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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환 Apr 09. 2021

편의점 알바 좀 뛰고 오세요

창업상담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먼발치에서 올까 말까 낌새를 살피던 40대 중년 여성이 느린 걸음으로 상담 부스를 찾아왔다. 주름 없는 반질반질한 피부, 짙은 색조화장으로 치장한 꾸밈새가 사는 집 사람 모양새다.     

짧은 인사가 오가자 다짜고짜 그녀가 묻는 말은 이랬다.

제가 편의점을 차려보고 싶은데 잘 될까요?

아! 이럴 땐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을 참아야 할 때다. 이쯤이면 여인은 나를 박수무당이나 예언가 정도로 찾은 게 분명하다.

혹시 편의점에서 일해 봤거나 다른 경험이 있으세요?

아니요. 그런 경험은 없고, 돈을 벌고 싶어서요.

그런데 편의점을 하고 싶은 이유는요?

설명회도 가보고, 상담도 받아 보니 괜찮은 것 같아서요.

어떤 게 괜찮으셨어요.

특별한 기술 없이 일할 수 있고, 매니저를 두면 힘들지 않을 것 같아서요.     


이럴 때면 생각나는 그녀가 있다. 10년 전쯤 지방에서 초등학생 아들을 홀로 키우던 40대 그녀를 만난 적 있다. 작은 회사의 경리였던 그녀는 고기전문점 창업을 알아보고 있었다.      

약속된 만남은 세 번. 일단 창업경험이 없는 그녀를 이해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첫날부터 함께 주변 상가를 돌았다. 인근 고기 집을 찾아 식사 겸 분위기를 살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고객은 누구이며, 무엇을 먹고 있는지? 고객의 움직임을 살피고, 표정을 읽으라 말했다.     


두 번째 만남 전까지 해야 할 일을 일렀다. 인수하려는 고기 집에서 일해 보는 겁니다. 금요일 퇴근시간부터 새벽까지. 주말에도 가게 문 열고 문 닫을 때까지. 가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빠짐없이 살펴보세요.          


일주일이 흘렀다. 그녀는 삼일 밤낮으로 일을 했다며 뿌듯해했다.

잠시 눈 감아보세요. 고기 집에서 보낸 하루를 떠올립니다.

오후 4시에 문을 열어요. 사장님이 먼저 나와 가게 청소를 시작했어요. 테이블 기름때를 닦고, 식재료와 고기를 손질했습니다. 6시가 조금 넘어 손님들이 들더니 여덟 개 자리를 꽉 채웠습니다. 정신이 없었어요. 찬 쟁반은 어찌나 무겁던지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벌겋게 핀 숯불은 왜 그리 뜨거운지 절절매고, 자옥한 담배연기에 연신 기침하느라 혼났어요. 술이 몇 순배 돌자 취기가 올랐는지 손님들 목소리가 커졌는데, 고막이 터질 듯 먹먹했습니다. 가게 뒷정리를 하고 집에 오니 새벽 3시가 됐어요. 하루가 고됐는지 침대에 올라서자마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다시 한번 눈감아보세요. 고깃집의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일 년, 이년, 오 년이 흐릅니다. 내가 고기 집에서 보낸 시간, 가족은 어떻게 살아왔나요. 아들은 중학생이 되었겠군요. 일하는 동안 아이와 시간이 부족하진 않았나요. 그동안 아이는 엄마 품이 아닌 어디에 기대고 있었을까요.  눈을 뜨셔도 좋습니다. 가게를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지속하는 일이 힘들 뿐입니다. 짧지만 소중한 경험을 잘 이겨내셨습니다.    

 

일주일 뒤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곰곰 생각해봤는데. 아직 창업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도 어리고, 무엇보다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됐다는 걸 느꼈어요.

다행이다. 그녀는 그렇게 창업을 미뤘다. 내가 전하려고 했던 건 그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었다. 진짜 원하는 걸 찾게 하는 일. 비로소 깨닫고 준비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다.


40대 중년 여성과 한 시간째. 주절주절 지루한 상담이 이어졌다.

편의점에서 딱 3개월만 알바 좀 뛰고 오세요. 그 안에서 상품도 진열해보고, 팔아보는 겁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보고, 시간에 따라 잘 팔리거나 안 팔리는 물건도 따져보세요. 편의점 사장님께 하나하나 물어가며 배워보는 겁니다. 그렇게 하루가 쌓이고, 3개월이 지나서 그때 다시 오세요.

해볼 만하다는 생각, 오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상담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나이가 있어서 뽑아줄까요.

집 근처 편의점 열 군 대만 가보세요. 편의점 해보겠다고, 3개월 공짜로 일해보겠다고 다가 가보세요. 그래도 안 뽑아주면 저한테 오세요.      

  

데이면 뜨겁고,

베이면 아프다.

얼마만큼 아픈지

얼마나 깊은 상처인지

얼마나 오래머무는지

베어야 안다.

그래야 안다.     


창업하지 마세요.

그냥 좋아하는 일 찾으세요.

그래야 맘도 편하고 오래 합니다.

그게 돈 버는 길이고,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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