? 이 질문들에 교육부는 단 하나라고 ‘예스(YES)’라고 답할 수 있나요?


결국 교육부는, 설득의 3요소 중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설득하는 것. 그것이 정책 수립의 첫 단계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장관님께 묻습니다.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 정말 필요한가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2019년 11월 7일

한영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일본어과 황준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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