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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Sep 29. 2022

나는 또 왜 이리 생겨먹었을까?-14

중년의 문제아

나는 청년 시절 아부를 할 줄 몰랐다. 수줍음을 잘 타는 데다가 솔직한 성격이라, 마음에도 없는 너스레를 떤다든지 하는 일은 전혀 할 줄 몰랐다. 사회생활에서 꼭 필요하다는 '하얀 거짓말'도 잘하지 못했다. 새 옷을 입고 온 친구에게 "어, 새 옷 샀네. 너한테 참 잘 어울린다."라고 칭찬을 해주거나, 큰 일을 그르쳐 좌절하는 친구에게 "그건 별일 아니야. 너무 실망하지 마."라고 위로하는 것은 그것이 본심과 조금 다르더라도 주위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고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 같은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싫든 좋든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부대끼며 어울려야 한다. 복잡하게 다대다(多對多)로 대응하는 관계의 그물 속에서 그 긴장감을 줄이려면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고려하고 맞춰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을 답답하고 친근감 가지 않게 만드는 큰 단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넉살 좋고 뛰어난 사회성을 갖춘 내 동료들과 비교가 많이 되기도 했다. 


전공의 시절 있었던 일이었다. 당시 모시고 있던 교수님이 회식 자리를 마련하셨다. 그분은 쾌활하고 술 좋아하시는 분이었고, 재미있는 농담을 해서 좌중을 웃게 만드는 것을 즐거움이자 자랑으로 여기는 분이었다. 그분이 즐겨하시는 유머 코드는 '말장난 개그'였다. 소위 '아재 개그' 혹은 '부장님 개그' 소재로 빠지지 않는 것 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말장난 개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뒤통수를 맞는 듯한 반전도 없고 그렇다고 여운을 남기는 풍자도 가미되지 않은, 그저 한번 듣고 잊어버려도 되는 휘발성 강한 농담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동음이의어를 만들기 위해 잘 맞지도 않는 자음과 모음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 유치하게 보이기도 했다. 교수님은 함께한 사람들을 웃겨 주시기 위해 연달아 '아재 개그'를 쏟아 내셨다. 그중에서는 이미 전공의들 방에서 몇 번씩 돌고 돌아 내가 외우고 있는 것도 있었다. 나는 웃으려 노력하였다. 예전에 듣고 폭소를 터뜨렸던 여러 농담들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억지로 웃는다는 것은 일부러 우는 것보다도 힘든 일이었다. 할 수 없이 교수님 앞에 놓인 술잔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옆에 앉은 내 동료들의 리액션은 환상적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파안대소를 하는 사람, 그러다가 뒤로 넘어지는 사람, 웃다가 눈물을 훔치고 있는 사람, 하나 더 해달라고 애원하는 사람 등등.... 그들이 건망증이 심해 엊그제 다 함께 들었던 똑같은 농담을 이미 잊어버린 것인지, 그 '아재 개그'가 수십 번을 들어도 재미있어 죽을 정도로 그들의 유머 코드에 잘 맞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오늘 마신 술에 웃음을 못 참게 만드는 무슨 약이라도 섞여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술 한잔에, 안주로 교수님의 농담 하나씩, 그렇게 술잔이 몇 순배 돌았다. 이제 술자리는 알맞게 무르익었다. 



갑자기 교수님이 멀찍이 앉은 나를 부르시며 말씀하셨다.

"ㅇ 선생, 구석에 앉아서 뭐해? 이리 와서 나 술 한잔 주지 그래?"

"아, 네, 교수님."

나는 술병과 잔을 들고 교수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따라드린 술을 넘기시며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ㅇ 선생, 그런데 오늘 무슨 안 좋은 일 있나?"

"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표정이 어둡나?"

교수님은 멀찍이서 자신의 농담에 반응하지 않는 나를 주시하고 계셨나 보다. 그리고 말씀을 이으셨다.

"ㅇ 선생은 참 착하고 성실하고 똑똑한데 말이지 한 가지 단점이 있어. 너무 무표정해. 잘 웃지를 않아. 여유가 없다는 거지. 그러면 사람들이 다가가기 힘들어할 거야. 인생은 실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살아보니 그래. 사람들과 유연한 관계, 아니 더 나아가 친근한 관계를 만들면 ㅇ 선생이 원하는 것도 더 쉽게 얻을 수 있고 인생도 더 즐거워지게 될 거야.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겠나?"

"네, 교수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노력해 보겠습니다."


교수님과 나의 대화를 엿들은 동료들은 시선을 달리 하면서도 불안해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썰렁해진 것이다. 이것이 다 내가 웃지 않고 아부를 제대로 못해 생긴 일이었다. 

"그래, 그럼 내 말을 잘 들었는지 한 번 확인해 보지. ㅇ 선생, 삶은 뭐라고 생각하나?"

"네?... 삶은... 웃음? 여유? 뭐, 이런 게 아닐까요?"

교수님은 고개를 크게 가로저으셨다.

"아니지, 아니지, 내 얘기를 잘 안 들었구먼. 삶은 달걀이지.... '삶은 달걀'... 삶은 바로 달걀일세. 자, 여기 달걀 하나 먹어보게 (교수님은 나에게 달걀 하나를 집어 주셨다), 하하하."

그 농담마저도 나는 제대로 웃어드리질 못했다. 반면에 내 앞에 있던 동료들은 다시 뒤로 넘어지고, 떼굴떼굴 구르고, 눈가에서 눈물을 훔쳤다.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랬던 나였다. 그런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한 번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그 '브런치팀'에게 닭살이 돋을 만큼 아부를 떨었던 것이다. 그만큼 한 번의 불합격에 대해 자존심이 상했고 또한 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컸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능력을 넘어선 이 처절한 노력의 결과는 내 중년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계속)  




*표지 이미지 출처: 서강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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