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내게로 온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적어도 등산 초보로서 걷기의 맛을 알기 전까지는 산은 그저 산이었다. 나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산. 스스로 그러그러하게 존재하는(自然) 그냥저냥 산.
나는 원래 북악산과 북한산도 구별 못했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가 노랫말에 ‘북악의 맑은 정기’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난 북한산과 북악산과 인왕산도 구별하지 못했었다. 같은 산, 다른 이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달라졌다. 차의 뒷 유리창에 비치는 북한산 자락을 보면서 감탄하고, 퇴근할 때 보게 될 또 다른 산자락의 봉우리 모습을 기대하면서 출근을 한다. 퇴근을 기다리는 이유가 또 하나 새롭게 생긴 것이다.
퇴근하면서는 저 봉우리가 비봉인가 족두리봉인가? 비봉, 문수봉, 보현봉, 백운대를 열심히 복기하면서. 아직도 그게 그거 같은데. 봉우리의 변신은 무죄인가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저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북한산 둘레길, 북악산 둘레길, 서울 둘레길, 안산 자락길, 경복궁 비원 고궁. 비가 오면 그저 ‘비가 비가 오네’ 하던 내가 비가 온 뒤의 청명한 산길을 상상하면서 기대에 젖어보고.
‘길 따라 벗 따라, 벗 따라 길 따라’ 얼마나 아름다운 말 아닌가?
나는 사실 몇 해 전에 의사로부터 ‘척추관 협착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 직전까지 갔었다. 수술인지 시술인지를 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까지 했었으나,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검사 결과만을 받아 들고 퇴원을 하였었다. 한 번 더 견뎌 보겠노라고 하면서.
‘건축학 개론 친구’. 나는 그 친구를 이렇게 칭한다. 전공은 건축학인데 별로 건축은 하지 않고 살아온 듯한 지극히 문과적인 친구이다. 또 한 명의 선배, 우리는 그를 ‘질주본능자’라 칭한다. 그리고 뼈속 깊은 꼰대 두 명. 같은 코스를 가더라도 스타일이 너무 달랐다. 두 명은 마치 땅 밟기라도 하듯이 밟고 밟으면서, 이 곳의 지명과 연원과 역사를 음미하고 얘기해주면서, 다른 두 명은 마치 에베레스트라도 점령하듯이 무조건 앞으로 앞으로 정상을 향해서. 등산도 성격대로 하나보다. 4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대학 서클 친구들과 선배이다. 그들과 가벼운 등산을 시작하였다. 나의 증상에 등산이 좋다는 설과 안 좋다는 설 등 다양한 주장들을 무시하고 시작한 조촐한 등산 모임이 결성되었다. 느지막이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 아니다 원래 있던 친구였다. 마치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었던 것처럼, 그들은 40년 전부터 그냥 나의 기억 한 편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친구로 다가왔다. 나의 늘그막 한 노년의 시간들을 함께 할 친구로.
박진영의 ‘놀만큼 놀아봤어’란 노래가 있다. 부러운 말이다. 젊어서 놀만큼 놀아보고 벌만큼 돈도 벌어 보고 등등. 제목을 패러디해서 표현하면 우리 넷은 정말 일할만큼 일 해 온 사람들이다. 졸업하자마자 취직해서 평생을, 모두가 30년 이상을 한 분야에서 열심히, 성실히 살아온 우리들이다. 이제는 쫌 놀만큼 놀아도 되지 않을까? 그 누구도 우리의 만남에 대해 토를 달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우리는 너무나도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스스로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았다.
나보다 몇 해 먼저 퇴직한 ‘건축학 개론 친구'는 전국의 길과 산과 고궁을 너무나 열심히 공부한 것 같았다. 마치 그 친구와 함께 가는 그 길은 진정한 체험학습의 시간 같았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와 그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몸으로 느끼면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 친구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산이라고 모두 산이 아니고, 길이라고 모두가 같은 길이 아님을 가르쳐주었다. 길 위의 돌멩이 하나가 다르게 보이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시멘트와 콘크리트도 가르쳐주었다. 콘크리트가 마치 버버리와 같은 고유명사라는 것도. 그 말을 해준 그 산, 그 골목길이 그리워진다. 다음에 가면 그 길은 또 다른 길이겠지?
평생 배운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즈음이다. 인생 칠십을 종심소욕 불유구라던데 또 다른 새로운 욕구가 용솟음치고 있음을 느끼는 나날이다. ‘질주본능자’로부터는 삶의 원동력을 배우고, ‘건축학 개론’에게서는 교과서로만 배웠던 활자들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법을 배우면서. 또 한 명의 친구에게는 같은 교직에 몸담았던 동지로서 젊은 날의 교육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함께 나누면서.
코로나가 안겨 준 맑은 공기와 하늘이 너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