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검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나의 증상이 단순 집중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흥미가 없는 일은 시작하지 못하는 것, 혹은 시작하더라도 주의가 쉽게 뺏기는 것, 반대의 경우 흥미가 있는 일은 시작하면 스스로 그 일에서 빠져나오지도, 상황을 제어하지도 못하게 되는 이른바 ‘과몰입’이 문제라는 진단을 받았다.
많은 불확실한 순간 속에서도 그나마 내가 ADHD라 추측해 본 이유는 ADHD의 판별 기준 중 하나가 ‘아동기 때부터 겪은 문제인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유달리 남들보다 책 읽는 속도가 느렸고, 중고등학생 시절, 심지어 고3 때도 집에서 공부를 했던 시간이 도합 일주일, 아니 사흘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열심히 하나요?’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할, 본분을 거스르고 있는 학생이 더 많을 것이고, 나의 경우에도 시험을 앞두고 ‘공부 많이 했어?’라고 묻는 친구의 질문에 많이 못했다며 울상을 짓고 후에 나를 기만할 예정인 인물이 더 많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은 언급하지 못할 아이돌 하나, 수줍지만 지금도 자신 있게 언급할 아이돌 하나, 총 두 아이돌의 덕질, 그리고 사촌누나가 설치해 둔 포토샵을 배우는 데 삼매경이었다. 이 녀석들, 나는 정말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진짜였는데. 다음부턴 정량적으로 물어야겠다.
그런 이유로 ADHD에 대한 나의 의심은 내내 의심에서만 그치곤 했다. 확진을 받고 명확한 증상을 인지하고서야 과거에서 그 의심을 해소할 단서를 하나씩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의 어린 나는 유난히도 박스, 통, 케이스 같은 것을 좋아했고 그것이 갖고 싶었다. 무언가 종류에 맞게 담아낸다는 것이 재밌었고, 그것이 곧 어린 나의 안정이었나 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1권부터 20권까지, 별매판까지 더해 신간이 나올 때마다 구입했다. 반대로 롯데리아 어린이 세트의 증정품이었던 다섯 가지 변신 자동차와 맥도날드 해피밀의 건설 현장 테마의 장난감들은 시즌이 지나면서 결국 다 모으지 못했다. 완성되어야만 했던 자동차 로봇 하나와 장난감 공사장의 완성된 풍경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하늘색 타워크레인 꼭대기에 외로이 서있는 맥도날드의 광대 마스코트와 의미 없이 크레인을 오르내리는 빨간색 맥도날드 컨테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