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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진단

ADHD라는 해답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들었겠지만 나는 지난 연말에 ADHD 판정을 받았다. 확진을 받기 전까지의 나는 그 증상과 유사한 모든 불편에도 ADHD라 확신하지 못했다. 모두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일은 더 하고 싶어 하고, 싫어하는 일은 시작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만인에게 당연한 것이다. 책을 읽기 어려워하는 것도, 무언가를 쉽게 까먹어버리는 것도 꽤나 흔히들 그랬다. 그래서 나는 학업을 마치면 공부에 손을 댈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고, 그 말은 곧 나의 하루에 집중을 요하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 것이란 단정으로 이어졌다. 나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일에 집중을 못했지, 현재 업으로 삼고 있는 디자인과 영상 제작은 웬만해선 무리 없이 끝마쳤기 때문이다.


‘성인 ADHD’라는 키워드가 떠오른 이후, 온라인에 떠도는 ADHD 간이 체크리스트에는 대부분 ‘나도 ADHD였네?!’와 같은 반응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이 의문을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해결하기 위해 성인 ADHD를 다룬 책을 두 권이나 샀다. 그러나 시도 자체는 좋았지만 나의 사고는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읽고자 하면 나의 산만한 뇌는 높은 확률로 갑자기 검색창에 입력해야 할 단어가 떠오르게 하고, 이럴 때만 쓸데없이 빠른 동체시력이 휴대폰으로 주의를 끌어버린다. 결국 이 책들은 한 권은 1/20 정도 읽힌 채로, 다른 한 권은 표지조차 펴지지 못한 채 지금까지 나를 대신해 책장이 그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확실히 하고 싶었다. 학업 이후에는 집중이 어렵지 않은 일만 남을 줄 알았는데, 철은 안 들고 나이만 먹는 어른이 되고서 오히려 집중을 필요로 하는 일이 늘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은 것’이라는 말처럼, 이미 때는 공부하기 위해 붙잡고 있던 미량의 집중력도 분실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뒤늦게 병원에 방문했다. 나는 내가 제발 ADHD이기를 속으로 바랐다. ADHD라면 치료라도 어떻게든 하겠지만, 아니라는 것은 그냥 이 불편함과 앞으로도 동행해야 한다는, 이미 모두가 나처럼 살고 있다는, 의학적 명분도 없이 나의 게으름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나에게 해결할 ‘답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긴장 속에서 설문지도 작성해 보았고 의사 선생님과 나의 불편에 대해 설명드리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2000년대 중후반에 플래시로 만들어진 IQ 테스트나 멘사 입단 시험지에서 볼 것 같은, 단순한 도형과 소리를 이용한 집중력 검사도 컴퓨터로 진행했다. 나는 공간 지각 능력 검사 같은, 지식 이외의 능력을 요하는 이런 검사에 자신이 있었다. 덕분에 내가 ADHD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무모한 자신감이 시작 직전 생겨났다. 처음 두 종류의 검사를 무난하게 통과하면서도 그랬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세 번째 검사부터였다. 실수가 생겼다. 점점 정답보다 내 실수가 더 많다고 느낄 정도로 그 간단한 테스트에 오답이 속출했다. 이후 두세 가지의 검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ADHD’ 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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