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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여행가K Jun 15. 2021

내 공간 취향과 기준을
알아야 하는 이유

나에게 필요한 공간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내가 원하는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는요?

지금의 공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는 설명할 수 있나요?


존재하는 매 순간 나는 어떠한 공간에 있는데도, 우리는 생각보다 공간에 대해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공간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공간에 대해 생각을 해볼 기회가 부족했거나, 공간을 바꿔본 적이 없었다거나, 불편함에 익숙해져 표현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내’ 공간이라는 기회 자체가 힘들었을 수도 있고요. 또는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로 편안하던 공간도 불편해질 수 있죠.


공간 분야에서 6~7년을 일한 저도 갑자기 제 개인적인 공간에서의 불편함을 느끼게 됐어요.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서 일하게 됐기 때문이죠. 대학 때부터 저에게 집은 수면의 공간, 휴식의 공간, 외출을 준비하는 공간으로,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었어요. 집에 있어도 제 방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진 않았죠. 반면 회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야근한다면 새벽까지)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제 개인 책상에는 많은 업무용 물품과 제 애착 아이템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코로나 19가 발생한 초기에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하자, 저는 회사 컴퓨터를 제 방으로 가져오게 됐어요. 업종의 특성상 요구되는 기기의 사양이 있었는데, 우리 집에는 데스크탑이 없는지 오래였고, 회사에서 사용하는 제 자리의 데스크탑에는 업무 효율을 위해 제게 익숙한 세팅을 해두었기 때문이었죠. 문제는 회사에서는 업무에 도움이 되던 크기의 모니터가 제 방에 들어오니 너무 가까워 눈의 피로도가 커지는 거예요. 당시 제 방에선 중요도가 낮던 책상과 책장의 크기도 문제였고, 갑자기 온종일 앉아있어야 할 의자도 사무용이 아니라 불편했죠. 책상에 앉아있을 일이 많지 않았으니, 침대와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침대에 막혀 의자를 뒤로 충분히 뺄 수 없었거든요.


다행히 그 시기에 데스크탑이 꼭 필요한 작업이 아니라서 일주일간 노트북으로 작업하며 고민하다가 업무 효율과 삶의 질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가구 배치를 바꿨어요. 침대를 창문 쪽으로 놓고, 책상을 옮겨서 등 뒤의 공간을 확보하니 작업할 때 불편하던 것은 괜찮아졌죠. 그러나 종일 벽을 보고 있으니 답답해졌어요. 고개를 살짝 돌려 아파트 복도 너머의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볼 때는 조금 괜찮아졌지만, 가구와 비교해 방의 크기가 절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에 답답함이 해소되지는 않았어요. 화장도 잘 하지 않는 데다가 외출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에 화장대를 열 일이 많진 않았지만, 장기간 늘어지니 열 때마다 책상을 움직이고 물품을 옮겨야 하는 것도 불편해졌습니다.




머릿속에 고민을 넣어놓고는 일의 강도가 높던 몇 달을 그대로 지내다가 문득 집 전체를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부모님과 저 모두 생활 리듬이 달라, 각자 수면 공간을 분리한 지 오래됐고, 지방에 있는 동생은 집에 가끔 오는 상황이었어요. 엄마는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전의 저만큼 적었고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은 없으셨어요. 다만 거실에 계실 때 아빠가 쓰시던 방의 문을 닫으면 바람이 통하지 않아 덥고 답답해하실 때가 많으셨죠. 아빠는 불편함을 느끼시는 부분들이 있으셨지만,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어서인지 변화에 대한 생각을 말씀하시진 않으시고 해당 문제에 대해 바로 할 수 있는 조치만 하셨어요. 원래 쓰시던 방에는 옷장들 때문에 침대를 놓을 수 없었는데, 주무실 때 허리가 아프셔서 두꺼운 이불을 까셨고, 방바닥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일이 없으시니, 이불은 늘 펼쳐져 있었어요. 이는 옷장 사용의 편리성과 청소 빈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잠귀는 예민하신데 큰길가에 있는 방이라 소음이 커서 방문을 꼭 닫으셨고요.


반면에 제가 쓰던 방은 복도 쪽 방이라 아빠가 쓰시던 방에 비해 소음이 덜했고, 붙박이장과 침대가 있었어요. 방의 크기는 더 작았지만요. 각자의 불편함을 생각해봤고, 공간의 특성도 생각해본 후에 서로에게 덜 중요한 부분도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은 침대였어요. 두 분과 달리 저는 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방바닥이나 제 책상에서 하고 싶은 활동들도 많아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침대의 필요성은 적었어요. 아빠껜 방 크기의 중요성이 덜했어요. 방에서 보내시는 시간도 적었고, 필요한 기능도 옷장과 수면 공간뿐이었죠. 각자의 개인 공간에서 기회를 맞교환하면 문제도 같이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개인 공간인 방을 바꾸고 서로에게 중요한 가구의 위치만 변경했어요.




바뀐 환경에서 서로 더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며, 관계도 좋아졌어요. 당시 공간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종일 벽을 보며 일만 하자니 저는 더 예민해졌고, 그 예민함이 가족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또 지내다 보니 이제는 책상 크기와 책장의 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요. 내 공간들을 고민하고 바꿔보며 ‘내 공간 취향, 내 공간에 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알아가며 일상도 단단하게 다져가고 있어요.


상황의 변화를 겪으며, 익숙해서 무심했던 ‘내 공간’을 다시 들여다보고 변화시키기 시작했고, 공간과 함께 제 일상과 관계도 좋아졌어요. 그 과정에서 다른 분들과도 나누고 싶은 것이 있어 공간 워크숍들을 진행하고 있어요. 다른 분들의 공간에 대한 고민과 이야기들을 들으며, 공간과 일상과 관계의 상관성을 점점 더 느낍니다. ‘내 공간’을 인식하고 탐구하는 것은 나의 일상과도, 함께 하는 이들과도 영향을 주고받으며 아주 가깝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요.




내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나의 일상이 펼쳐지는 환경을 가꾸는 것이에요. 주요 가구에 따라 공간 안에서 주로 하는 활동이 달라지기도 하고, 몇 시간 동안 어떤 것을 바라보게 만드느냐에 따라 마음의 안정도나 업무 효율이 달라지기도 해요. 또는 반대로 공간 안에서 주로 뭘 할지에 따라 중요한 가구가 달라지기도 하고, 심리적 상태에 따라 공간의 상태가 달라지기도 해요. 따라서 공간에 대한 나의 취향과 기준을 알아간다는 것은 내 삶의 자취나 일상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내 공간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공간을 같이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마주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고, 개선하는 위한 것이기도 해요. 함께 하는 시간이 언제고 얼마나 되는지, 집에 같이 있어도 다른 공간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는 왜 공간을 같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지도요.


이처럼 ‘공간’은 일상, 관계와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공간의 변화로 일상도 관계도 변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기도 합니다. 내 삶을 위해 공간을 변화시키려면, 내 공간을 달리 보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 과정을 통해 나의 공간 취향과 기준을 알아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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