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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이 May 13. 2020

보랏빛 잔혹 동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아름다움의 처절함

8월, 나는 폭염에 휩싸인 이탈리아 여행 중이었다. 더위를 피해 베네치아 기차역 근처 맥도날드에서 오레오 맥플러리를 먹고 있었다. 기차 시간이 꽤 많이 남아 넷플릭스를 켰다. 색감에 이끌려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봤다. 사실 플로리다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행복한 프로젝트를 그린 영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가 막을 내릴 때 무니를 따라 울고 있었다. 영화는 많은 모순을 담고 있다. 그래서 더 찝찝하고 께름칙하다. 따뜻한 색감과 대비되는 차가운 현실, '매직 캐슬'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니지만 순수한 꼬마들.


(해당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른은 누가 보호해주나요
헬리 때문에 1일 1 주름_네이버 영화

미혼모 헬리는 호스텔 '매직 캐슬'에서 딸 무니와 함께 장기 투숙 중이다. 번번이 숙박비를 지불하지 못한 탓에 호스텔 관리인 바비에게 대단한 골칫거리다. 동네 친구들과 여기저기서 발칙한 사고를 치고 다니는 무니와, 헬리의 정직하지 못한 돈벌이 때문에 따지러 오는 어른들로 호스텔은 조용할 새가 없다. 바비는 무니네를 귀찮아하면서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참견하고 도와준다. 헬리는 이런 바비가 고맙다가도 '당신이 아빠라도 되나며' 잔뜩 대들곤 한다. 헬리는 무니를 끔찍이도 아낀다. 그녀에게 좋은 환경만 있었다면 정말 훌륭한 엄마가 됐을 것 같을 정도.


사각지대에 방치된 아이들
잘 먹네_네이버 영화

무니는 동네 친구 스쿠티, 젠시와 함께 다닌다. 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새 차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으면 침 뱉기 놀이를 한다. 어린 꼬마의 입에서 상스러운 욕이 튀어나오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 위해 거짓말로 삥(?)을 뜯기도 한다. "안녕하세요. 아이스크림 사 먹으려고 하는데 잔돈 있으세요? 지금 5센트밖에 없어서요. 천식 때문에 의사 선생님이 아이스크림 사 먹으래요."라는 식으로. 끼니는 헬리의 친구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가져온 팬케이크로 때운다. 그마저 레스토랑 사장이 눈치를 주는 바람에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됐지만.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고 다녀도 무니는 사랑스럽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 그렇다고 엄마인 헬리가 문제일까? 꽤나 복잡하다. 그녀 역시 사회가 외면한 소외계층일 뿐이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이 상을 세상의 모든 ‘무니’와 ‘헬리’에게 바친다”_무니의 수상소감

헬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 센터를 찾지만 과거 전력 때문에 번번이 거절당한다. 결국 그녀는 성매매에 손을 대고 만다. 그것도 욕조에서 무니가 목욕하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심지어 성매매 남자는 무니가 있는 욕실에서 소변까지 본다. 난 무니가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길 바랬다. 하지만 누군가 무니네문을 두드렸을 때 무니는 엄마에게 "또 쉬 싸러 왔대?"라고 했다. 무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모르는 척했을 뿐. 어쨌든 헬리는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것이고 결국 덜미가 잡혀 아동보호센터에서 무니를 헬리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나선다. 엄마와 떨어져 보호센터로 가기 싫은 무니는 보호센터 직원의 손을 뿌리치고 젠시의 집으로 도망친다. 그녀는 엉엉 울며 젠시에게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말한다. 그때 젠시는무언가 결심한 듯이 무니의 손을 꽉 잡고, '플로리다 디즈니랜드'로 뛰어간다.

동심으로 포장된 자본주의 랜드
최고의 엔딩

무니와 젠시는 왜 디즈니랜드로 뛰어갔을까? 디즈니랜드에 가면 모든 꿈이 이뤄지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여전히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디즈니랜드는 아이들에게 '환상' 그 자체이니까. 하지만 그 디즈니랜드 안에서도 무니와 젠시는 차별받을 것이다. 디즈니랜드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지 않은가.


사랑스럽다_네이버 영화

영화는 철저히 제 3자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카메라 앵글은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고 무뚝뚝하게 그들을 좇아 다닐 뿐이다. 매직 캐슬에 사는 소외계층의 처절함을 너무도 담담하게 써내려 나가기 때문에 슬픔과 동정심, 분노 등의 감정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이 쯤되면 네이버 영화에 쓰인 줄거리에 화가 난다. " 귀여운 6살 꼬마 ‘무니’와 친구들의 디즈니월드 보다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처!"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결코 영화를 제대로 봤다면 이렇게 쓰진 못하겠지. 마치 '지구를 지켜라' 포스터 같은 느낌이다.


한줄평: 나는 내 주변의 무니와 헬리를 한번이라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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