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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고 Jun 19. 2023

02_회사에 적응하기 힘든 두 가지 이유, 첫 번째

신입사원 적응기


회사에 입사 후 만 1년이 지나 2년 차 교육을 들으러 갔었다. 교육과정에서 아직도 기억 남는 순간이 있다. 롤링페이퍼 형식으로 각자의 고민을 쓰고 댓글을 달아주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썼다.


나 : 반복되는 업무로 지쳐 매너리즘에 빠졌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 그 자리도 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버티세요.


 매너리즘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듣고 싶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일에 매진하고 견뎌내라는 말. 누구인지 모르지만 글을 쓴 의도는 알겠지만, 그걸 위로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지금 잘 버티고 있을까?


2년 차 교육에 가서도 이런 생각을 할 만큼 당시의 난 지쳐있었다. 불과 2년이 채 안된 시점에 지쳐버렸다.




당시 나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었다. 머리가 좋진 않지만 일머리가 좋고, 긍정적인 성격 탓에 나의 팀과 다른 팀에서 싫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도 반복되는 일상에 조금씩 무너졌다.


나의 일상은 이렇다.


출근

전일 생산량, 수율 확인

라인 가동 확인

현장 요청 확인

보고서 작성


 매일매일 챗바퀴 속에서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졌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고, 특별한 일을 하고 싶은 의욕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 아닌데 내가 뒤처리를 해야 한다는 점, 오히려 사고 친 사람은 가만히 있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 언제든지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아니 회사생활한 지 1년 만에 이렇게 될 수 있나?


회사 생활 10년 차에 접어드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빠른 시점에 멘털이 나갔었다. 그때 인정했어야 했다. 내 멘털이 약하다는 것을, 그때 떠나가는 멘털을 붙잡았어야 했다.


그렇게 점점 지쳐가고 떠나는 멘털을 붙잡지 못하던 중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현장에서 연락이 왔다.


"큰일 났는데?”


“무슨 일이요?”


“정비할 때 필터 청소할 때 물을 잠그고 안 틀었어.”


여기까지 들었을 때도 상황 파악이 안 되었다.


“안 틀면 어떻게 되는데요?”


“뭘 어떻게 돼. 세정을 안 하고 흘러간 거지.”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때라도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도 정신을 못 차렸었다. 보고를 하지 않고 좀 있다가 조치하지 뭐 이런 마음으로 앉아있었다.


그러다 그 소식이 팀장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상투적인 시간이 오고 가고 경위서를 쓰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때가 내 회사생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위서를 쓴 경험이다.


그 당시 터져버린 멘털에 경위서를 쓰면서도


‘아니 이걸 왜 내가 써야 하지? 보고 안 한 건 알겠는데 잘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직장인 2년 차에게는 이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실수는 다른 사람이 하고 나는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하여 늘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의욕이 떨어지니 당연히 일에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퇴사를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같은 팀으로 입사한 동기는 1년이 지났을 때 퇴사 후 다른 회사로 입사했다. )


그러나 MZ라는 말이 나오기 전이고, 요즘처럼 저 연차들의 퇴사 건수가 많지 않았다. 또 지금도 그렇지만 부모님은 대기업에 다니는 나를 자랑스러워하는데, 회사에 합격했을 때는 아들의 회사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부모님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퇴사는 생각지도 않았다.


팀을 옮기기 위해 고민도 했었지만, 입사 후 1년 만에 팀을 옮기기에는 경력이 쌓이지 않아 다른 팀으로 옮길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경력이 쌓이기를 인내하고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버티고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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