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기고 Jul 10. 2023

06_해외 출장

잦은 출장의 어려움

지금 내 여권을 보면 중국 비자와 중국 출입국 도장이 가득 찍혀있다. 정확히 몇 번 갔었는지 궁금해서 확인해 봤는데 비자는 5장, 출입국 도장은 22번 찍혀있다.


비자가 1년 복수비자이기 때문에 총 5년 동안 22번의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 평균으로 1년에 5~6번 정도인데 정리해 보니까 2019년에는 12번을 다녀왔다. 거의 1달에 한 번꼴로 출장이 잦았다.


출장을 많이 다녔지만 출장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나름 재미도 있었고 중국 현지인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경험도 쌓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 중국 출장을 갈 때가 떠오른다.


-


그 당시 난 해외라고는 스페인 여행 한 번이 다였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가는 해외, 그리고 인천공항. 설렘이 가득했다. 인천공항에 가면 해외여행 가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중 한 명이 된 듯이 중국 여행을 가는 것 마냥 즐거웠었다. 제주도도 몇 번 안가 봤기에 비행기를 타본 경험도 적었다. 그렇기에 출장에 대한 걱정보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갈 수 있다는 설렘이 더 컸다.


그렇게 설렘과 걱정을 가지고 중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이미  회사에서 픽업온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고, 서투른 중국어로 인사를 하고 공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중국 출장이 시작되었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통하지 않는 언어 속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부터 알아온 몇 명뿐.


그들을 의지하며 중국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같이 일하는 현지 직원들은 고집은 조금 세지만 착하고 대화가 잘 통했다.


당시 난 중국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그들과 대화를 할 때면 중국어, 영어, 바디랭귀지를 섞어 가면서 대화를 해야만 했다. 부족한 외국어 실력을 메우기 위하여 그들과 늘 함께하며 일을 이끌어나갔다.


그렇게 출장에 서서히 적응했다.


출장기간 동안 퇴근 후 생활도 무리 없이 적응했는데 다행히 가장 걱정했던 중국 음식이 입에 잘 맞았었다. 또 남경에는 이미 한국기업들이 진출한 지 오래였고 많은 한국사람들이 남경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식, 일식을 판매하는 음식점들이 많았다.


퇴근할 때마다 출장자들끼리 모여 어디를 갈지 결정하는 것이 퇴근시간대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한식을 먹을지, 일식을 먹을지, 중식을 먹을지. 행복한 고민이었다. 한식은 비록 조선족이 하는 음식점이라 입맛이 완전히 한식과 같진 않았지만 한식의 그리움을 채워주기엔 충분했다. 중식도 한국에서 마라탕이 유행하기 이전에 먹었던 훠궈도 별미 느낌으로 맛있게 먹었었다. 충분히 쓰고도 남는 출장비를 회사에서 지급했기에 먹는 데에 걱정은 없었다.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한국에서보다 배로 많은 돈을 쓰면서 출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먹으면서 풀었다.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


그러나 출장이 마냥 좋았던 건만은 아니다.


첫 출장을 혼자 떠났었는데, 요즘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을 혼자 출장 보낸다는 불만이 많아져 입사 연차별 출장을 혼자 갈 수 있는지 없는지가 정해져 있다. 그러한 규정 중 하나로 첫 번째 출장은 멘토가 무조건 같이 가게 되어있는데, 내가 출장을 처음 갔을 때는 그런 규정이 정해지기도 전이었고, 이미 연차가 3~4년 정도 되었기에 혼자 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 가는 해외출장을 혼자 간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많이 되었다.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다음은 호텔


요즘 호캉스가 유행하고 많은 사람들이 호텔을 좋아하지만, 난 호캉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호텔은 집보다 불편할 뿐이다.


난 잠자리에 민감한 편인데 잠자리 환경이 바뀌면 깊이 잠들지 못했다. 베개만 바꾸어도 쉽게 잠들지 못해서 항상 베개를 들고 다녔다. 또 호텔은 건조해도 너무 건조했다. 아토피와 비염이 있는 나는 건조한 호텔에서 긴 시간을 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특히 겨울철 히터까지 틀경우 더욱더 건조하여 나의 연약한 피부와 코를 괴롭혔다. 새삼스럽게 온돌의 고마움을 깨달았다. 히터를 끄자니 춥고, 켜자니 건조하고.. 그래서 결국 내 케리어에는 베개에 이어 전기장판까지 추가되었다. 이 무렵 큰 캐리어를 구매했다. 겨울철 옷가지와 베개, 전기장판까지 들어가는 큰 캐리어가 필요했었다.  그렇게 준비해도 하루하루 한국에 있는 나의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더 깊어졌었다.


마지막으로 불확실한 출장일정


출장의 가장 큰 불만은 불확실한 일정이다. 언제 떠날지 너무 불확실 했다. 많은 출장을 다녔지만 사전에 계획된 출장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출장이 언제 떠날지, 며칠 동안 머무를지 모르기 때문에 계획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나마 한 달 전부터 계획이 되어있는 시생산이나 증설 같은 경우에는 파트원들과 분담하여 출장일정을 미리 정하여 계획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으나 그마저도 자주 변경되었다. 출장이 많은 2019년에는 주말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웠고, 누가 물어보면 항상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이슈가 있으면 추석전날에도 출장을 가야 했으며 왕복 30시간 걸리는 미국을 비행시간 포함하여 4일 만에 다녀온 적도 있다. 거의 1박 3일 느낌이었다.


다음 주 일정을 모른다는 일이 불만이었으나 그 당시엔 그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을 갈아 넣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난 서서히 지쳐갔었다. 출장자에 대한 케어는 부족했고 본인 스스로 챙겨야 했다. 멘털이든 출장 중 어려움이든 다 내 몫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가 날 소모품으로 여긴다는 회의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05_새로운 전환점, 팀 이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