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처음엔 J를 마주 보지 못하고
옆에서 등 뒤에서 보고 있었다.
나의 얼굴과 등을
보이지 않으려 했던 건 아니었다.
다만 J의 등이 보고 싶었던 거야.
J가 내게 어떤 악의도 보일 수 없는 위치에서
자주 쓰던 흔한 언어를 선의라 믿는 하루에 안도했다.
그 앞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때는 언제였을까.
J가 자그마한 것들에도 이름을 붙여줬을 때였나,
밤을 밝히고선 어둠을 고백했을 때였나.
J가 기꺼이 풀어낸 이야기에서
나는 색을 보고 풀소리를 들었다.
말이 되는 소리만 했더라면
지금도 뒤를 서성였을 텐데.
어쩌면 네게도 보고 싶은 등이랄 게 있었던 거지.
J야,
어느덧 실컷 울어내고 멋대로 웃어낼 수 있던 두 얼굴과
무탈한 하루에 안도하는 게 무서워 궁리하던 두 사람과
마음의 까만 콩을 나누어 가진 근사했던 시간을 기억하니.
우리의 말과 말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던
윤이 나던 구정물마저 좋았던 그 시간을 말이야.
어쩌면 너는 일찌감치 알았을 거야.
우리가 서로의 가느다란 실밥과 동그란 보풀을 사랑한다는 것을,
사랑한다는 말에도 마음에 물기가 생긴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