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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환 Apr 12. 2021

당신의 밤은 우리의 낮보다 아름답다

컨설턴트의 달달한 일상

암흑을 느껴본 적 있다. 어둠 속 시간은 그저 무섭고 두려운 기억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어둠을 벗 삼고, 눈 삼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검은 밤 안에 갇힌 그를 만난 건 2년 전 가을이었다. 이른 아침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연락이 왔다.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기관에서 나를 찾은 건 안마원 창업을 돕는 멘토가 되어달라는 거였다.      

며칠 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를 찾았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그런지 제법 시골냄새가 풍겼다.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공기를 맡으며 약속 장소에 다다를 무렵, 시소와 미끄럼틀 뒤로 나무의자에 걸터앉은 두 사람이 보였다. 짙은색 선글라스에 지팡이를 짚은 이와 팔짱을 끼고 그 곁을 지키는 중년의 여성이었다(장애인 활동 보조사).       

 

잠시 인사를 나누고 살아온 발자취를 물었다. 그는 5년 전까지 비장애인이었다. 당뇨 합병증이 있기 전까진 손해사정인으로 일하며 가장으로 살아왔다.

제가 인생을 참 나쁘게 살았습니다. 술과 도박, 여자까지 한마디로 방탕했습니다. 가족을 건사하기보다 제 멋대로 삶을 살았죠. 가족들 마음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눈이 불편해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 말이 망막이 너무 안 좋다는 거예요. 실명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도 막장인생처럼 될 테면 되라지 차라리 눈이 멀길 바랬습니다.      

손해사정인 일을 관두고 건설공사 현장에서 철골공사를 할 때였어요. 평소처럼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갑자기 앞이 캄캄했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어요. 큰 병원에서 검사받고 시력이 회복될 수 있다는 말에 수술했는데 그 후로 눈이 멀었습니다.

혹시 의료사고가 아니었을까요.

의료사고 사실을 밝히는 일이 쉽지 않더군요. 운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한 줄기 빛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아침이 찾아오고, 저녁이 지나도, 눈을 감고, 떠봐도 어둠뿐이었습니다. 살기 싫어 몇 번을 죽으려고 몸을 던졌습니다. 쌩쌩 내달리는 도로에 무작정 뛰어들기도, 높은 건물 옥상에서 몇 번이나 투신했습니다. 그래도 목숨줄이 끊어지지 않길래 아직은 더 살라는 계시라 여겼습니다. 그때부터 시각장애인협회 추천으로 안마를 배웠습니다. 그동안 갈고닦은 안마 기술로 안마원을 차리려 합니다. 도와주세요!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이 더 이어지고 마지막 자리가 있던 날. 조심스레 내 생각을 말했다.  

저는 선생님께서 굳이 창업하지 않길 바랍니다.

지금도 정부에서 지원하는 아파트에 살고 적지 않은 장애인 보조금이 나오잖아요. 아시겠지만 안마는 많은 기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처음에는 직원 없이 홀로 일해야 하는데 하루에 몇 사람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그럭저럭 된다손 치더라도 선생님께 돌아오는 몫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편안히 소일거리 삼아 지역주민에게 안마봉사하면서 자기 삶을 사시면 좋겠어요.  

    

짙은색 안경 너머 그의 초점 없는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저도 정정당당한 삶의 주체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국가 도움으로 수급자 혜택을 받으니 좋지 않으냐 말하지만 저는 싫습니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저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인간으로 그냥 살다 갑니다. 국민들이 낸 세금만 축내다 가는 거예요. 아직은 젊고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이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기대지 않고 자립하고 싶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역량과 경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컨설턴트님 눈이 안 보이는 삶이 어떤지 아세요. 온통 암흑이에요. 저 하늘을 볼 수 없고, 사랑하는 이를 보지 못합니다. 인생에 낙이 없습니다. 왜 살아야 할까요. 저는 안마가 좋습니다. 주로 어르신들이 찾는데 몸이 아픈 분들이에요. 안마사로 그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면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나처럼 아픈 사람들을 만나 잠시라도 그들의 아픔을 잊을 수 있게 달래니 말입니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오랜만에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잘 지내시죠. 이번에 고등학교 검정고시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네요. 장애인 지원사업도 신청 준비가 끝났습니다. 덕분입니다.     

좋은 일이 많았다는 그의 목소리에 지난날 미안함이 사그라들었다.

벌건 대낮을 어둡게 보내는 사람들 틈새 속

어두운 밤을 환하게 살아가는   

당신의 밤은 우리의 낮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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