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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환 Apr 16. 2021

언어의 기술

   

루어낚시의 달인을 봤다. 주변 지형지물을 살피고, 물가의 나뭇가지를 이용해 반응을 기다린다. 됐다 싶었는지 가짜 미끼를 내던지자 물수제비를 뜨며 수풀 사이로 파고들었다. 고요한 정적과 침묵이 흐를 무렵 잔잔한 물에 파장이 일고, 어느새 활처럼 휘어진 낚싯대를 움켜쥔 채 묵직한 녀석과 한판 힘을 겨룬다. 줄을 감았다, 놓았다, 멈췄다. 춤추듯 리듬을 맞추는 사이 녀석이 방심한 틈에 확 하고 낚아 올린다.     


루어낚시와 언어는 닮은 게 있다.

물의 출렁임, 물살의 속도, 빛의 방향, 수풀의 그림자를 살피듯 언어도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모델하우스(주택전시관) 책임자로 일한 적 있다. 지방 소도시에서 700세대 아파트를 분양할 때의 기억이다. 한두 푼도 아닌 아파트를 이거 살랍니다.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수억 원을 쥔 주인을 찾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곳에선 사람을 대하는 언어의 기술이 필요했다.  

내 언어의 기술은 이랬다. 먼저 물의 수심을 살피듯 마음을 헤아리려 직업을 묻는다. 직업은 삶이자 발자취다. 선생님, 전문직, 사무직, 기술자, 노동자는 각자 처한 상황과 주변 사람들이 다르기 마련이다. 나도 그랬다. 그 당시 주로 만난 이들은 금융회사, 인허가 기관, 시행사, 신탁회사, 그리고 건설사 직원들이었다. 10년을 그 안에 살았다. 땅을 사고, 건물을 세워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은 내 전부였고, 내가 보는 세상은 모두 그들과 연결돼 있었다. 사람의 의식 수준과 언어 표현이 다르듯 나는 직업이 갖는 서로 다름을 받아들였다.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듯 상대 신호에 나를 맞춘게다.  

   

모델하우스에서 일할 때 상담사를 엿본 적 있다. 실적이 저조한 이들의 공통점은 고객을 알려하기보다 말이 앞선다. 다짜고짜 평형별 유니트를 돌고, 설명에 급급한 채. 계약조건을 말하며, 단지 특성과 환경을 떠벌릴 때쯤이면 언짢은 표정의 고객이 마지못해 묻는다.

여기 혹시 더 작은 평형은 없나요. 전세나 임대는 없을까요.

그런 건 없던 노릇이니, 이럴 땐 그저 애쓴 노력이 무색할 따름이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성이 모델하우스를 찾아왔다.

말끔한 와이셔츠, 편안한 정장 차림에서 신사의 향기가 풍기니 삶에 여유가 있겠구나 싶었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지금 어떤 일을 하세요?

얼마 전까지 작은 제조공장을 운영했습니다. 자금사정으로 문을 닫게 됐어요. 살던 집도 처분하고 이사를 가야 하는데 갖은 돈이 없습니다. 이것저것 다 빼고 적은 돈으로 입주할 곳을 원합니다. 그는 얼마 후 17평 아파트를 계약했다.

상대의 상황을 묻지 않았다면 역시나 일방적인 정보 전달로 허탕 칠 뻔했다. 언어의 기술이란 이렇게 상대를 헤아리고,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다.    

   

가끔은 차원이 남다른 날이 있다.

방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두 덩이 똥을 본 날. 여덟 살 아들이 입을 열었다.

와! 11자 모양이네.

상대의 눈높이를 맞추는 언어의 기술자처럼 나도 말했다.

자세히 보니 ‘ㅂ’ 자 같기도 하고 손으로‘V’하는 것도 같네.

그 말에 나도 웃고, 아들도 웃었다.

개똥 같은 소리 같지만

개똥을 개똥이라 말하지 않으면 어떠랴

아들이 저리 좋아하는 것을.

언어의 기술은 말함이 아니라 상대를 알아채는 일이다.

   

마음속 줄을 던진다.

탐방 탐방 수면을 스치며 저 깊은 마음에 가닿으면,

기다림으로 말을 잇는다.

고요한 물 위를 튕겨가는 물수제비처럼

사람에게 향하는 마음이

언어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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