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dodok Apr 11. 2022

말 Vs 글, 시대가 변했다.

문창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9

수십 년생 벚꽃 수십 그루가 교내에 만개했다.

총학생회 주관으로 벚꽃 축제가 열렸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음악소리에 뒤엉켜서 웃음꽃이 화사하다. 코로나는 잊은 지 오래인 듯싶다. 교정에 왁자지껄 생기가 돈다. 학교가 지극히 일상으로 돌아간듯하다. 하지만 축제판 멀리 굵은 스트레이트성 구호가 불확실성 시대의 배경 인양 여기저기 걸려있다. 봄맞이 행진과 전혀 다른 분위기로 한 달 전쯤부터 쓸쓸히 걸려있었다.

"철학과 폐과 진행, 재고 재심 철회하라!"

"인문대학 죽이는 일방적인 통폐합을 중단하라!"

"등록금이 아깝다. 자퇴할 테니 그동안 낸 등록금 돌려달라!"

벚꽃을 즐기자는 행사 취지에 맞게 총학 주최 행사에서도 폐과에 대한 맨트가 없다. 그 흔한 인사치레 구호도 없다. 그건 폐과 대상 학과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조용하다. 대변하는 것은 그들이  거칠게 쓴 대자보와 플래카드뿐이다. 


교내에서 폐과에 대해 서로 소통하는 말은 없고 일방적인 한쪽 글만 난무한다. 메아리 없는 글이 한 달째 햇볕에 또는 형광등 불빛 아래 바래가고 있다. 역시 지성인들 답게 말보다 글이 강하다는 걸 믿는 건가. 글이 지닌 힘을 알기에 그렇게 글로만 표현하는 것일까. 그러나 언제부터 글에 힘이 실렸을까. 벼락같은 학과 구조조정 속에서 글의 힘이 정말 살아 있기는 있는 건가. 아니면 말해봤자 어차피 안 통하니 적당히 글로 의사표현만 하자는 건가. 내걸린 글은 강경하게 저만치 앞서 달려 나가는데, 말이란 놈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 주질 않는다.  당연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 위안이 되는 줄 알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수업시간에 항상 허둥대는 신입생이다. 벚꽃축제를 뒤로하고 강의실로 종종걸음 쳤다. 오늘의 과제는 문학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형태의 의미를 들춰보는 작업이다.

 

'르네 마그리트' 작품 '연인들'을 보고

간략한 해석을 각자 업로드해라.  


Rene Magritte/연인들 THE LOVER/ 캔버스에 유화/54X73.4cm/1928년작/뉴욕현대미슬관


(본인 작성 글)

제목: 우리 시대의 사랑이 아프다.


사랑했기에 사랑하는 것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해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슬픈 묵시록이다. 모든 것이 빠른 속도를 요구하고 계량화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하기나 할 수 있을까. 맹목적인 사랑보다 더 무서운 계량화되는 우리 시대의 사랑이 숭고한 사랑의 외피를 입고 오늘도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왜곡된 의식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를 그림은 담고 있다. 프라이버시라는 미명 하에서 타인에게 보여주기도 싫고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고 싶은 껍데기뿐인 사랑이다. 알맹이는 이미 잃어버리고 없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잃어버린 사랑의 원형을 찾아 나서지도 않는다. 너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얼굴 없는 사랑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누군들 당당할 수 있을까?

"연인들" 이 그림 앞에 서면 우리 사랑은 참 초라하다. 변명하자면 그들도 우리처럼 사랑한다.

똑똑한 우리 모두는 이 그림 앞에서 참 가엽다. <과제 쓰기 '연인들' 해석하기 제출>



수업이 끝나고 과대표가 이번 인문대 사태에 대한 현황 설명이 있다고 제3 강의실로 모이라고 한다. 같은 인문대 안에서 벌어지는 일방적인 현상을 그냥 넘기지 말고 폐지 학과생들에게 힘을 보태주자고 한다. 그래야지 암 그렇고 말고 학교 측의 일방적인 폐과는 어불성설이렸다. 2000년대 생 젊은 지식인들의 행동하는 면모  좀 보자. 하교 스쿨버스를 놓치고 시외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한이 있더라도 참석해서 숫자로라도 힘을 보태줘야지.


강의실에 들어가니 프로젝트 화면에 "2023년도 학사구조조정 진행과정"이 두둥 떠 있다. 근데 분위기가 싸 하다. 태반이 우리 문창 1학년들이다. 아니 선임 선배들은 다 어디 갔냐. 더구나 해당 학과생들은 한명도 안보인다. 이거뭐지. 지원군을 향한 당사자들의 눈물어린 신파조 호소가 당연시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황스럽다.


 마이크를 잡은 학과 선배의 말투가 힘이 없다. 시작과 끝에 흔해 빠져서 단물 다빠진 빛바랜 구호도 실종이다. 뭐 모르긴 모르지만 과거 세대엔 이런 집회나 모임이라면 의례 '애국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님을 위한 행진곡'정도는 아니더라도 뭐 소박하게 '단결' 뭐 이런 정도 구호라도 외치면서 시작하거나 끝맺음했지 않겠는가. 내가 너무 과거 회귀형으로 도식적인가. 불행 중 다행히라면 우리 학과는 학과평가에서 상위권이다. 말의 성찬도 좋지만 글로도 밥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은 있는 세상인가 보다. 아무튼 우리학과는 당분간은 폐지될 일은 없을 듯하다. 결국 폐지과에 힘을 몰아주기 위한 모임이라기보다는 우리과는 이상없다는 위안을 우리끼리 주고 받는 모임  성격이다. 기대 안한 수확물도 두 눈으로 건졌는데도  뭔지 모르게 조금 허전했다. 하교버스를 놓칠까봐서 달렸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Z 세대가 주도하는

대학문화는 참 많이 변했다.      


         

작가의 이전글 누구를 위한 '문학'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