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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짜면같은 와인

Veuve Clicquot Rose 뵈브 클리코 로제

인류 최대의 고민 중 하나는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 같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어떤 커피를 마실까부터 고민하여 자리에 앉아 잠시 일을 보다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업무에 투입되었던 뇌의 리소스를 순식간에 빼앗아 점심 먹거리를 찾는 일에 부여한다. 머릿속에서는 마치 내년도 경영계획을 위한 회의에서 자신들의 예산이 줄어들까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며 소리를 지르는 각 부서장들이 모여있는 것 같다. 뭐.. 여기서는 주로 음식 이름을 소리지르는 것이 다르긴 하다만. 


우리는 중요한 일을 정할 때는 늘 다른 사람 의견도 들어보라고 배웠다. 그래, 어서 핸드폰 단톡방을 열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방에 이 난제를 던져보자. 평소 내 말에 그렇게 흥미롭게 대꾸하지 않던 한 친구조차 "점심 뭐먹지"에 대한 반응은 참을 수 없었나보다. 어제 점심과 저녁, 더 나아가 점심도 못 먹은 오늘의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지까지 혹은 약속이 있는지까지 꼼꼼하게 물어본다. 나의 식생활에 관해 만족할만할만한 데이터를 수집한 단톡방의 프로-결정러들은 이내 음식 이름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나를 위한 추천인지 본인들이 먹고 싶은 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짜장면..부대찌개..크림리조또..참치김밥...>


짜장면?.. 그래 왠지 짜장면 괜찮다. 뭔가 꽂히는 게 있어. 바로 이거야.


하지만 그렇게 인생이 쉽게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왜 중국집에는 짜장면과 잠뽕을 같이 파는지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늘 이미지가 세트로 떠올라 사람을 끝까지 괴롭힌다. 그래서 인류는 짬짜면을 탄생시키지 않았던가. 더 나아가 요즘엔 짜장면+짬뽕+탕수육을 3등분된 한 그릇에 내어주는 곳도 있다고 하니 말 다했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의 고민 끝에 짬짜면을 선택할 수 있지만, 사실 로제와인은 레드냐 화이트냐를 고민하다 고르게 되는 결정사항은 아닌 것 같다. 짜장면과 짬뽕이 '따로 또 같이'식으로 나와 두가지를 모두 즐길 수 있다면, 로제는 일단 한 몸이 되어 나왔으니 레드와 화이트를 각각 즐길 수는 없다. 


그래도 로제는 나름의 화이트와 레드의 특징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로맨틱한 색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와인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로제의 인기가 한국처럼 낮지는 않다. 왜 한국에서는 로제를 생각보다 별로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뭔가 짬짜면같이 오리지널이 아니라고 느끼는 모양이다.


샴페인 로제와인은 투명한 포도즙에 적포도 껍질을 침용시켜 만들기도 하지만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을 섞어 만들 수도 있다(이 블렌딩 방식의 로제와인은 마담 클리코가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핑크구릿빛같은 우아하면서도 섹시한, 그러면서도 로맨틱한 색상과 레드와인의 특징인 타닌감까지 적당히 갖추고 있는 와인을 얻어낼 수 있고, 이는 어떻게 보면 보다 완성도 높은 짬짜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래서 로제 샴페인을 좋아한다. 물론 짬짜면도 좋지만.




샴페인 뵈브 클리코 로제 

Champagne Veuve Clicquot Rosé


피노누아/뫼니에르 품종의 풍미인 꽃, 블랙베리, 가죽 향 등이 고급스럽게 샤도네이의 명랑한 과실미와 닿아있다. 그리고 샴페인에서 빠지면 아쉬운 브리오슈향까지 마치 긴 생머리에 향수를 뿌린 듯 은은하게 피어오른다. 블랑과 누아의 장점이 다 즐길 수 있을만큼 골고루 갖추고 있고, 부드러운 기포감은 그야말로 와인에 녹아있다고 할 정도로 섬세하게 중력을 거슬러 올라온다. 그 모습은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할 정도. 달콤함과 씁쓸함 그리고 우아함을 복합적으로 즐길 수 있는 로제 와인은 단순히 색만 예쁜 혼종 따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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