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 저녁이 되면 나는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그 주에 나에게 들어온 인풋들, 내가 해낸 것들, 계획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 좋았던 것들과 아쉬웠던 것들에 대해 적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사실 이번 해에 나의 삶에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키워드가 있는데 이번주에 유난히 책, 영상, 강의 등에서 강하게 울리던 게 있었다. 바로 ‘관계’였다.
한국을 떠나 산지 어느덧 12년이 되었다. 아무 연고가 없는 나라에 살면서 나와 남편이 가장 등한시했던 건 우리의 작고 소중한 정원 울타리를 뛰어넘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쌓는 일이었다. 나는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에게 나의 능력을 입증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스스로의 성장에 몰입하거나, 남편과의 관계를 잘 조율해 나가는 데에 급급했다.
갑자기 ‘관계’라는 새로운 키워드가 내 인생에 들어온 건, 나와 남편이 친구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친구 타령이나 하고 있는 게 한심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없는 나라에서 서로만을 의지하는 게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 우리는 그동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이 우리를 방문하고 떠난 빈자리가 너무나도 쓸쓸하게 느껴지던 날, 이 작은 나라에서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서로와 함께하는 주말이 지루하다 못해 지겹고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던 날, 급한 일이나 힘든 일이 생길 때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숨이 턱 막히던 날, 우리에겐 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지려면 분명 마음을 터놓고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한다.
관계를 넓혀가야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바로 나 혼자 성장하는데에 어떤 분명한 한계가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묵자는 무감어수(물에 비추어 보지 말고) 감어인(사람에게 비추어 보라)이라 했다. 물, 즉 거울에 스스로를 비추어 보면 외모만 보게 되지만 타인에게 스스로를 비추어보면 인간적인 품성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지난 몇 년 간의 나는 성장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계속 물에 들여다보고 담금질하는 시간을 반복해 왔다. 그 시간들도 내게는 분명 필요한 시간이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들여다보는 물이 우물임을, 이 우물을 벗어나지 않으면 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태생부터 소극적이고 사회생활에 이미 에너지를 전부 쏟아붓는 내가 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아주 조금씩 차근차근 시도해보고 있다. 좋은 사람들을 찾기 위해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먼저 연락하고, 먼저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자고 제안하고, 자주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타인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곳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이런 일.. 내향형 인간으로서 정말 눈물겨운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노력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나도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