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이 May 14. 2020

피할 수 없다면 부숴라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또 보자 쇼산나!

영화의 시작부터 긴장감이 몰아친다. 유대인 킬러 한스 란다(크리스토프 왈츠) 대령은 부하들을 끌고 프랑스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오두막을 방문한다. 그곳은 딸들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프랑스인 남자의 집. 그는 행방불명된 유대인이 프랑스 마을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색출하기 위해 남자를 만나러 온 것이다. 프랑스 남자는 순순히 유대인 가족의 신상을 확인해준다. 


(해당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잔인함엔 잔인함으로 맞선다
얄밉기로 1등

"협조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의례적으로 당신의 집을 수색할 의무가 있어요. 꼭 수상한 게 나오는 법이니까요. 수색하기 전에 미리 협조해주면 그 수고를 덜 수 있을 것 같은데." 프랑스 남자의 동공이 흔들린다. "이 집에 유대인을 숨겨주고 있죠?, 이 바닥 밑에, 위치를 가리켜 봐요." 남자는 자신의 가족이 해를 입을까 두려운 나머지 사실을 시인한다. 이윽고 한스의 부하들이 들어오고 마룻바닥은 총알 자국으로 흥건해진다. 이때 바닥 밑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쇼산나(멜라니 로랑)가 도망친다. 한스 란다는 달아나는 그녀를 향해  "또 보자 쇼산나!"라고 외치며 역겨운 자비를 베푼다.


이런 거친 녀석들♥︎_네이버 영화

유대인 출신 미군 알도 레인(브래드 피트)이 이끄는 일명 '개떼들'은 나치 사냥꾼이다. 무려 히틀러도 벌벌 떨 정도. 그들은 나치 당원들을 죽인 후에 꼭 머리가죽을 벗기는 관례를 치른다. 상당히 잔인한 장면이지만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혹여 정보를 준 대가로 살려주는 몇몇 독일군에게는 이마에 나치 표식을 새김으로써 '한번 나치는 영원한 나치'임을 못 박는다. 이 장면도 잔인하다. 사실 눈 감았다.


스트루델에 숨겨진 끔찍한 의미
아름답다_네이버 영화

한편 프랑스 어느 작은 마을에서 극장을 운영하는 미미유에게 한 독일군이 계속 추파를 던지고, (알고 보니 그 독일군은 전쟁 영웅으로 꽤나 유명했다) 급기야 그녀를 꼬시기 위해 상부에 나치 영화 시사회 장소를 미미유의 극장으로 하자고 조른다. 영화관 일정 조율로 어쩔 수 없이 나치 간부들과 만나게 된 미미유는 익숙하고 역겨운 얼굴 한스 란다를 단둘이 식당에서 마주친다. 알고 보니 그녀는 쇼산나였고 신분을 위조한 것이었다. 


별풍선 100개짜리 스트루델 먹방

한스 란다는 꼭 먹어봐야 할 것이 있다며 스트루델 파이를 주문하는데 본인은 커피, 쇼산나에겐 우유를 시켜준다. 사실 한스 란다의 친절함 속엔 악마 같은 잔인함이 내포되어 있다. 스트루델은 버터 부족으로 인해 '돼지비계'를 이용해 만든 것인데, 유대인의 조리법에 맞게 만든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유대인인지 테스트해보는 것', '유대인인 걸 알면서도 먹게 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 와중에 우유를 시켰다는 것은 쇼산나의 정체를 알거나 의심한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유대인들은 우유와 육류를 철저히 분리하기 때문.

하지만 왜 한스 란다가 쇼산나를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았는가는 의문이다. 아마 그가 낸 시험 문제를 쇼산나가 잘 풀었기 때문에 '유대인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잔인한데 신난다
죽기 5분 전_네이버 영화

영국 군대는 나치 시사회 정보를 입수하고, 아치 히콕스 소령(마이클 패스벤더)을 프랑스로 보내 알도 레인과 스파이이자 배우인 폰 해머스 마크와 함께 독일군의 정보를 빼돌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잠입한 술집에서 히콕스 소령의 어색한 독일 발음과 숫자 3을 손가락으로 잘못 표시한 바람에(독일식 표시법이 있다) 옆에 있던 독일군에게 들통이 나고, 술집은 한바탕 피바다가 된다. 그 와중에 홀로 살아남은 해머스 마크는 망을 보던 알도 레인에게 구조된다. 그녀는 그에게 히틀러가 시사회에 참석한다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넘긴다. 한편 급히 떠나며 신데렐라처럼 남기고 간 구두와 독일군의 부탁으로 건넨 친필 싸인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사건 현장을 방문한 한스 란다에게 걸렸기 때문.


쇼산나는 시사회 날 영화관을 인화성 필름으로 태워버릴 계획을 세운다. 그녀와는 별개로 알도 레인 일파 세명은 폭탄테러를 벌이기 위해 해머스 마크의 이탈리아 지인으로 위장해 시사회장에 들어간다. 하지만 알도 레인은 한스 란다에 의해 납치되고, 알도 레인을 죽일 줄 알았던 그는 의외의 딜을 제안한다. 영화관에 있는 히틀러 일당을 죽이고 나치시대를 끝내게 해 줄 테니 OSS에 연락해 자신의 행적을 없던 일로 해주고 나치 스파이로 기록해달라는 것.(그 외에도 집을 달라던지 요구사항이 참 많았다.) 결국 딜은 성사되었고, 극장에서는 쇼산나의 신호를 시작으로 필름이 활활 타고 있었다. 먼저 극장으로 들어갔던 개떼들 일원 두 명은 히틀러에게 총을 난사했고 폭탄을 터트림으로써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을 몰살한다. 이후 알도 레인과 한스 란다가 작별인사를 하는 와중에, 곱게는 못 보내 드리는 그의 철칙에 따라 이마에 나치 표식을 한 획, 한 획 그려주며 영화는 끝난다.

카타르시스의 향연

영화는 잔인하지만 미칠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아픈 역사를 있는 그대로 풀어내기보단 허구의 사건과 인물들을 설정해 최대한 가볍게, 그렇지만 그 안에 담긴 유대인들의 분노는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표현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물론 브래드 피트와 크리스토프 왈츠도 있지만 단연 쇼산나 역의 멜라니 로랑이다. 마지막에 극장을 태우며 터트리는 그녀의 한 섞인 웃음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시나리오 자체를 쓸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 (나치) 독일인을 몰살하는 이야기가 어쩌면 독일인들에게 다소 민감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태클 하나 없이 호평받는 이 영화는 독일인들의 뼈저린 반성과 유대인들의 관용이 담긴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제강점기 이토 히로부미를 모티브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면 열도의 반응은 아주 다른 의미로 뜨거웠을 것이다.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

이 영화로 상을 받은 한스 란다역의 크리스토프 왈츠가 시상식 자리에 앉아있을 때, 사회자가 당신 옆에 모두 유대인(영화 산업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하다.)이라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동공이 흔들리는 그의 모습이 꽤 화제가 됐었다.


한줄평: 나를 쿠엔틴 타란티노의 세계로 입문시킨 작품.








매거진의 이전글 색감이 예쁜 넷플릭스 영화 5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