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오기 전
잦은 중국 출장과 높은 업무 강도 덕분에 번아웃이 슬슬 오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서서히 윗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불만을 내뱉지 못하는 성격상 묵묵히 일을 했었고 둥글둥글한 성격 탓에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또 주관적이지만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 당시 나의 강점은 열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일에 대한 책임감에서 나오는 열정이었다.
내가 맡은 업무를 해내기 위하여 어떻게든 완수하려고 노력했었다. 회의에서는 상대방이 후배, 동기이던 팀장급이던 가리지 않고 말하고 싶은 바를 다 말했고, 잘한 건 아니지만 때로는 화를 내면서 내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했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의 성과가 따라왔다. 큰 프로젝트를 몇 번 거치면서 실력을 쌓고 인정을 받다 보니 중요한 프로젝트마다 내 이름이 들어갔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19년에 진행한 모델 개발 프로젝트가 그룹사 전체 시상식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회사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여담이지만 그 당시 난 회의에서 화를 많이 냈었다. 내가 낸 의견이 주관적으로 보나 객관적으로 보나 맞는 의견인데도 불구하고 상대팀에서 귀를 닫고 들으려 하지 않을 때, 품질 Issue가 발생했을 때 명확하게 나의 팀에서 잘 못한 게 아닌데 우리 팀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기탄없이 의견을 냈었다. 각자 팀의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회의에서 난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고 목소리가 떨리면서 정제되지 않은 문장을 쏟고 나면 그제야 나의 의견이 전달되는 듯했다.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왜 화를 냈을까, 화를 내더라도 왜 그렇게 밖에 말을 못 했을까 하는 후회감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회의를 할수록 나는 답답했다. 왜 이렇게 화를 내야만 일이 진행될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회의가 끝나면 그날의 체력을 다 쓴 것 같은 지침을 느꼈다. 머리도 지치고 감정적인 소모까지 더해졌다. 이렇게 해서라도 일이 잘 진행되면 다행이지만,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특성상 아무도 하지 않거나, 진행되지 않는 일은 결국 가장 급한 부서, 가장 억울한 부서에서 끌고 가야만 일이 진행되고 억울함이 풀렸다.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이 맞을까?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일을 할까?
내가 일을 못하는 건지, 여기가 이상한 건지 감이 안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