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로니카의 참견 Nov 21. 2023

딸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에게 묻고 싶었던 말들

  결혼 전 어머니에게 떠밀려 맞선을 세 번 정도 보았다. 엄마는 상대방의 직업과 집안과 재력을 면밀히 조사하여 내게 일방적으로 약속 장소를 통보하셨다. 잘 될 리가 없었다. 엄마가 원하는 사람은 사위였지만 내가 원하는 사람은 남편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남편은 엄마가 원하던 사위와는 정 반대의 남자이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첫째 딸은 같은 회사에서 만난 지금의 남자친구와 일 년 넘게 교제 중인데 '집에 한 번 놀러 오라'고 해도 '나중에'라고 하거나 '오빠'가 불편해 한다'라고만 했었다. 가끔 함께 했던 즐거운 일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 보면 두 사람은 제법 잘 맞는 듯했다.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다던가 낯을 심하게 가리는 듯하여 그 성격이 어떨지 몹시 궁금했다. 몇 주 전엔 남편이 친구에게 밭 두어 고랑을 얻어 '속노랑 고구마'를 심었다가 캤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딸이 군고구마를 좋아하니 택배로 보내준다고 했으나 몇 개만 먹으면 그만이라고 했다. 어찌어찌 이야기가 흘러 딸의 남자친구 부모님께 10kg을 보내게 되었다. 남편은 꼰대도 아니면서 서로 낯도 모르는데 그래도 되느냐 난색 했지만 그 정도 인사는 해도 될 정도로 그 집에선 딸을 챙기는 듯했다. 조심스럽게 결혼을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워낙 제 일은 알아서 모두 하는 편이니 먼저 말이 나오기 전까지 묻지도 못했다. 참 이상하다. 자식이 어른이 되니 공연히 조심스럽고 어렵다.....


 지난주 서울에서 2박 3일 직무보수교육을 받게 되었다. 매년 의무적으로 받는 21시간의 교육이었는데 올해는 을지로에 소재한 4성급의 비즈니스호텔에서 교육이 있었다. 모처럼 서울에서 2박 3일이라니 설레고 기대되었다. 그저 쓱 지나가는 말로 '맛있는 거 사 줄 테니 남자친구와 함께 저녁 먹자'라고 제안을 했는데 선뜻 그러자고 했다. 뭔가 많은 뜻이 담긴 것 같아 혼자 궁리가 많았다. 심지어 자식과 같은 세대인 공중보건의사들에게 모의 면접까지 하며 즐거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에 이란이 개입하여 중동 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과 향후 전쟁의 전개 양상'에 대해 질문하면 어떻겠느냐는 나의 말에 한의사도 내과의도 펄쩍 뛰며 그런 압박 질문은 금지라고 손사래 쳤다. 한바탕 웃긴 했지만, 부끄럼이 많고 술을 마시지 않는 내향형인 사람과의 식사가 내겐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져 걱정이었다. 우습게도 첫 만남인데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머니를 보면 그 딸을 안다고 하지 않던가. 공연한 말실수나 품위 없는 언행으로 딸에게 누가 되기 싫었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딸이 사귀는 남자를 내게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7시에 마치기로 예정된 교육이 30분 일찍 끝나 객실에 잠시 누워 시간을 기다리는데 좀처럼 간이 가지 않았다. 55세가 넘은 이후로 이렇게 느리게 시간이 간 것이 처음이었다! 7시가 넘도록 두 사람 모두 좀처럼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이 늦게 끝났다고 했다. 얼마나 고단할까? 새삼 엄마가 서울 왔다고 열심히 전철을 타고 오고 있을 두 사람을 생각하며 마음이 짠했다. 드디어 호텔 앞이라고 전화가 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옷을 껴입어서 둔해 보이진 않을지를 생각하다가 혼자 웃었다. 웬만해서는 긴장하지 않는 편이다. 직전 마지막 강의 시간에 '사례관리'와 관련하여 자발적으로 일어나 앞으로 나가 200명 앞에서 발표까지 할 정도로 담대한 편이다. 하지만 딸이 나 때문에 부끄러운 일이라도 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구나.


 두 사람은 호텔 정문 앞에 서 있었다. 먼저 발견한 것은 꽃다발을 든 듬직한 체격의 청년이었다. 사진에서 본 적 있는 얼굴을 알아보았다. 멋지게 차려입고 나오면 어색했을 텐데 그냥 평소대로 편하게 입고 나온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청년은 내게 공손하게 인사하면서 꽃다발을 내밀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우리는 셋이서 나란히 저녁 식사 예약을 해놓은 인쇄소 골목 안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향해 걸었다. 딸이 내 팔짱을 끼고 네이버지도를 보고 길잡이를 하고 있었다. 나의 반대편 딸의 옆에서 나란히 걷는 청년은 긴장한 듯 보이면서도 여유로운 걸음으로 길의 좌우와 딸과 나를 눈 여기고 있었다. 딸과 그 청년은 드러나지 않게 서로를 배려하고 주고받는 말투도 다정해 보였다. 신기하게도.



 딸이 남자 친구를 엄마에게 보여 줄 결심을 했을 정도면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 사람과 하게 될 것'이라는 의사 표현이겠다. 딸이 이미 검증하고 있을 터이니 내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에 대수랴. 전부터 내내 두 딸에게 그런 말들을 자주 했었다. '엄마가 사람 보는 눈이 있는 편이니 좋아하는 남자 생기면  먼저 엄마에게 검사받아라' 농담이었지만 딸이 그랬다. '검사받으라며.....' 나는 딸이 검사받겠다고 보여 주는 이 낯선 청년에게 무엇이 궁금해야 할까. 통상적인 질문, '나이가 몇 살이냐' 그건 이미 알고 있다. '형제자매가 몇 명이냐' 그것도 이미 알고 있다. '부모님 직업은 무엇이냐', '돈은 좀 모았느냐' 등등... 그런 질문들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선택할 수 없었던 그런저런 조건들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알 수 있을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닌가. '자신이 인식하는 자존감 있는 스스로의 정체성, 추구하는 삶의 방향, 신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 상태, 가족과의 관계, 건전한 삶의 루틴, 사소한 습관들' 같은, 살면서 서로에게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들이 궁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질문들에 대해 난감해하거나 생각해 본 적 없다면 아직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아닐까. 딸의 남자친구는 제법 좋은 대답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트라우마의 반대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