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의 기분, 생각

by 황보름

오늘도 여지없이 7시가 되기 전에 눈이 떠졌다. 주말엔 알람을 맞춰놓지 않는데도 평일과 비슷한 시간에 눈이 떠진다. 이왕 일어났으니 꾸물대지 않고 평일과 비슷하게 움직였다. 야채 스무디에 달걀 삶은 거 하나랑 더블린에서 선물 받은 정말 너무 맛있는 원두로 내린 커피 한잔을 아침으로 먹으며, 알릴레오 북스를 본다. 원래 아침을 먹을 땐 책을 읽는데, 주말이니까 약간의 자유를 준 것이다.


이까지 닦고 거실 소파 쿠션에 등을 대고 얼추 누운 채 책을 읽으려는데 지금의 내 기분이 느껴졌다. 내 기분의 상태가 '좋음'이라는 게 좋았다. 지난 반년 내내 마음 바닥에 깔려 있던 불안과 분노 등이 이제 더는 없었고, 앞으로 점심을 먹을 때까지 재미있게 책만 읽으면 된다는 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 다음 주에 있는 온라인 독서모임 책 <빌러비드>를 어제까지 읽고 오늘은 <작가란 무엇인가 2>에 있는 토니 모리슨 인터뷰를 읽은 뒤 오후엔 다음 주에 써야 할 일본 도쿄의 책동네 '진보초' 관련 에세이를 위해 진보초 관련 책을 읽을 계획이다. 오늘 하루가 나름 평화롭게 책과 함께 지나갈 것이란 얘기.


지난 6개월 동안엔 책도 많이 못 읽었다. 주의력이 현격히 떨어지고 문장을 눈으로는 읽었는데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해 다시 앞으로 가기 일쑤였다. 과연 한 번에 몇 십 페이지를 읽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책을 읽다가도 자꾸 뉴스를 검색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았고 세상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봐야 할 것 같았기에. 이건 분명 세상 탓이야,라고 하며 책 읽기에서 자꾸 멀어지는 나를 속으로 많이 꾸짖기도 했다. 다 핑계야, 읽으려면 읽지 왜 못 읽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얼른 다시 책으로 돌아가, 너 이렇게 책을 안 읽어서 어떤 사람이 될래? 마음에 쌓인 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떻게 글을 써? 정신 안 차려?


하지만 지난 며칠 책을 술술 읽어내는 나를 보며 나는 나에게 그건 핑계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다가 눈을 들었을 때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는 걸 확인하는 기쁨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되었기에. 앞으로 다시 열심히 재미있게 읽어갑시다!


이번 달은 주로 책을 읽으며 지낼 것 같다. 5월 중순에 끝낸 소설 초고와 거리를 두기 위해서(여러분, 저 다음 소설 초고 완성했어요!).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소설을 열어보고 싶지만, 이 마음이 커지고 커지도록 놓아두려는 것이기도 하다. 7월이 되면 소설로 달려갈 수 있도록. 7월부터 개월동안은 소설 퇴고 시간이다. 그렇게 올해 말 즈음엔 어디 내보여도 괜찮을만한 소설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퇴고에 퇴고에 퇴고. 내가 믿을 건 이것밖에 없다.


앞으로 몇 년 동안은 글을 많이 쓰고 싶다. <단순 생활자>를 내기 전 몇 년의 공백이 있었고 <단순 생활자>를 쓰고 나서도 반년의 공백이 있었다. 이미 충분히 쉬었으므로, 이번 소설 완성하면 바로 다음 에세이를 쓰기 시작할 생각이고, 그 에세이를 쓰면서 다음 에세이도 구상해 볼 생각이다. 그렇다고 준비도 안 됐는데 마구마구 쓸 생각은 없다. 충분한 인풋이 있어야 좋은 아웃풋이 나온다는 걸 아니까.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쓰고 많이 느끼는 생활. 이게 잘 안 되면 마음이 위축되기에, 나를 위해서라도 많이 많이 많이 많이를 잘 실천하며 살아봅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목요일엔 언니와 영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