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려서부터 외모를 잘 꾸미지도 못했고, 옷을 골라 입는 재주 또한 젬병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주로 어머니께서 철이 바뀔 때마다 옷가지 몇 개를 사 오셨고 저는 그걸 주섬주섬 주워 입었지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어머니도 귀찮아지셨는지 잘 챙겨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거의 사시사철 난닝구에 츄리닝(?) 차림으로 나다녔습니다. 치장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창피한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패션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아내와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 비싸지 않은 옷들도 멋들어지게 선택하고 조합하여 마치 명품들처럼 변화시킬 줄 아는 흔치 않은 능력이 있었거든요. 신혼 시절 아내는 제 옷과 신발, 장신구들을 직접 사다가 저를 인형처럼 꾸며주곤 했습니다. 마치 뒷골목 거지가 하루아침에 왕자가 된 것처럼 외모로는 제법 신분상승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때가 그리 길지 않았던 제 황금기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아내가 저를 남편이 아닌 큰아들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저의 패션에 관한 그녀의 열의도 함께 식어갔습니다. 이제는 총각 때의 어머니처럼 때때로 그럭저럭 입을만한 옷과 신발 몇 가지를 사다 던져주고 저는 그날그날 그것들을 나름대로 맞추어 입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당연히 신분은 고급스러운 왕자에서 평민 비스름한 것으로 강등되었고요.
몇 년 전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주말을 맞아 가끔씩 그랬던 것처럼 아내는 딸과 아들을 데리고 근사한 식당에서 외식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당시에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 소위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식당의 유명도는 그곳에서 제공하는 음식들의 맛만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선을 끄는 간판, 매력적인 인테리어는 물론 그곳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모두 합쳐진 것입니다. 핫 플레이스에 어울리려면 핫 피플이 되어야 하며 그것은 그만큼의 패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화려한 복장을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시골 5일장에 정장을 입고 나타나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오히려 촌스럽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길 건너 동네 주민이 갑자기 멋있는 식당이 생각나 슬슬 놀러 나온 것처럼 편안히 차려입었는데 그것이 고급스럽고 세련되어 감출 수 없는 은은한 아우라로 뿜어져 나오더라.... 뭐 이 정도가 되어야 패션의 내공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옷장문을 열고, 입고 나갈 옷들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서당 개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풍월 읊는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나 봐요. 제가 그날 고른 매칭은 브라운색 니트에 빈티지 청바지였습니다. 외투는 얼마 전 아내가 사다준 카키색 롱패딩 점퍼로 정했습니다. 카키색이 사실 애매한 색입니다. 일견 군대나 작업 현장에 어울릴 것 같지만 몸을 감싸는 핏(fit)이 잘 만들어지면 상당히 젊고 세련되게 보이기도 하거든요. 추운 날씨에 어울리게 목덜미 부위에는 옅은 브라운색 털 목도리(fur collar)가 동그랗게 달려 있었습니다. 코트의 윗부분을 잠그면 이 보드라운 털들이 아랫입술까지 턱부위를 가려줍니다. 얼굴에 자신이 없을수록 가능한 한 많은 부위를 가리는 것이 좋습니다. 웬만한 패션 문외한들은 이 정도로 만족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달랐지요. 패션엔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바라보는 사람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색과 형태의 진행 속에서도 그 느슨함에 적절한 긴장을 줄 수 있는 약간의 강조가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것이 회색 비니(Beanie cap)였습니다. 사실 이 비니는 아내가 어느 백화점의 행사 사은품으로 공짜로 받아와 구석에 처박아 둔 것이었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싸구려 아이템을 역으로 시선을 모으는 도구로 이용할 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패셔니스타들이나 부릴 수 있는 묘기에 가까운 능력이거든요. 신발은 어떤 것이 좋을까요? 흔히들 옷차림까지에만 신경을 쓰는 분들이 많은데 패션의 마무리는 슈즈입니다. 그래서 프로 디자이너나 모델들은 어떤 사람의 패션 내공을 평가할 때 복장과 어울리는 슈즈가 매칭되었는지부터 보는 경우도 흔합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거기까지 신경을 못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날 저는 스포티한 복장에 잘 녹아드는 흰색 운동화를 선택했습니다. 완벽한 채비를 마친 저는 당당한 걸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역시 유명한 만큼 손님들도 많아서 식당 앞은 늘어서 있는 차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예약 시간을 살짝 지나 도착했기 때문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저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먼저 내려 식당에 들어가 있으라고 권유했습니다. 혹여나 연락 없이 늦게 왔다고 잘 나가는 식당 측이 일방적으로 예약을 취소해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천천히 주차를 시키고 가족들이 먼저 들어간 화려한 식당 문을 힘차게 열었습니다. 저만치 카운터 앞에, 먼저 들어간 아내와 아이들이 점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그때였습니다. 가까이 있던 훤칠한 청년이 저를 막아섰습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흰 드레스 셔츠에 허리밑으로 고동색 앞치마를 동여맨 것으로 보아 또 다른 점원인 것 같더군요. 웬일인지 그의 길쭉한 팔이 저의 가슴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저를 쳐다보며 물어봅니다.
“쿠팡이시죠?”
“네?”
예약자 이름을 물어보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대답을 해야겠지요. 하지만 느긋한 제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그의 조급한 다음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쿠팡 배달이시죠? 조금 늦으셨네요.”
“네?”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약 5초 정도가 흐른 것 같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내려다보니 제 오른손에는 어느새 그 청년이 건네준 음식 꾸러미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꾸러미는 식당 로고가 멋들어지게 인쇄된 하얀 비닐봉지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그 한 귀퉁이에 분홍색 포스트잇이 야무지게 붙어있었는데 거기에는 어떤 이의 이름, 주소, 그리고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더군요.
그렇습니다. 점원은 저를 쿠팡이츠 배달원으로 본 것입니다. 제 외모와 옷차림이 도저히 이 고급스러운 식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물론, 추운 날씨에 오토바이 뒷칸에 음식을 실어 빠르게 고객에게 전달해 주는 배달원에 어울리는 것으로 여긴 것이었습니다. 카키색 롱패딩은 멋보다는 실용적인 몸의 움직임을 만들어주는 작업복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턱을 가린 털 목도리와 깊게 눌러쓴 비니는 빠르게 달리는 오토바이 위로 불어 닥치는 칼바람을 막아내기 위한 처절한 바람막이로 비쳤나 봅니다. 빈티지 청바지는 오랫동안 딱딱한 운전석에 쓸려 만들어진 빛바랜 상흔으로, 흰 운동화는 페달에 발을 올려놓기 편한 맞춤형 신발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던 제 가족들이 저를 발견하고 손짓하여 불렀습니다. 그제야 제 정체를 알아차린 잘생긴 점원은 재빨리 제 손에 들려있던 배달 봉지를 낚아채고 허리를 숙여 사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심이 담긴 사죄의 표현이었지만 미안하게도 받아들일 만한 여유가 없더군요. 저는 넋이 빠진 사람처럼 터덜터덜 가족들을 따라 배정된 테이블에 앉게 되었습니다. 짧은 순간에 받은 충격이었지만 여진이 오래갔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 식사로 어떤 음식이 나왔는지, 어떤 대화를 했는지 아직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유행하는 줄임말 중에 “패완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품으로 온몸을 감싸도 결국 당사자의 고귀함과 세련됨은 잘생긴 얼굴과 매끈한 몸매로부터 배어 나온다는 뜻일 것입니다. 제가 장시간을 고민해서 고르고 골라 치장한 옷차림은 안타깝게도 저의 소박한 얼굴과 짧은 다리를 가려주지 못했나 봅니다. 아니면 오랜 기간 외과의사로 살아오면서 형성된 노동자형 근육이 은연중에 그 두꺼운 패딩을 뚫고 드러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아무렇게나 입고, 되는대로 걸치는 패션 파괴자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슬픈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