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설 Aug 12. 2020

부모-자식 관계는 어쩌다 호러의 테마가 되었을까

<비바리움>을 보고, <바바둑>, <맘&대드>와 함께

<비바리움>이 영화관에서 내릴 조짐이 보이기에 허겁지겁 챙겨보고 왔습니다. 매우 인상적인 영화더군요. 부조리극으로서도, 그 부조리한 상황을 바탕으로 기괴함을 자아내는 호러로서도, 그리고 한 편의 우화로서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비바리움>에 대해서는 이 영화만 다루는 글을 한 번 더 쓰도록 할게요.

<비바리움>

이 영화는 명백히 우화입니다. 부조리극이라는 형식 안에 두 인물을 집어넣어 놓고 그 상황을 장르적으로 풀어내는데, 호러로서도 물론 훌륭합니다만(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극적인 공포물은 아닙니다) 결국 영화가 끝나면 이 영화는 부모-자식 관계의 그 부조리하고도 공포스러운 측면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되죠. 물론 <비바리움>에서 공포는 자식에게서 부모로 일방적으로 타고 흐릅니다. 초반부에는 중산층의 욕망, 특히나 집과 가정을 꾸리는 일에 대한 욕망을 비튼 우화로 보였는데, 그런 부분도 없지는 않겠습니다만 영화가 집중하는 부분은 부모와 자식의 대립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유사한 영화들이 떠오르기도 했죠. 부조리극이라는 형식을 끝까지 밀어붙여 관객을 불쾌하게 만들었던 최근의 성공 사례로는 <킬링 디어>가 있을 테고(<킬링 디어>가 훨씬 훌륭하기는 합니다), 미술과 부감 촬영이 돋보이는 초중반부는 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80년대의 스탠리 큐브릭이 만든 호러 같다는 느낌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하지만 주제적으로 가장 밀접하게 느껴지는 건 역시 <바바둑>과 <맘&대드>겠지요. <바바둑>에 대해서는 예전에 써둔 글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함께 소개해드리면 딱이겠다 싶습니다. 주제뿐만 아니라 세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 편 모두 장르가 호러라는 점입니다.


<바바둑>

세 편 중 가장 훌륭한 건 역시 <바바둑>입니다. <맘&대드>는 러닝타임도 짧고 자극적인 재미가 있는 오락영화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중량감이 많이 떨어지죠. <맘&대드>의 결말만큼은 굉장히 좋아합니다(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비바리움>에도 몇 가지 아쉬움이 있는데, 이건 다음 글에서 이야기해보죠.


부모와 자식의 갈등을 다룬 서사는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최근의 호러 장르에서 이 주제를 다룰 때 부모가 자식에 대해 품는 감정이 핵심이라는 점이 저에게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바바둑>은 결국 아멜리아가 샘을 부정하면서 인정하고, 인정하면서도 인정하지 못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고, <비바리움>에서 아들은 몰개성적인 공포의 대상으로서 등장합니다(<킬링 디어>와 이 영화에서 텍스트 바깥에서 온 두려운 존재의 이름이 똑같이 '마틴'이라는 점이 사소하게 재미있었습니다).

<맘&대드>는 부모들이 자식들을 죽이려고 미쳐 날뛰는 이야기인데, 주체는 주인공 남매 아니냐구요? <맘&대드>에서 남매 캐릭터는 부모를 열 받게 만들 뿐인 온통 납작한 캐릭터이며 결국 결말에서 브렌트가 외치는 말, "그냥 가끔... 그냥 너희를... (죽이고 싶어)"이 영화에서 다루고 싶었던 진짜 주제입니다. 물론 이건 비약일 수도 있습니다. <맘&대드>는 이 감정과 갈등을 '소재화'할 뿐 심도 있게 다루는 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저도 그래서 <맘&대드>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딱히 오랜 시간 들여다볼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자식들, 혹은 '나는 부모가 되었고 저기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공포가 되었을까요. 이건 결국 나와 가족, 나와 자식, 부모로서의 나에 대해 젊은 세대가 새롭게 고민하고 느끼게 된 감정과 무관할 수 없을 겁니다. 스탠리 큐브릭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그리고 이 영화가 부모-자식 관계만을 핵심으로 다룬 영화는 아니지만) 1980년에 <샤이닝>이 다룬 공포가 '나를 죽이려는 아버지'에서 왔다면, 2010년대 이 영화들에서 공포는 '죽이고 싶은 자식', '나를 죽이려는 자식'으로부터 옵니다. '죽이고 싶다'는 욕망은 단순한 광기의 귀결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관계의 뒤틀림뿐만 아니라 생계, 성(), 정체성 등 일상적이거나 근원적인 문제들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맘&대드>

<샤이닝>과 <맘&대드>를 비교해볼까요. <샤이닝>에서 잭이 실성하는 데에는 설명할 수 없는 외부적 힘이 작용합니다. 잭이 평소부터 아내나 아들에게 품고 있던 혐오감이 암시되고 또 그 부분을 오버룩 호텔이 부채질하기도 하지만, 잭의 가장으로서의 고난이나 가족에 대한 분노가 영화의 주제로서 제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맘&대드>에서 광기는 오로지 자기 자식들에게만 향하는데, 거기에는 세대 간 소통의 단절, 한 명의 주체로서 부모를 대하지 않는 아이들의 태도 등 부모-자식 관계를 통해서만 설명 가능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이 복합적인 문제를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들'로 단순화시켜 제시하는 것이 이 영화의 큰 단점입니다).

<바바둑>은 이 주제를 가장 넓고 깊게 다룬 걸작입니다. 특히나 모성 신화를 정면으로 해체하는 이 작품에서 부모가 되는 일은 단순히 나-자식의 일대일 관계도, 애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숭고한 역경도 아닌 일상과 사랑(혹은 성애), 자아를 통째로 뒤흔들고 위협하는 실존적 고통으로 묘사됩니다. 이건 부모가 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자 인간으로서의 의무였던 시대를 지나 선택이 된 사회를 거쳐 아예 부담이 되어버린 현재에서만 만들 수 있는 이야기겠지요.


<비바리움>이 선 위치는 또 독특합니다. 자식이 공포인 것은 유사하지만, 여기에는 실제적인 혈연도 없고 애정도 없으며 심지어는 당위도 없습니다. 그 말인즉슨, 젬마와 톰이 부모가 되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는 거죠(가족 계획도, 부주의한 섹스도, 혹은 벌을 받아야 할 이유조차 마땅히 없습니다). <비바리움>에서 아들은 그저 갑자기 '부과'됩니다.

이 영화가 50년대 미국을 자꾸 연상시키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는데요, 사실 외부적으로 아이 낳기가 '부과'된다는 설정은 (지금도 만연하겠습니다만) 지금보다는 몇십 년 전의 현실에 더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영화는 현시점에 적합한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젬마와 톰은 동거하기 위해 집을 찾는 연인일 뿐 부부가 아니며, 또한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계급 차이는 미묘한 갈등을 일으키면서 서브플롯으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이때 계급적인 우위는 젬마가 점하고 있죠(그렇다면 계급 우위-젠더 열위인 젬마와 계급 열위-젠더 우위인 톰 중 누가 최종 승리자일까 질문할 수도 있을 텐데, 아쉽게도 이 부분은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해집니다). 이러한 설정들 속에서, 현대의 젊은 연인과 부부들이 생각하는 출산과 육아는 과연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엿보거나 또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비바리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십개월>이라는 한국영화를 보았는데, 이 영화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엄마가 되게 생긴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밝은 톤으로 다룹니다. 이 영화의 외연은 유쾌하지만, 그 속에는 온통 고민과 혼돈과 갈등이 자리하고 있죠. <십개월>도 재미있게 봤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주제를 호러의 형태로 다루는 영화들이 간간이 나오는 것이 몹시 흥미롭네요(비장르적인 드라마 영화에서야 무슨 주제인들 못 다루겠습니까). 2010년대가 부모 되기를 공포스러운 일로 바라보았던 것이 각성의 결과인지 아니면 사회 변화의 결과인지는, 저도 생각하는 바는 있지만 여기서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한 번쯤 다 같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겠지요.


오늘은 간략한 이야기를 했으니, 다음에는 <바바둑>과 <비바리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두 작품은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에게는 적극 추천하는 영화들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바바둑>은 정말이지 훌륭하거든요.

작가의 이전글 <소년 아메드>, 같은 자리를 맴도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