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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환 Apr 05. 2021

나는 이 맛에 산다

폐업을 앞둔 보습학원을 찾아 나섰다. 다른 날보다 긴장감이 감돌았던 건 며칠 전 전화 때문이다.

컨설턴트님! 학원을 정리하려는데 방법을 잘 모릅니다. 도와주세요.

잠시 아무 말 없이 정적이 흐르고, 수화기 너머 그녀가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

학원이 제 앞으로 되어있긴 한데, 제가 아무것도 몰라요. 남편이 다 알아서 운영했습니다.

남편께서 도와주시면 될 텐데요.

그녀는 서러움이 북받치는지 울먹이며 말끝을 흐렸다. 그이가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차! 이런 일도 있구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약속된 첫 번째 만남이 있던 날.

초등학교 맞은편 사거리로 들어서자 노란색 보습학원 간판이 드러났다. 터벅터벅 계단을 따라 4층에 다다르자 기다린 듯 그녀가 나타났다.

건물 안은 12월의 찬바람이 훑고 간 듯 썰렁했다. 난방기가 꺼진 채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작은 공간에는 예닐곱 개의 나무책상과 책꽂이, 연필깎이만이 자리를 지켰다.

처음 본 그녀는 세수를 안 한 듯 푸시시한 얼굴을 내밀었다. 헝클어진 머릿결, 눈가에 메말라 붙은 눈곱까지. 자다 온 걸까. 그저 가족을 잃은 눈물의 흔적이라 여겼다.

    

사업장 정리에 필요한 일들을 지도했다. 시간이 흐르자 짙은 우울함이 그득했던 그녀의 얼굴에 차츰 옅은 미소가 새어 나왔다.      


보습학원을 정리 한 뒤에는 계획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순간 그녀의 옅은 미소가 사라지고 깊은 우수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제가 전업주부로만 살았습니다. 학원도 그이가 다 챙기고, 저는 작은 힘만 보탰죠.

어떤 일을 도우셨어요.

우리 학원에도 학교 밖 아이들이 있었어요. 그 아이들은 자기 의지보다는 부모의 강압으로 온 경우가 많았죠. 학원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하고, 배회하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들이 참 안쓰러웠어요. 그래서 그 아이들만 모아 반을 만들었습니다.

이 일 때문에 남편과 많이 다퉜습니다. 남편은 돈 버는 일이 중요했지만, 저는 아이들이 방황하지 않고 정서안정과 치유를 바라며 수업에 몰두했습니다. 시간도 걸리고, 힘들었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하나둘씩 찾아와 원장님 덕분에 학원 다닌다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이 뭉클했어요. 아이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고 받아준 게 고마웠어요.     

또 다른 기억도 있었을까요.

남편과 미얀마에 6년을 살았습니다. 중고차 무역사업을 했었죠. 그때만 해도 동남아시아 시장이 괜찮았습니다. 그곳에서 전업주부로 살다가 하루는 아이들이 맨발로 뛰노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돈이 조금씩 생기면 운동화를 사 신겼습니다. 세어보진 않았어도 수백 켤레는 될 겁니다.  

   

이야기를 들은 뒤 나는 그녀에게 특성검사(흥미, 욕구, 평소 행동)를 제안했다.

제게 도움이 될까요. 비용은 어찌하고요.

맘 놓으세요. 검사비용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며칠 후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오늘은 안색도 밝고 눈가에 눈곱도 없는 걸 보니 울지 않았나 보다. 다행이다. 나무 책상위로 화과자와 커피가 놓여있었다.

컨설턴트님 일찍 오시느라 식사도 못하셨죠. 끼니 되시라고 챙겨 왔습니다.

제 몸 하나 보살피기도 어려웠을 텐데 어디서 저런 따뜻함이 솟아날까.     


특성검사 결과 그녀는 사회복지에 높은 흥미를 보였다. 학교 밖 아이들을 자식처럼 보듬고,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에게 신발을 신겼던 이유가 그녀의 이타적인 마음에서 비롯됐으리라.

원장님은 어려운 이를 돕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맞아요. 이야기를 나누며 제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그런 곳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고용노동부 취업상담을 받을 때, 관심분야를 분명하게 말하면 됩니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애썼던 일들, 좋아하고, 노력하며 보람됐던 원장님의 삶을 담아내는 겁니다.

저는 한 번도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요.

괜찮습니다. 어딘가에는 원장님에 자리가 있을 겁니다.

원장님이 걸어온 삶은 소중합니다. 다른 이들은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경험이니까요.    

누군가는 그 삶을 존중하며 따뜻한 손을 내밀 겁니다.

믿어보세요.     

 

중학생 딸이 있는 그녀는 동네 마트에서 계산원이라도 할 요량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새로운 꿈을 품게 했다. 스스로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이 왜 나에게 중요한지를 물으며 인식하는 것. 현재의 아픔을 벗어던지고 용기 내는 그녀에게 작은 마중물이 된 것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 한 손에는 화과자가 들려있다.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 내 손을 덥석 잡아 기어코 얹어주니 뿌리칠 수 없었다. 정작 모자란 끼니를 걱정하고, 마음에 안위를 걱정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그였을터인데.


오늘 같은 날에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얼마나 좋은가,

누군가에게 작은 삶의 실마리를 안겨주는 삶이.

나는 이 맛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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