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더블린 2일차. 함께 다닐 일행이 생긴 날. 프라하, 바르샤바에서 다른 한국 출판사들과 함께 '찾아가는 도서관'행사를 하고나서 더블린에 오신 클레이하우스 윤땡땡 대표님. 대표님과 아침을 먹으면서 나는 말했더란다.
"대표님, 제가 어제 그래프톤 거리 걷다가 서점을 발견했는데요. 들어가보니 휴남동 책이 딱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 내가 사인해드리면 서점에 좋은 거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어요."
"그럼 이따 가서 한번 말해보시면 어때요?"
"헉, 아니에요. 전 한국에서도 그런 거 못해요."
이렇게 말을 해놓았으면서도 나는 대표님과 그래프톤 거리 쪽으로 걷고 있었고, 대표님은 내가 다른 나라 서점에 들어가 직접 '혹시 사인 좀 해도 될까요?'묻는 걸 영상으로 담는다고 했으며, 나는 어쩐지 사인을 하지 못하면 집에 가서 엄청 후회할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며 서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결국 큰 마음을 먹고 서점 직원분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작가예요, 나는 한국에서 왔어요. 내 책이 저기 있는데요. 괜찮아요? 싸인?"
직원분은 '다행히' 해달라고 했고, 외국에서 자진해서 사인하는 모습이 아래 영상 ㅋ
(업로드하고보니 화질이 너무 안 좋아요)
내가 사인하고 있으니 궁금해서 다가온 어느 분이 어머니 이름을 알려주시면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영상.
사실 한국에서도 독립 서점에 들어갔다가 내 책이 보이면 늘 내적 갈등에 시달렸다. 내가 여기에다가 사인을 해드리면 서점 대표님에게도, 독자분에게도 좋은 거 아닐까? 그런데 혹시 싫어하면 어쩌나? 그런데 싫어할 리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물어보지 못하고 나온 적이 여러 번이었고, 그럴 때마다 조금 후회했다. 그냥 말해볼 걸. 좋아하셨을 텐데.
이런 내적 갈등을 타국에서도 했고, 왠지 여긴 다시 올 일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한국에선 샘솟지 않던 용기가 샘솟았다. 그래서 벌인 일.
어쨌건, 외국의 어느 서점에서 내 책을 발견하는 일은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일이니까, 이 기쁨을 어떤 방식으로라도 누리고 싶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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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공항에서 호텔로 오는 택시 안에서, 택시 기사 할아버지는 나에게 아일랜드의 문학가들 자랑을 한바가지를 하셨다. 나더러 너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가 아일랜드인인거 알아? 걸리버 여행기 쓴 조나단 스위프트도 아일랜드인이야.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알아? 조지 버나드 쇼는 어떻고 등등.
그런 할아버지에게 나는 와, 메리 셸리도여? 그건 몰랐어요, 하고 말했고, 어쩐지 지고 싶지 않아 기사님에게 물었다. 그런데 기사님, 그럼 기사님은 샐리 누니 알아요? 기사님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내게 다시 물었다. 누구? 그래서 나는 다시 말했다. <노멀 피플> 쓴 샐리 누니요. 그러자 기사님은 긴가민가한지 또 잠시 생각하다가 난 칙릿 소설은 좋아하지 않아, 하고 대답했으며 나는 속으로 샐리 누니는 칫릭 소설을 쓰는 작가가 아닌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영어로 이걸 어떻게 말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아, 네, 하고 말았다.
암튼, 기사님의 자부심은 그럴 만한 거였고, 오늘은 오스카 와일드 생가에 가보고 오스카 와일드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어봤으며, 오코넬 거리에 있는 제임스 조이스와 템플 바에 있는 제임스 조이스를 보고 왔다. 아일랜드 경제력이 영국을 뛰어넘은 걸 기념하는 스파이어도 보고. (서점에선 샐리 누니 네번째 소설이 출간된 것도 봤다. 우리나라에도 얼른 번역되어 나오길!)
확실히 여행은 동행이 있어야 더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