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차노 Bracciano 호수에서
어머나 ~ 백조다 ! 어머 진짜 백조의 호수가 내 눈앞에 펼쳐졌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라는 발레곡이 먼저 머리를 스쳤고 호수 위에 세워진 노천카페 아래에 한 마리의 백조가 어디서 왔는지 등장했다. 카푸치노를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던 중 갑자기 물 위의 하얀 백조가 나를 어린아이로 만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따뜻한 겨울 (사실 겨울 기온이 아니다.)의 햇살이 포근하게 호수 물 위에 내려앉는 아침이었다. 눈이 부시는 것처럼 마음까지 환해졌다.
이 브라차노 호수는 로마에서 북서쪽 40km 거리에 있는 화산 호수로 3개의 마을을 접하고 있다. 그중 트레비냐노 로마노 Trevignano Romano 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에 카푸치노와 코르넷토를 먹으며 가끔 남편과 산책하는 내가 사랑하는 장소이다.
코로나로 인한 봉쇄 명령과 언택트의 생활로 미루고 피하다 드디어 지인들과의 오래된 만남의 자리를 만들었다.
며칠 전부터 날씨를 주의 깊게 살피다 택일을 하고 그나마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야외로 나들이를 했다.
호수는 파도가 있는 바다와 다른 점이 당연히 평온함이다. 잔잔한 물결이 온화함으로, 시야를 트이게 하는 풍경이 자연의 넓디넓은 품이 되어 나를 감싸는 듯하다. 눈부신 햇살에 눈이 멀어지는 듯하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 순간순간 시간이 멈추어 서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지인들과 만난 오랜만의 대화도 잠시 잠시 내 귀에서 스르르 흘러버렸다.
백조는 오리과의 가장 큰 새로 오리과 중에서 최대 거리를 비행하는 겨울철새 중 하나라고 한다. 신화에서 백조는 흠 없는 순결과 신비를 상징하며, 우아함과 귀족, 용기를 상징하고 또한 백조는 결혼에 충성하고 성실한 부부생활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이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내가 본 호수의 백조도 커플인 듯했다. 물론 나의 추측이겠지만...
백조(白鳥)는 말 그대로 ‘하얀색의 새’라는 뜻인데 순 우리말은 ‘고니’라고 한다. ‘고니’는 새가 곤~ 곤~ 하고 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어떤 이는 고니는 ‘고운이’의 줄임말이 아닐까 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목이 길고 하얀 깃털을 가지고 물 위에 떠다니는 자태가 우아하고 신비하고 외로운 모습이 있어 많이 틀리지는 않은 해석 같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담소 속에 웃기도 하다가 내려쬐는 햇살에 따스함이 스며들 때쯤 어느새 나는 그저 작은 아이가 되었다. 세상의 염려와 걱정들도 살랑거리는 호수 위의 바람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리를 순수한 아이의 마음으로 만든다.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나선 세 살짜리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
아들의 점심을 챙겨주다가 서비스받으며 먹는 점심에 공주가 되는 어린아이 같은 내 모습이 우습다. 거의 1년 가까이 집에서 지내다 보니 오랫동안 집콕을 한 티가 내 몸에 절어 있나!! 혼자서 약간은 씁쓸히 웃어 본다.
그래, 이런 날도 필요해.....
아무런 생각도 안 하는 날!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으며 지내는 시간!
편히 쉴 수 있는 장소!
내 영혼의 안식처가 되는 곳에 그저 자연의 품에 잠시 나를 던져 보는 것도 때때로 필요해!
돌아오는 길은 끔찍한 교통체증이 있었지만 일상에의 탈출이 주는 자유함을 가슴 깊이 폐부까지 호흡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