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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이 May 13. 2020

이별은 쌍방과실이다 "500일의 썸머"

사랑 참 어렵다.

톰(조셉 고든 래빗)과 썸머(주이 디샤넬)는 회사 동료다. 톰은 썸머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썸머를 만나면서 헷갈린다. 어떤 날은 뜨거운 키스를 퍼붓더니 다음 날 "우리 아닌 것 같다"며 휭 가버리는 썸머. 이 정도 진도면 사귀는 것 아니야? 싶다가도 썸머의 애매한 태도는 톰을 혼란에 빠트린다.


(해당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운명론자와 회의론자가 만나다
달달했네_네이버 영화

톰은 운명론자다. 그는 썸머라는 여자가 자신의 운명인 줄 알았다. 너무 예뻤으니까. 그는 그녀와의 멋진 로맨스를 꿈꿨으나 결코 순탄치 않았다. 톰에게 썸머는 '나쁜 년'이었다. 만나는 내내 확신을 주지 않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너무도 힘들게 했다. 한편 썸머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이다. 어릴 때 겪은 부모님의 이혼은 인간관계에서 방어기제를 만들어냈으며 그 결과 사랑에 회의적이고 누군가에게 귀속되는 것을 꺼려한다. 그녀에게 연애는 무섭고 어려운 일이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영화
싸웠네_네이버 영화

영화 감상 1회 차, 연애가 뭔지도 모르는 고등학생 때였다. 그땐 톰이 불쌍했다. 썸머를 달달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보이는데 썸머는 마음을 다 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선을 그어버리면 모를까, 썸머는 뜨겁게 달아올랐다가도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톰의 모습을 보며 썸머가 싫어졌다. 결국 톰과는 친구로 남고 다른 남자와 결혼에 골인하며 "이 여자 최악이네!"라고 생각했다.


톰을 위해 팔을 내어주는 썸머_폭스서치라이트픽처스

영화 감상 2회 차, 대학교 입학 후 연애를 꽤 했다. 결국 연애의 끝은 상처임을 자각했지만. 이별 후 ‘넷플릭스나 보자'하며 멍하니 리스트를 뒤졌다. 그때 눈에 띈 이 영화. 몇 년 전에 본 것 같은데 내용은 기억 안 나고, 조셉 고든 래빗이 잘생겨서 무언가에 홀리듯이 시청 버튼을 눌렀다. 이럴 수가, 썸머가 이해됐다. 톰은 그녀를 운명이라고만 생각했지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행동한 건 오히려 썸머였다. 첫 데이트도, 키스도 모두 그녀의 리드였다. 톰은 썸머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링고스타를 좋아한다는 썸머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무시했다. 썸머는 톰이 건축물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선뜻 팔까지 내주었다. 썸머는 톰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톰은 썸머에게 확신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세 번째로 봤을 땐 연애를 오래 쉰 어느 날이었다. 더 이상 연애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혼자가 좋아질 때쯤 이 영화를 다시 봤다. 그 때문인지 상당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톰과 썸머의 연애를 바라볼 수 있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둘 다 똑같네, 이거 쌍방과실이네!'였다. 둘의 연애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여느 연인들처럼 데이트하고 싸우고 사랑하고 토라지고. 그러다가 헤어진 것이다. 그래서일까, 톰의 시각으로 아름답게 포장된 이 연애가 사실 그저 그런 평범한 연애였음을 알게 되고 난 후로 영화를 볼 때마다 항상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내 연애는 항상 특별해야 하고 행복만 가득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 여러 번 산산조각 날 때 마음이 그렇게 아프더랬다.



새로운 계절은 오기 마련이다
헤어졌네_네이버 영화

마지막에 썸머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며 톰에게 말했다. '나와 결혼할 사람은, 내가 카페에 앉아있는데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관심 가져준 남자였다'라고. 썸머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여자였다.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톰은 그걸 충족시켜주지 못했으니, 둘의 연애는 끝날 수밖에. (실제로 톰이 영화 내내 썸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없다.) 


톰은 썸머를 충분히 알지 못했고, 썸머는 사귀고 있음에도 자꾸 톰에게 거리를 두며 벽을 세웠다. 톰의 말을 빌리자면 둘은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고, 썸머의 입장에선 ‘너 역시 똑같은 그렇고 그런 남자네’ 아니었을까. 이후 톰은 다른 운명의 여자를 찾았고 그녀의 이름은 "어텀"이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이.



한줄평: 그 남자와 그 여자의 흔한 사랑이야기, 그래서 볼 수록 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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