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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ㅁ경 Sep 01. 2021

역에 선 사람

8월 29일의 일기

어딘가로 떠나는 날에는 '오늘이 떠나는 날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눈을 뜬다. 자는 내내 떠남을 잊지 않으려 스스로를 다그친 것처럼 눈이 떠진다. 눈을 뜨니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할머니는 강판에  감자로 전을 만들고 있었다. 열흘간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먹은 음식인데도 질리지 않고 맛있었다. 감자전이며 소고기며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로, 아무런 맥락은 없지만 맛있는 식사를  먹었다. 사촌동생은 숟가락으로 그릇을 파는 소리까지  가며  그릇을 비웠다. 밥을 먹고 있으니 고모가 왔다. 고모가 밥을 먹는 동안 짐을 싸고 샤워를 하고 누워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다 보니 기차 시간이  되어 넷이 집을 나섰다. 출발  비가 퍼붓고 번개가 쳐서 할머니는 걱정  기대 반을 담아, 이런 날씨에   있겠냐고 했지만 출발할 때쯤 비가 그치고 날이 갰다. 차를 타고 역으로 가는데  문득 어제의 일과 지금의 불안과 걱정이 모여 눈물이   같았다. 이별은  언제나 낯설기만 할까. 그래도 캐리어를 밀며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역에 들어갔다. 플랫폼 벤치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는데 문득  시간이 영원히 이어지고 있는  같단 생각이 들었다. 수십 , 수백 번의 순간이 모여 영원히 나는  위에  있는 사람이   같았다. 지금 있는 곳에 속하지도, 그렇다고 앞으로  곳에 속하지도 않은. 그러나  위태로움을 인지하고 나면 묘한 안정감이 찾아온다.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은 안정감을 주지만, 어딘가에 너무 오래 머물고 있을 때면 존재를 환기할  없으니까. 창문을 열어 외부와 내부의 공기를 순환하고 이곳에 있던 것들이 저곳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삶도 그런 식으로 계속 환기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서울에 와서는 서울 말을 쓰는 할머니  분이 길을 물어보기에 휴대폰으로 지하철 앱을 보며 알려드렸다. 서울에서 서울의 길을 묻는 서울 사람들을 보니 일본에서 일본어로 일본의 어느 동네로 가는 길을 묻던 일본 사람들이 떠올랐다. 문득 내가 길을    같이 생겼나, 아니면 대답을 잘해줄  같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할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할머니는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는  뒷모습이 너무 무기력해 보여 눈물이 났다고 했다. 활기차게 살라고 했다. 할머니는 아마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대구집을 떠날 때마다 무의미하고 막중한 책임감과 쓸데없는 근심과 당당치 못한 시원섭섭함에 짓눌린다는 것을. 아니 영원히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와 산책을 하며 모르는 할머니께 길을 알려드린 이야기를 꺼냈더니 엄마도 오늘 내가 만난 할머니의 위치였다가, 나의 위치였다가 했던 경험을 말했다. 엄마가 처음 서울에 왔을  XX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서울 사람들에게 물었단다. 그러나 물어보는 족족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10년이 지난 지금 엄마 역시 누군가가 길을 물어봤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에 그냥 모르겠다고 대답하곤 한다고 했다. 원체 누군가 말을 걸면 거절을 못해 사이비를 따라가 30분 동안 이야기를 들어주고 설문조사도 하곤 했지만, 누군가가 길을 물으면 정말로, 길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는  배기겠다. 고등학생 때였나, 처음으로 혼자 서울에 가게 됐을  며칠 전부터 서울 지하철의 지도를 보며  호선에 무슨 역이 있는지를 외우던 기억이 난다. 분명 1호선을 타면 5분도 걸리지 않아 시청역에 내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었는데도 1호선을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겠어서 우연히 발견한 4호선을 타고 2호선으로 갈아타 빙빙 돌아갔다. 대구에서도 지하철을 많이 탔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며 자책하기도 했지만, 둘러가든 어쨌든 시청역에 내려 엄마를 만났다. 그 후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내게 금기가 되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너무 무서우니까.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더라도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알고 싶고, 내가 가려는 곳에 가고 싶으니까. 설령 둘러가더라도 내가 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 괜찮지만, 지금  과정이 어디로 향할지 전혀 모른다는 것은 삶과 너무도 맞닿아 있어서 일상의  순간에서까지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방향치이긴 하지만 지도는  읽게 되었다.


이사를 자주 다니는 사람에게 흔히 역마살이 꼈다고들 한다. 그렇게 치면 나는 역마살은 아닌 셈이다. 다만 가족 구성원 각각이 자취를 하고 있으니 여기저기에  짐을 흩뿌려놓아 여기가 온전한  집이라는 식의 무한한 안정감이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것이고, 드문 반가움과 잦은 이별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이별의 순간은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떠나는 순간이 되면 관성처럼, 집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사람은 없는 미래를 상상한다. 집이라는 것이 주는 안도는 거대하지만, 집은 사람이 존재해야만 온전한 공간이 된다. 님이라는 글자에  하나를 붙이면 남이 된다는 말도 슬프지만, ''이라는 글자가 ''이라는 글자를 수식하게 되는 상황도 만만찮게 쓸쓸하다. 사람이 없는 미래를 상상하는 불건강한 습관은 어디에도 집이 존재하지 않게 만들고, 그래서 나는 집에 있음에도 이곳이 언제든  집이   있다는 생각에 쓸쓸해지곤 한다. 이별하려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순간의 감정을 끊임없이 학습하면서 그것은  습관으로 자리잡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나라는 사람이  집과 다름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외로워질 때면 역에 갔다. 오가는 사람들을 보려고. 집도 아니면서 결코  비는 순간이 없는 . 역도 기차도 비어있는 법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은 아니다. 어디론가 가고 어디에선가 오는 과정을 함께하는 곳일 뿐이니까. 그러나 또다시 누군가에겐 집이기도 하다. 그런 모순을 가진 역에 앉아 사람들과 기차와 역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안도감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온전한' 집은 성립될  없는 것이라고. 오히려 그건  환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역에  내가 영원히  집으로 머물러 있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역에  사람은 어디로든   있고 어디에서든   있으며 누구든 만날  있고 누구와도 이별할  있는 존재니까. 자신의 비어있는 마음에 그늘을 만드는 거미줄을 흩뜨려 치워버리고 나면 무엇이든 품을  있는 존재가 된다. 내일의 내가 어제 먹은 감자전을 그리워하며 다시 감자전을 만들어먹는 , 오늘의 내가 과거에 맡은 냄새가 그리워 다시  동네에 가는 . 그런 것들로  집은 환기된다. 스스로를  집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이별을 생소하게 받아들일  있다면,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을 품을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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