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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난 더블린에 기네스를 마시러 온 걸까.
어쩌면 이 아니라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
기네스를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닌데 오기 전부터 기네스가 엄청 기대되었고, 그래서 내 계획은 매일마다 기네스를 마시는 거였다.
기네스를 맛나게 마시기 위해 지난 몇 개월 95% 정도로 금주를 하기도 했다(실은 건강을 위해서). 그 사람이 파면된 이후 얼마간 너무 기분이 좋아 몇 번 마시긴 했지만, 그래도 몇 개월간 나는 잘 참았고, 더블린에서 하루 뺀 매일 기네스를 마셨다.
기네스는 거품 가득 따라진 모습이 참 예쁜 것 같다.
두툼하고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도 좋다.
사실 내 미각은 그리 발달하지 못해서, 한국에서 마시는 기네스와 더블린에서 마시는 기네스의 맛을 구별할 길은 없지만,
그래도 당연히 더블린에서 마시는 기네스는 맛있다.
두 번 째날 템플바에 가서 마신 기네스도 맛있었고, 6일 차이자 마지막 날 간 기네스스토어하우스에서 마신 기네스도 맛있었다.
(관광객이 떼를 지어 몰려드는 템플바, 나는 매우 재미있었다. 그런데 더블리너에게 템플바에 갔었다고 말하면 "와이?"하고 묻는다. 거길 왜 갔느냐고. 비싸고, 시끄러운데.
그러면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왜냐하면 나는 관광객이니까... 그리고 원스도 거기에서 촬영했잖아... 그러니까 그래프톤 거리에 가는 이유와 같은 거야, 템플바에 가는 건. 그리고 이건 외국인들이 한국의 명동에 가는 것과도 같은 거야, 우리도 명동 잘 안 가거든. 왜냐, 너무 사람 많고 정신없으니까.")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더블린에서 마신 라거가 훨씬 맛있었다.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서도 라거를 한 잔 마셨는데, 이게 더 내 스타일. 향긋하면서도 가볍고,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갔는데도 잔향이 목구멍에 남는다.
마음 같아서는 어젯밤(그러니까 마지막날 밤)에 한 잔 더 마시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못 마신 게 아쉽다. 그런데 원래 여행은 아쉬움을 남겨야 하는 거니까.
듣기로, 그리고 보기로.
아일랜드 사람들은 술을 매우 많이 마신다.
토지 독서모임에서 만난 아일랜드 분들이 말하길, 내 소설 속 휴남동 서점이 하는 역할을 아일랜드에서는 펍이 하고 있다고.
아이들도 데리고 와서 커피 대신 맥주나 위스키를 마시며 얘기하고 하루를 정리한다.
그래서 아일랜드 카페는 오후 4시면 문을 닫는다. 어차피 열어 놓아도 사람들은 다 펍으로 가니까.
한국에선 거리에 카페가 가득하다면, 아일랜드에선 펍이 가득하다.
그 펍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사람들의 말소리가 크게 들린다. 왜냐하면 아일랜드 사람들은 스몰톡을 너무나 좋아해서 모두 다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세 번째 날 호텔 근처 펍에 갔을 때, 나는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지 못했다.
역시나 사람들이 계속 얘기를 하고 있어 공간이 말소리로 가득 찼기 때문에.
그러니까 첫날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준 택시 기사 할아버지가 예외적으로 말이 많으셨던 게 아니라, 그냥 그가 아일랜드인이기 때문에 말이 많았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말이 많지?"
스몰 토커 아일랜드인은 친절하다.
그래서 아일랜드는 이방인이 여행하기 좋은 나라다.
마트 직원도, 카페 직원도, 펍 직원도 친절하다.
다인종이 섞여 지내는 곳이라 내가 동양인인 게 하나도 튀지 않기도 하다. 혼자 길을 걷는데 나에게 길을 묻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친절한 아일랜드 사람들 덕분에 낯선 곳을 힘들어하는 나도 이곳이 조금은 편해졌다.
어쩌면 한 번쯤 또 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이번 여행이 좋았고,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와서 이번에는 매일 기네스를 마시고 싶다. 라거가 더 맛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일랜드는 기네스니까.
이번 여행은 유독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동행이 있어서 좋았고, 친절이 있어서 좋았고, 내 소설을 읽은 분들이 있어서 좋았고, 몇 분 걸어가면 그래프톤 거리가 있어서 좋았고, 거기서 또 몇 분 걸어가면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가 있어서 좋았다.
언제고, 또 오고 싶다.
이제 한국으로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