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작은 키를 가지고 태어난 것 외에는 건강한 신체를 주신 부모님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나? 크게 병치레 안 하고 커오고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40줄에 들어서면서부터 머리와 눈의 노화 속도가 남들보다 무척 빨랐다. 머리는 염색과 파마를 주기적으로 하면서 머리카락을 너무 학대해온 것은 아닌지. 이것도 일종의 희망고문이었던 건가? 조금이라도 좀 멋져 보일 수 있으리라는? 이제는 파마와의 종말을 고할 때가 왔다.
노안은 또 왜 그리 빨리 진행되는지.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던 시기에 난 큰 맘먹고 노안 수술을 하려고 안과를 찾아갔다. 원래 그 의사 선생님은 내 나이 50부터 눈을 조금만 쓰라고, 무슨 공부를 그렇게 하냐고 질책하시던 분이시다. 평생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에게 책을 그만 보라구. 학교를 그만두라는 소리인가? 선생님도 참 너무하셨다. 책을 안 보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닌지라 다시 도전, 병원을 찾아갔다. 주위의 사람들이 수술 후 매우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경험담을 들먹이면서 수술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안과 선생님 왈, “무슨 책을 그렇게 봐요? 봐도 금방 잊어버릴 텐데”
그 의사 선생님은 나보다 5살 위이시다. 선생님은 마치 나에게 노자 철학을 강의하듯 하셨다. 자연스럽게 살라고. 눈도 이제 그만 쓸 나이가 되었다고. 근데 눈을 너무 혹사시키니까 힘든 게 당연하지 않냐고. 그럼 의학과 의술은 왜 있는 거지? 부작용에 대한 우려이신건가?
의사 선생님의 애정 어린 충고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나는 요즘 실내 정원 가꾸기에 빠졌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살지 못하는 보상심리라고나 할까? 인터넷의 다양한 검색 사이트와 유투브를 열심히 보고 있다. 몬스테라. 칼라데아 진저, 산세베리아, 칼랑코에, 유레카 야자, 틸란드시아, 시클라멘..... 이 중에서 칼라데아 진저는 밤이 되면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잎이 서로 마주 보듯 붙는데 그 모습이 부부 같아 ‘부부초’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이런 멋진 이름을 뒤로하고 그 어려운 칼라데아 진저라니. 에잇! 잎의 색깔이 너무나 오묘하고 신비해서 용서해준다 진저야. 어쨌든 나는 이 어려운 식물 이름들을 열심히 외운다. 그것도 꽃말과 함께. 인터넷 검색을 해서 이름과 꽃말을 찾아낸다. 그래서 우리 집 화분에는 각각 이름과 꽃말이 쓰인 문패가 있다. 마치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된다는 믿음을 가진 양.
아침저녁 하루 이상 받아 놓은 물을 분무기에 담아 잎들을 촉촉이 해주고, 흙이 말랐나 안 말랐나 손가락과 나무젓가락으로 찔러보고.. 식물 고수들의 도움을 받아 말 잘 듣는 어린아이같은 맘으로 하라는 대로 한다. 근데 식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겠지? 우리 집에 먼저 뿌리내리면 언니고 형이겠지? 그래 물도 먼저, 영양제도 먼저. 세상만사가 그렇지 못하면 나라도 꽃들에게 그리해야지. 다정도 병이라 하니 물도 햇빛도 지나치지 않게 주어야지. 다짐하고 다짐하고...
젊은 나이에 나는 마당 있는 집에서 꽤 오래 살았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 나무와 꽃이 하나도 나에게로 다가오지 않았었다. 그때는 더더욱 사람에 꽂혔던 거겠지..누군가 식물은 게으른 사람이 잘 키운다고. 볼 때마다 무언가를 주려는 마음, 이것도 내려놓음과 비움의 철학이 부족해서이겠지? 자녀들 키우면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용서하고 이해한 척 대충 넘어가는 맹목적인 사랑을 사랑으로 착각했던 것처럼...
어제저녁에 분갈이를 몇 개 해놓고 출근을 했다. 밤사이, 낮 사이에 아무 탈없이 잘 자리 잡고 있는지 궁금했다. 얼른 꽃들을 봐주어야 할 것 같아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우리 딸이 애완견이 걱정돼서 여행 가면서도 집안에 CCTV를 달아놓고 가는 마음이 이런 건가? 근데 퇴근 직전에 친구로부터 호출 명령이 떨어졌다. 자기는 걸어서 마포대교 앞까지 올 테니 차 세워두고 강변을 좀 걷다 들어가라고. 잠시 갈등할 시간도 없이 친구는 전화를 끊었다.
‘난 오늘 바로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사전 약속도 없이 번개 쳐주는 친구가 있으니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했다. 난 아직 꽃보다 사람이 좋은가보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를 좋아하는 건가 보다.
‘새는 새장을 보지 못한다.’
새장 밖으로 나와 멀리서 보니 새장이 보이고 새도 보인다.
새장을 보고 새를 볼 수 있는 삶의 여건을 주신 그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