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아침이었다. 아내는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겠다며 김밥(프랜차이즈) 집에 들렀다. 문 앞에 들어선 지 채 얼마 안돼 입을 삐쭉 내밀며 돌아오는 아내. 이유가 무얼까.
김밥 샀어.
아니.
기분 나빠서 안 샀어. 무슨 김밥집이 사람이 들어가도 아무 응대가 없어.
저러면 장사가 잘 안될 텐데.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차를 몰았다. 가끔은 입술 근육을 풀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날이 있다. 근질근질 입을 닫을 수 없어 말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장사를 잘 못한다고 욕할 건 아니야.
타고난 성향이 원래 그럴 수 있고, 경험 부족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 불친절한걸 수도 있지.
돌연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2012년 여름 정육식당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일할 때였다.
정육식당은 100평 건물에 테이블(4인 기준) 40개, 직원 20명(홀 12명, 육부 2명, 주방 5명, 주차 1명)이 일했다. 하루 매출이 많게는 1,500만 원(월 4억 5천). 내가 일하는 동안 40개의 가맹점이 더 생겼다. 창업비용은 5억 원 내외.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한우 암소 전문 정육식당의 사업이란 게 그랬다. 소고기 등심 600g(1근)을 29,000원에 판다고. 그것도 암소를. 수입육을 섞었겠지. 사람들은 미심쩍은 듯 고개를 내저었다.
축산물은 등급제라는 것이 있다. 본사에서 사용된 등급은 한우 암소 2~3등급, 이 정도면 30개월 이상 자라 서너 번 새끼를 낳은 녀석들이다. 새끼를 한 번도 낳지 않은 한우 암소는 육질이 좋고 등급이 높아 가격이 비싸다(1++, 1+, 1등급). 일반인들은 등급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다. 그저 한우 암소가 좋다는 사실만 알뿐이다.
낮은 상품가치로 찾지 않던 골칫거리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한우 암소를 저렴하게 먹는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사람들은 미친 듯 몰려들었다. 번호표를 뽑고 자기 차례가 오면 로또에 맞은 것처럼 즐거워했다.
모든 사업은 경쟁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한우 암소 등심 가격이 춤을 췄다. 1kg 2만 원 하던 등심은 3만 원을 넘어서고. 그마저 사려는 사람들로 물량이 부족했다.
몇 개월 뒤 본사에서 가맹점을 찾아 나섰다. 그사이 원료육 가격은 오르고, 등심 가격도 10,000원이나(39,000원) 인상됐다. 한 매장은 1억 5천만 원 매출에 원료육 원가가 45%에 이르고, 인건비와 임대료, 판매관리비를 제하니 마이너스 1천만 원에 다다랐다.
대표에게 가맹점 현황을 보고 하던 날.
한 달간 전 가맹점을 둘러보니 원가 상승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검증된 예비 점주가 아니라면 당분간은 신규 가맹점 모집보다 기존 가맹점의 안정화와 지원에 힘써야 할 시기입니다.
아무 말 없이 눈만 끔뻑대던 대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최부장 우리 회사 한 달 인건비가 얼만지 알아요. 3천만 원쯤 되는데 신규 출점 안 하면 그 돈 누가 줍니까. 돈 없으면 최 부장이 줄 겁니까.
대표의 말에 더 이상 할 말 없던 나는 불끈 달아오른 얼굴로 방을 나섰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구나. 신규 출점이 없으면 급여도 줄 수 없게 되었으니.
그러니 예비창업자의 인성과 자질, 경영능력, 지속가능성 따윈 필요치 않겠구나.
그저 돈만 가져오면 그만인 것을.
적당히 교육하고, 그들이 원하는 공간에 내어주면 그뿐이구나.
일이 잘 안되면, 가맹점은 본사를 원망할 테고, 본사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은 가맹점을 나무라며 서로를 미워하겠지.
시간이 흘러 누군가는 또다시 브랜드를 만들고, 책임 없는 일을 벌여 갈 테지.
얼마 후 나는 회사를 떠났다.
자신이 감당할 만큼만 인연을 맺으면 좋으련만.
수백, 수천의 인연이 악연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형편없는 김밥집 사장이라면 진작 내주지 않았으면 그만인 것을.
김밥집 사장이 우리를 만나기까지는 뒤얽힌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보면 부모가 보이듯
어떤 이를 보면 그와 함께 하는 이들을 알 수 있다.
혹시 김밥집 본사도 직원들 인건비 때문에 자리를 내준 건지 어찌 알겠는가.
내가 김밥집 사장을 욕하지 않는, 아니 욕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