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학엄마 Mar 19. 2023

아들에게 준 미션

거북이 청소를 맡기다.

 우리 집엔 지금 고3인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키우는 거북이가 두 마리가 있다. 거북이 이름은 보석이와 체리. 아들의 거북이 사랑은 남다르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가족사진을 그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자기 자신, 엄마, 누나와 거북이 두 마리를 그리고 아빠를 그리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 그림을 잘 보관해 두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보관을 못했다...) 나름 이유는 있었다. 아빠가 집에서 다니기 먼 곳에 출근하고 있어서 주말 부부를 하던 때라 아빠를 자주 못 보던 것이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아빠를 그리지 않고 거북이 두 마리를 그릴 정도로 아들은 거북이를 사랑했다. 

  겨울 방학 때 아들의 공부 독립을 선언하면서 아들에게 미션을 하나 주었다. "거북이 청소" 거북이가 크면서 보석이가 체리를 물고 놓지 않은 적이 있어서 그 이후부터는 거북이 두 마리를 각각 다른 어항 (큰 플라스틱 옷 보관하는 박스)에 분리해 두고 있다. 거북이 청소를 하면 어항 두 개를 청소해야 하기에 꽤나 번거롭고 힘든 일이었다. 처음에는 공부 안 할 거면 엄마 돕는 일이라도 해라 하는 심정으로 맡기긴 했지만 가족의 일원으로 한 가지 일을 맡긴 것은 잘 한 일인 것 같았다. 

  아들에게도 거북이 청소는 번거로운 일이었다. 누나와 엄마가 "거북이 청소 해줘~" 그러면 "어 내일 할게~" 하면서 내일이 모레가 되고 모레가 다음 주가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얼마나 청소하기 싫었는지 이해가 가지?" 하며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다. 

 어느 날 아들이 "여과기가 있으면 거북이 물 관리가 훨씬 좋을 것 같아."라고 이야기했다. 예전에도 여과기를 설치해보긴 했었는데 뭐가 좀 잘 안 돼서 버리고 지금은 여과기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쿠*에서 여과기를 구매하고 아들이 청소하는 날에 여과기를 주며 한번 설치해 보라고 했다. 마침 그날이 중학교 학교 총회가 있는 날이라 아들은 집에 일찍 와 있고 나는 학교에 가 있었다. 아들은 처음에 여과기 설치가 뭐가 잘 안 되었는지 사진을 찍어 보내며 이 여과기로는 물을 너무 많이 채워야 해서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집에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집에 가면 같이 보자고 문자를 남기고 총회에 참석했다.

 총회가 끝나고 집에 갔는데 나름 여과기를 다른 방법으로 설치를 해 놓은 것이다. 플라스틱 어항이 꽤 크고 물도 좀 많이 넣어야 해서 무거운데도 혼자서 두 개의 어항을 청소하고 여과기 설치하고 옮기는 것까지 해 두었다. 나름 해 냈다고 힘든데도 혼자 해놓았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아들이 귀엽고 기특했다. 사실 거북이 청소가 뭐라고 이거 하나 해냈다고 기특하다 하는 것도 너무 오버인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많이 성장한 아들을 여전히 아이 취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여전히 유튜브도 많이 보고 게임도 좋아하고 학원 갈 때 아슬아슬하게 혹은 늦게 가기도 하지만 더 이상 아들과 싸울 일이 적어진 지금 나도 아들도 많이 편안해졌다. 왜 이렇게 믿어주지 못했었는지. 엄마가 믿어주면 많은 일들이 바뀌는데 말이다. 

  앞으로도 많은 부분에서 마음에 안 드는 일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들을 나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 주기. 혼자 다짐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 공부 독립 선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